모든 여성에게 V라인 얼굴의 스트레스를 주는 김태희. /스포츠칸 이석우 기자



“엄마는 B, 아빠는 D!”

 추석 연후가 지나도 먹거리가 남아서 연일 포식을 한다. 음식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야한다는 환경 개념이 넘쳐서가 아니라 계절을 타지 않는 우리 가족의 식욕 덕이다. 어제도 저녁을 먹고 포만감에 흐뭇해 하는데 딸 아이가 우리 부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B와 D는 학점이 아니라 불룩 튀어나온 배 모양을 알파벳으로 표현한 것이다. D보다 B가 낫다고 하기엔 너무 정직하게 불룩나온 배가 부끄럽긴하다.

 요즘 텔레비젼의 광고를 보고 있으면 온통 알파벳 타령이다. 얼굴은 V라인, 몸매는 S라인, 다리는 X라인, M&M 초콜렛같은 복근. 엉덩이는 W라인... V라인을 만들어 주는 물, S라인 몸매를 위한 과자 등등...

 아름다움 용모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무 편견없는 아기들에게도 여러 명의 사진들을 보여주면 예쁜 사람의 사진 앞에서 오래 머물고, 다른 나라의 정치인 후보 사진을 봐도 매력적으로 생긴 이들이 당선될 것이라고 예측한단다.
 미국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새파이어(William Safire)가 2000년 8월 인종·성별·종교·이념 등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차별 요소로 용모 차별을 지목하면서 ‘루키즘’(Lookism)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외모(용모)가 개인간의 우열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 또는 그러한 사회 풍조를 말한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기준이 왜 하나여야 할까. 왜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얼굴을 김태희처럼 V라인으로 통일해야 하나.
 네모난 박경림의 얼굴이 김태희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글동글한 얼굴, 길쭉한 얼굴, 각진 얼굴 모두 소중한데 V라인만이 절대지존, 아니 반드시 V라인을 가져야 ‘얼굴’로 공식 인정을 받는 분위기다. 그래서 어린 여성들도 턱뼈는 물론 치아와 잇몸까지 자리배치를 하는 양악수술 등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며 V라인의 얼굴로 만들려 한다. 예전에 읽은 관상책에는 V라인의 뾰족한 얼굴은 박복한 여우상이라고 했고, 나처럼 턱이 두둑한 얼굴이 말년에 잘 산다고 했는데 세상이 바뀌니 관상도 달라지나...

 또 S라인 몸매를 위해 투자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온갖 다이어트, 헬스클럽에서의 운동, 요가와 성형수술 등등. 중년 남성들도 초콜렛 복근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린다.
 한때 공주패션이 유행할 때, 얼굴은 대왕대비나 상궁같이 생긴 아줌마들이 귀엽고 발랄한 공주옷차림을 해서 대략남감했는데, 요즘 식스팩 복근 열풍으로 얼굴은 아저씨인데 몸만 권상우·송승헌인 이들이 많아 당혹스럽다.
 물론 뚱뚱하고 퍼진 몸은 자유분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에도 무책임하다는 증거여서 외국에서도 비만 사원들을 해고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런 어디까지 ‘건광’과 ‘자기관리’가 우선이다.

 얼마전 텔레비젼을 보니 가수 백지영과 그룹 ‘쿨’의 유리가 등장했다. 한 출연자가 둘이 닮았다고 하니 “같은 병원에서 수술했거든요”라며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모 여성그룹의 멤버 하나는 다른 멤버와 너무 비슷하게 수술을 해서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고, 같은 소속사의 아이돌들 역시 같은 병원과 같은 미용실에서 새롭게 탄생해 똑같은 용모를 보여준다.
 어디 아이돌 뿐인가. 중년 연예인들은 자가지방흡입술에 보톡스 등으로 탄력과 젊음을 자랑하지만 덕분에 아주 밋밋하고 표정이 없는 얼굴로 변했다. 온갖 주사와 이물질 투입으로 표정 주름이 잡히지 않아 화를 낼 때나 고뇌의 순간에도 그저 눈만 치켜뜨거나 억지로 찡그릴 뿐이라 감정이입이 힘들다. 마치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은 대신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듯 그들은 젊은 얼굴을 갖기 위해 그 소중한 표정을 버린 것 같다.
 그런 연예인들의 환골탈태에 감동한 일반인들이 너도나도 성형외과 수술대에 눕는다. 교수 아버지를 둔 명문대 여대생이 ‘이런 각진 얼굴로는 살기 힘들다’며 자살한 사건, 충분히 날씬한데도 S라인을 만들어야한다며 밥을 굶는 청소년들이 가득한 세상이 어떻게 아름다운 세상인가.

 모 방송국에서 실시하는 ‘동안 콘테스트’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팽팽한 얼굴인가를 보는게 기준인 듯하다. 동안이 어떻게 주름없는 얼굴만 의미하는가. 주름은 성형수술이나 기능성화장품으로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안의 핵심은 동심이다. 내가 만나본 이들 가운데 가장 동안은 피천득 선생이었다. 97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 했지만 표정이 너무 밝고 해맑아서 나는 백수를 앞둔 노인이 아니라 열일곱 소년과 마주한듯한 느낌이었다.



Cynthia Nixon, Kristin Davis, Kim Cattrall and Sarah Jessica Parker are seen in an undated publicity photo
for the HBO series "Sex in the City." The final episodes of HBO's series about four high-flying New York women start airing 9 p.m. EST Sunday, Jan. 4, 2004 and after that it's goodbye to Carrie, Miranda, Charlotte and Samantha. (AP)

 

 개성시대라고 하지만 한국은 너무 획일화, 단일화된 사회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을 보면 사라 제시카 파커를 비롯한 4인의 성격은 물론 얼굴도 제각각이다. 특히 패션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사라 제시카 파커는 매부리코에 말상이다. 그 하염없이 지루하게 긴 얼굴에 가늘고 뽀죽한 코로도 그는 매력있는 캐리의 역할을 잘 표현했다. 이즈음 가장 섹시하다는 안제리나 졸리의 얼굴은 어떤가. 너무 깡말랐지만 얼굴형은 분명 사각이다. 줄리아 로버츠의 입은 권투 글러브가 들어갈만큼 커도 그게 개성이고 매력이다.

 성형수술에 관련된 취재를 하며 “명문 의대를 나오고 그 어렵다는 성형외과 전문의 시험에 통과한 이들이 판에 박은듯 똑같은 쌍꺼풀에 날렵한 코, 갸름한 턱선을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 의사는 “얼굴의 부위를 나누는 황금 비율도 있고 환자들이 특정한 연예인의 얼굴이나 무조건 크고 높은 코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했다.

 타고난 용모를 부지런히 가꾸고 상처가 있거나 비뚤어진 코 등의 열등감을 성형수술로 해소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성형공화국으로 불리며 타임지를 비롯한 해외 언론의 표지와 특집기사까지 장식한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이런 알파벳이 만든 ‘획일화’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처럼 똑같은 얼굴이 텔레비젼에, 거리에 가득한 것은 거의 공포 영화 수준이다.
 
 이제라도 상품광고에 현혹되어 자신을 V나 S 등 알파벳의 틀에 가두지 말고 자신의 개성과 자기만의 매력을 사랑하자는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다. 곧 한글날인데 한글 사랑과 더불어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하지 않을까...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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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n 2010.09.30 2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 정말 마음에 쏙 드는 말씀을 해 주셨네요.
    사실, 저는 성형외과 문전을 몇번이나 배회하다
    그냥 지금까지 살아오며
    제 코 (매부리)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기로 마음을 정했답니다.
    그런데 혹시 유기자님은
    눈이나 코를 살짝 손보지는 않으셨는지요?
    TV에 나올때 보면 그런 느낌이 들때가 있답니다.
    진실은?

  2. 유인경 2010.10.01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칠전 만난 중앙일보 신예리 논설위원이 그러더군요.
    20년 가까이 보면서 성형의혹을 느꼈는데 우리 엄마 장례식에 와보고
    제 언니 오빠 등 온 남매들이 저처럼 느끼하게, 선이 굵게 생긴걸 보고 그 의혹을 접었다구요.
    오빠들까지 단체로 성형을 하진 않았을테니까요.

    그런데 성형수술 의심을 받는게 기쁜게 아니라 성형실패 사례로 여겨지니 씁슬합니다. 흑흑흑...

    • 딸기 2010.10.01 1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푸하하핫
      저는 유선배 성형의혹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댓글 읽다보니 그런 오해도 가능하겠군요.
      선배가 좀 외국스럽게 생기셨잖아요
      선배 소싯적 모습이 궁금해요!

  3. 무암 2010.10.01 2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줄을 긋고 있는 아프리카 종족들도 있지요. 때로는 코를 뚫기도 하지요. 그들 나름대로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추어서 말입니다. 메스를 대지 않을 뿐 넓게 보면 그것도 성형의 일부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는 성형의 빈도, 강도가 조금 지나치지 않나 저역시 생각이 듭니다. 티베트 라다크에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개성과 매력을 사랑하자는 유인경 기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4. ㅋㅋㅋ 2010.10.02 0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의성, 개성이 인간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봐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은 제각각 다 쓸모가 따로 있고 그 각자의 용도는 인간 생활에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소중한 거죠.
    나와 남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서로 존중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보편적 보편주의로 차별이 없고 장벽 장애가 없는 사회가 더없이 좋은 거죠.
    외모 지상주의는 자본과 물질주의가 낳은 병폐 중 하나라고 봐요.
    인류의 발전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나타난 것이겠죠.
    특히 교육에 있어 한 가지로 통일시키려 하거나 한 가지로 나아가려고만 하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퇴행을 가져오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는 글이군요.
    좀 엉뚱하게 비약했는지도 모르겠군요.

  5. 남자중의 남자 2010.10.03 2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애인은 키작고 오동통 합니다.
    그런데 김태희보다 더 이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유는 가장 으뜸이 사랑이고
    둘째는 진실한 행동과 언사,
    셌째는 궁합(속)이 구구절절히 맞는답니다.

  6. 고수부지 2010.10.07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골탈태~ㅎㅎㅎ

    저승에서 제일 문제일으키는 국민이 한국이라고...

    원판과 너무 달라서 재확인필수~~~~ㅋㅋ

  7. 박혜연 2013.08.11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승사자들 고생하겠다~! 과거에는 나쁜짓하는자들이 지옥가지만 지금은 지옥행을 가고싶어도 못가는이유 바로 얼굴들이 너무 똑같거나 아니면 자리가 없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