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가끔 인격과 명성을 동일시하고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인격은 그 사람 안에 감춘 마음의 자태이고  명성은 다만 그 사람의 인상을 남이 마음대로 평판하는 외부적인 소리에 불과하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에 적극 공감하는 요즘이다.

50여년을 넘게 살았고 기자생활도 27년여 경험하며 온갖 사람을 만나고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의 명성과 실체에 대해 알게 되면 항상 당혹스럽고 심지어 경악까지 한다.

얼마전에 끝난 서울시장 선거 때도 그랬다. 명성과 영향력면에서 스타급의 두 후보가 나와 보수와 진보의 진지한 성찰과 야무진 공약을 보여주길 기대했는데 웬걸, 역시 네거티브, 그것도 치열한 상호비방전이었다. 나경원 후보의 다이아먼드반지 가격, 아버지의 학교재단, 심지어 피부과 병원 비용 등등이 서민들을 흥분케했고 박원순 후보 역시 서울법대 논란, 군면제 사유, 협찬 인생, 딸의 유학 등등 ‘아름다운 ’ 과거만은 아닌 온갖 이야기들이 노출됐다.

공정사회와 정의를 부르짖는 대통령께서도 퇴임후 돌아갈 집을 담대하게(?) 아들 명의로 하고, 은행대출 등 다채로운 편법을 활용하려다 비난을 받고 있고 청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안철수 교수 역시 정작 자기 회사의 청년 직원들에겐 야박하게 군다거나, 서울대 교수로 갈 때 부인과 패키지로 간 것도 문제라거나 등등 슬슬 네거티브한 소문들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최근에 발간된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 나의 흥미를 끈 것은 그의 사업적 능력과 업적이 아니라 그의 인간적 면모였다. 눈물겹게 돈을 모아 그를 미국에서도 가장 등록금이 비싸다는 사립대학교에 입학시켜준 양부모, 그 부모가 몇시간이나 자동차를 몰아 대학 입학식에 데려다 줬는데 잡스는 “고아처럼 보이고 싶었다”는 이유로 대학문 안으로도 못들어오게 했고 연인들에게도 참 치사한 짓도 많이 하고 동료들을 수시로 배신했다. 대학생에게 특강을 할 때나 신입사원 면접을 할 때도 “첫 경험은 언제 했나?” 등의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주위 사람들을 분노와 절망으로 몰아갔던’ 악마 같은 잡스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을 좋아했던’ 천재 잡스가 사실 같은 사람이란게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건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 양면성과 불편한 진실을 마냥 관대하게 이해해야만 할까. 우리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이고, 단순한 정신적 지주가 아니라 뭔가 한 자리를 하면서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리는 이들인데 왜 이토록 지저분한 일을 저질렀거나 혹은 악의적인 루머에 시달리는 걸까. 나의 어리석은 물음에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짧게 답했다.

“모든 명성은 추악함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큰 업적을 이룬 이들은 무조건 완벽한 인간이라고 믿어 버린다. 신문과 방송, 각종 위인전 등에서 그들을 그렇게 아름답고 멋지게 포장하기에 단면만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 하나둘씩 진실이 폭로되면 천사같은 사람은 악마로, 성인군자같은 이는 치졸한 파렴치범으로 전락한다.

백악관 주인이 여덟 번이나 바뀌었던 48년 동안, FBI의 총수자리에 앉아 실제 미국 정치사를 쥐락펴락했던 실세 중의 실세 에드거 후버에 관한 실화소설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숨겨진 비화와 스캔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책에서 가장 추악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은 미국인들에게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신화같은 대통령 존 F. 케네디이다. 이기심과 충동, 동물과도 같은 성욕,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무시... 후버의 시선으로 본 케네디는 저급하고 추잡한 욕망의 동물에 불과하면서도 텔레비젼이라는 영상 매체에서 연기를 잘해서 오로지 이미지로만 버텼던 쓰레기같은 사람이란다.

영국 저널리스트 폴 존슨이 쓴 <지식인의 두 얼굴>은 더욱 충격적이다.
버트란드 러셀, 카를 마르크스, 레프 톨스토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헨릭 입센, 장 폴 사르트르, 조지 오웰, 노엄 촘스키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소개된 14명의 고명한 지식인들의 이면에 감춰진 추악함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특히 루소의 경우 사생활은 완전 망나니 수준이다. 근대적 의미의 첫 지식인으로 평가되는 장 자크 루소는 평생 ‘인간 회복’을 외친 계몽주의 철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세탁부 출신의 여인 테레즈 르바쇠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5명의 아이들을 몽땅 고아원에 내다버렸다. 첫 아이를 고아원에 갖다버릴 때 루소는 아이의 옷에 숫자를 적은 카드를 넣었을 뿐,나머지 4명의 아이들에게는 카드를 넣어주지도 않았다. 그는 아이 5명의 생년월일도 기록하지 않았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말년의 저서 <고백록>에서조차 이 문제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했다.

                                                               장 자크 루소
“집안일과 아이가 내는 소음으로 내 다락방이 가득 차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일을 하는 데 필수적인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아버지도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 만큼 자애롭지는 않을 것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르크스는 영국 자본가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사례를 수없이 밝혀냈지만 말 그대로의 무(無)임금 사례를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데 바로 그의 집안에서 그런 노동자의 실체(?)를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처가에서 불쌍한 딸과 손주를 걱정해 보내온 보모 렌첸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마르크스 가문에서 일했지만 마르크스는 그녀에게 동전 한 닢도 쥐어주지 않았다.

이 책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을 비롯, <제2의 성>이란 책을 통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면서 여성주권과 페미니즘을 강조한 보봐르도 그렇다. 소녀시절에 그의 책과 그의 고상한 얼굴에 매료되어 ‘존경하는 여성’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나는 <연애편지>란 책을 읽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 아니 세계의 지성이란 보봐르가 넬슨 앨그렌이란 미국 소설가에게 보낸 편지 모음책인데, 모국어인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로 써서 보다 직설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겠지만, 세상에... 그건 그냥 갸르릉 거리는 암코양이가 숫코양이에게 애교를 떨고 내숭조차 안부리고 온몸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내용들이었다.


“당신을 위해 잠옷을 샀어요. 입기 위해서가 아니라 벗기 위해서...”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께요. 당신이 글을 쓸 때는 말을 안걸고 그냥 곁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청소를 할께요. 그러니 당장 와줘요. 내 사랑...”

애정편력으로 유명한 조르주 상드도 아니고, 도발적인 마릴린 먼로도 아닌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영원한 사르트르의 여인 시몬 드 보봐르 여사가 그런 편지를 수백통이나 쓰다니, 당시에는 너무 배신감을 느꼈다. (지금은 보봐르도 지성으로 무장했지만 체낸엔 에르스토겐이 가득 흐르는 여성이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

물론 인간은 완벽한 인격체가 아니고, 성직자들도 추한 일면이 있을게다.
하지만 나는 지식인들의 그런 이중성은 “그들도 사람이니까”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리옹대학 교수이자 <지식인의 종말>의 저자인 레지 드브레는 오늘날 지식인이 앓고 있는 중병 다섯가지를 든다. 여전히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선도한다고 확신하는 도덕적자아도취증,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연구도 하지 않으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자신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을까 두려워 언론에장단을 맞추고 설익은 견해를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 순간적 임기응변증, 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 내놓는 만성적 예측 불능증이 그것이다.

누군가의 단점을 지적하거나 특히 사생활의 추문을 들추면 이런 말이 따르기도 한다.

“죄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그런 당신은 얼마나 떳떳하고 깨끗한가?”

그런 지적에 마구마구 동의하고 그래서 짱돌을 던지려던 손을 살짝 내리긴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보통의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는 흥분하고 지적질을 한다. 또 그런 지식인들이 스티브 잡스처럼 “그래요, 난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라고 뻔뻔하긴 하지만 솔직하게 약점이나 추문을 인정하면 용서가 되는데 그들은 언제나 가장 깨끗하고 선량하고 억울한 척하기에 더 분노지수가 높아진다. 우리는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지식인들에게 최소한 보통사람 수준의 품위를 기대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는 추악함을 동반한다”는 말을 떠올리다가 또다른 의문이 든다.
명예와 추악함은 한 몸에 두 얼굴이 달린 샴 쌍둥이인가, 아니면 추악함이 많을 수록 명예도 올라가는 걸까, 아니면 명예가 높은 이들에게 추악한 일들이 N국과 S극처럼 착착 달라붙는 걸까...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냉철한 친구가 말했다.

“네 고민은 멍청한 남자들이 만일 사귀어야 한다면 얼굴 예쁜 김태희랑 섹시한 김혜수 가운데 누굴 골라야하나...라고 고민하는 것과 같아. 제발 지식인이 된 다음에 추문을 걱정해줘. 매일 드라마만 보는 주제에...”


Posted by 유인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네병 2011.10.31 2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판교 'S' 2011.11.01 0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주변에도 성공한 인격자처럼 보여야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데
    기자님 글 읽으며 머리속에 떠올려 보면서 맞아,맞아 했습니다.
    많은걸 생각케 해 주시는 글이네요!

  3. pinggu99 2011.11.01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성은 가지되 자신이 지도층인척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잡스는 그러했던 것 같은데요.

  4. 박미카엘라 2011.11.01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격과 명성에 대한 확실한 깨우침....오늘도 좋은글 잘 읽고 웃고 갑니다~~^^
    기자님은 요즈음 드라마 뭘 즐겨 보시는지 궁금^^

    • 유인경 2011.11.01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부분의 드라마를 보지만... 요즘은 김수현 선생의 "천일의 약속"을 즐겨 봅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수애의 연기나 성형중독으로 나오는 이미숙의 미모, 김수현식 대사에 공감하면서요...

  5. 고수부지 2011.11.02 1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지식인일수록 더욱 드라마를 많이본다고 생각합니다ㅎㅎ^^ `

  6. 존재기쁨 2011.11.03 0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악한 다중 인격체인 인간을 낳낳히 해부하셨네요..ㅎ
    언론이 만들어낸 착시 인격.허상..그래서 직접 곁에서 겪어보지 못하면
    절대 인간은 몰라요(평생을 같이 살아도 잘 모르는데 하물며)..특히 내부에는 본능이
    꿈틀거리는데도 고상한척 아닌척 설교를 해야하는 종교인들을 보면...풋!!
    아무리 직업이지만 ...안쓰러보이기도하고 어떨때는 불쌍해보이기도..
    이렇게 솔직히 까놓고 드라마 본다고 얘기하는 지식인
    유인경님이 더 맘에 듭니다..
    그리고 저도 그 드라마에 필이 꽂혀서 마누라랑 열심히 보는 중임니다...
    젊어 이혼, 상처가 많을 김수현 할매.. 지고지순하고 열정적인 사랑이 더 절절히 그립겟죠..
    모든 여자의 로망인가..ㅎㅎ

    • 방훈엄마 2011.11.02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의 댓글에 100% 공감합니다.
      이름 좀 있다하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드라마는 격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나 보는것처럼 말하는데
      유기자님은 참 솔직하니깐 정도 가고 너무도 좋은것 같습니다.

  7. 잼잼 2011.11.05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양은 인격개념이 없죠. 능력이죠.
    우리 동양권은 수신이 기본이여서 서구식 사고완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서구 문물이 도입되며 우리도 수신 개념이 약화되는 것 같아요.
    한문을 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인격 개념이 남아 있을 겁니다.

    몇 년전에 호남선 무궁화열차를 탔는데요,
    중간에 갓을 쓴 할아버지가 입석으로 표를 끊었는지
    자리가 많이 비었어도 끝까지 서서 가시더니 목적지에서 내리시더군요.
    이젠 이런 분 찾기 힘들 껍니다.

  8. 김한국 2011.11.08 0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요, 김태희와 김혜수 둘다 내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이런 나는 무슨 증세인가요?
    유기자님이 설명 좀 해 주세요...

  9. 자운영 2011.11.08 1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라마 보는 주제라도 우리 인뎡님 보는 시각의 깊이 넓이와 칭구의 그것과는 천양지차지요
    칭구라고 다 샅은 레벨인감 ㅎㅎㅎ

  10. M 2012.01.17 1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내는 결혼이란 긴여행을 함께 손잡고 가는 동반자며 친구야.
    의리로 참아주고 우정으로 이해해주고 연민으로 보듬어주는
    그 전부를 다 합쳐서 그게 사랑인거야".
    드라마 "천일의 약속" 중에서.
    저는요 받아쓰기 하면서 봤는데 지식인이 아니라서 천만다행.

  11. 초초 2012.05.30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마지막에서 빵터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 진짜 재밌게 쓰시네요 ㅋㅋㅋ 잘 읽다 갑니다

  12. qwrf 2016.02.16 2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예로 든말은 좀 어폐가 있는게 말 그대로 매일 드라마 보는 여자들이 저런 생각을 하면 모를까
    실제 저렇게 생각하는 남자들 흔치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