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아침, ‘행복디자이너’ 최윤희 선생의 죽음, 그것도 부부가 동반 자살한 소식을 듣고 난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머리가 하얘져셔 아무런 생각도,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슬픔보다는 배신감이 더 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 분은 내 앞에서 너무 행복해했기 때문이다.

추석 직전에 전화를 했더니 “병원 응급실이에용~”이라고 마치 놀이공원에 놀러온 소녀처럼 깔깔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지방에 강의갔다가 비행기타고 돌아왔는데 공항에서 갑자기 너무 아파서 병원에 실려왔어요. 영화 한 편 찍었지 뭐. 폐에 물이 찾다는데 왜 물이 폐로 갔을까. 별별 검사 다 받고 결과 기다리는 중이에요. 아유, 살다살다 별 경험을 다 하네. 근데 여기 굉장히 재미있어요. 저쪽에선 누구한테 맞았는지 피흘리며 들어와 소리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고.. 잘 생긴 의사들도 많네...호호호호.”

지난해에도 과로로 쓰러지고 등산갔다 발목이 부러지는 등 건강 이상이 있었지만 빨리 회복해 다시 강연을 다녔고, 폐에 물아 찼다면서도 중계방송하듯 응급실 풍경을 유쾌하게 말해 사태의 심각성이나 그 분의 진심을 알 수가 없었다. 워낙 항상 명랑하고 유쾌한 분이었으니까, 그라고 언제나 오뚜기처럼 일어섰으니까.




'행복디자이너'라 불렸던 생전의 최윤희 선생. /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윤희씨는 ‘행복 디자이너”란 독특한 직업에 육순이 넘은 나이에도 초록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은근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유머 넘치는 말로 유명하다. 
아침마당 등 방송에서 얼굴이 알려졌지만 전국을 돌며 한달에 30건 이상의 강의를 하는 대한민국 최고 인기 강사였고 1년에 한두권의 책을 펴내고, 잡지에 상담난도 연재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집 근처인 정발산을 등산하는 등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행복은 셀프다. 내가 선택하는 거다”라고 주장하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강조했다.
 
이화여대 출신인 그는 스물두 살에 열살 연상에다 가난한 남편을 만나 전업주부로 살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며 25년 전 쯤에도 온가족 동반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 했다.

“쫄딱 망해서 어린 애들과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갔었죠. 연탄가스를 맡고 죽을까, 쥐약을 먹을까, 목을 맬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죽으려고 이렇게 아둥바둥 노력할 바에 살아보자, 식당 폐업하지 말고 재단장해서 개업하자란 생각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리고 성당에서 주보를 만들다 현대에서 주부경력사원 모집할 때 응모해 금강기획 카피라이터로 첫 직장이자 첫 직업을 얻었죠.”

죽을 위기를 넘기고 서른 여덟에 첫 직장을 얻은 후 그는 승승장구했다. 금강기획을 거쳐 현대방송 홍보국장으로 일했고 그후 프리랜서 강사가 되어 방송 활동도 하고 정말 치열하게 부지런하 살며 “행복하게, 웃으며 살자”를 강조했다. 이메일 주소도 하하호호, 퍼니짱 등으로 온통 웃음과 행복이 가득했다.

누굴 만나도 지나칠만큼 반가와하고, 문자 메세지 하나를 보내도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대한민국 최고 여기자 유인경님”이란 말과 하트를 열개씩 찍어보냈다. 
싱거운 이야기에도 키들키들거리고 “어머어머, 너무 웃긴다” “아이구, 재미있어'를 연발했다. 그 분과 함께 있으면 세상이 다 밝아지고 걱정거리도 없고 마냥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열등감과 겪은 고통을 너무나 희화화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분은 2년 전부터 지독한 고통과 통증에 시달렸고 최근에도 혼자 자살하려고 해남까지 갔다고 한다. 
내가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그리고 문자를 주고 받은 것도 응급실을 거쳐 한 번의 자살소동을 겪은 후인데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내숭을 떨었을까. 그래서 지난 20년간의 우정과 사랑이 너무 속절없고, 배신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래서 결심했다. 난 절대로 행복하려고 아둥바둥 살지 않을 것이고, 남들에게도 행복을 강요하지 않을테다. 아주 이기적이고 아주 유치하게 살겠다. 최윤희선생이 ‘행복 디자이너’로 자신의 정체성을 디자인하느라 정작 자신의 행복과 기쁨에는 너무 인색했기 때문이다.

난 20년간 그 분과 교류하면서 그 분이 널부러져 있거나, 자신의 세속적 사치나 허영을 부린걸 본 적이 없다. 
 
각 지방자치제와 단체에서 강의 붐이 일면서 강의 요청이 쇄도했는데 그걸 다 돌아다니느라 식사도 제 때 하질 못했다. 고구마 삶은 것이나 떡 등과 생수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끼니를 때웠다, 
 
해외여행을 갔다거나 긴 시간 휴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피부관리실이나 스파에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못들었다. 초록색 머리를 염색하는 등 튀는 패션을 즐겼지만 단 한번도 값비싼 명품 옷이나 가방, 구두를 착용하는 것도 못봤다. “시장에서 1만원에 산 스웨터에요.” “길거리에서 산 넥타인데 재미있어서 색색가지로 샀어요” 등등 온통 시장패션뿐이었다. 돈은 풍족했지만 그런 속물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물리적인 시간도 없어서이긴 했다.

하지만 난 그분처럼 살진 않을거다. 난 내가 번 돈으로 알토란같이 내게 투자할 생각이다. 예쁜 옷도 사입고, 마사지도 받고, 어떤 물건에 소유욕구가 생기면 내 돈으로 당당히 살 거다. 그리고 수시로 여행을 가는 등 내 자신에게 돈과 시간과 물건의 선물을 줄테다. 

더욱 속상한 것은 그 분은 그렇게 아프면서, 700가지의 통증을 느꼈다면서 주변사람들에게 그 아픔을 털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영남씨 등 20년 이상을 친하게 지내며 교류하는 지인들이 너무 많았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마징가제트처럼 달려와 그 사람들보다 더 아파하고, 도와주지 못해 안쓰러워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지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우리 경향신문의 에세이에 ‘신이 경고를 보냈다’고 1년전에 응급실에 실려간 일을 써놓고도 그 후에도 쉬지않고 강의를 다니고 컬럼을 쓰고 사람들이 보내는 상담 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해주었다. 

왜 그토록 남들에게 헌신하고, 남들의 시선만 의식했을까. 왜 미소를 지으며 고통을 감추기만 했을까. 

난 결심했다. 커다란 성공이나 행복에 연연하지도 않을테고, 우아한 척 고상한 척 행복한 척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살지 않을게다. 온갖 엄살을 떨고, 투정도 부리고 적당히 민폐도 끼치면서 살거다.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의사를 협박해서라도 내 병을 치유하려고 노력할거고, 내 남편이나 자식 흉도 실컷 보고  살 거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할거다.  너무 사랑스런 내 딸, 푼수를 떨어도 잘 받아주는 주변 사람들, 반백년이 넘은 나이에도 수습처럼 여기저기 뛰어나니게 일을 준 우리 경향신문사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오래 살게 해주는 남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최윤희 선생의 남편이 건강한데도 더이상 고통을 못견디는  아내를 위해 동반 자살을 한 것에 놀라와하더니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난 절대 너랑 같이 못 간다. 가려거든 알아서 혼자 가라.”

이런 치사한 남편보다 악착같이 오래 살기 위해서 난 비타민도 열심히 먹고, 피곤하면 푹 쉬고, 나를 위해 스스로 보상과 선물을 할거다. 패션기사 취재를 하다보니 올해 레오파드 무늬가 유행이던데 호피무늬 옷이라도 한 벌 사야겠다. 난 소중하니까, 난 속물이니까....

 
PS. 최윤희 선생님, 제발 하늘나라에 가셔서는 남의 이야기만 듣지 마시고 선생님 이야기도 하세요.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도움도 청하세요. 남들에게 폐끼치지 싫다고 빈소조차 못차리게 한 것도 주변사람들에 대한 결례에요. 선생님은 너무 착하고 맑은 천사같은 분이었지만 그래서 더 속상해요. 너무 속상해요....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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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기만 2010.10.11 2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인경기자의 글을 근자에 자주 접하며 한가지 느끼는것이 있습니다.
    역 발상 같은 느낌으로 대회한다고 할까?
    그냥 이야기하듯 글을 썼는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은 뒷편에 숨어 있어 있네요.
    남편되시는 분 에게 보내는 애정은 표현할 수사나 형용사가 필요치 않을 정도구요.
    어쨋든,
    유기자님의 글은 우리들에게
    풍요스러운 삶의 질에 대해 생각케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2. 명동DJ 2010.10.12 0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윤희 선생님!
    극락왕생 하십시요.
    살아 생전 우리가 이따금씩 만났을때 처럼 그곳에서도 환한 미소 잃지 마십시요...

  3. 박성돈 2010.10.12 0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인이 이렇게 험난한 생을 살았는지 처음 알았네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십시요.

  4. 수선화 2010.10.12 2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의 마지막 추신 글이 저를 가슴아리게 하는군요...
    행복전도사님!
    극락왕생 하십시요

  5. 고수부지 2010.10.13 1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폄말씀 <~나절대 너랑 같이 못간다 가려거든 알아서 혼자가라>~ 이게 정답입니다 ~짝짝짝!

    <그래서 더 속상해요.너무 속상해요...>에서

    유인경님의 최윤희님 죽음에 대한 진심이 와닿아 나도 덩달아 울컥합니다~

    이아침 최윤희님의 명복을 빕니다

  6. 허수아비 2010.10.13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병마와 싸우시는 분들께서 용기를 잃지마시고
    끝까지 이겨 내시길...

  7. TTT30 2010.10.13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영남은 여친이라고 자랑하던 그 아줌마가
    이런 모습으로 떠났는데
    어떻게 조용하네?
    오늘 라디오 들으니깐 오두방정만 떨고 있드라...

  8. 박영주 2010.10.14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에 오신 고인의 강의를 두번 들었습니다
    정말 가슴에 와닿는 강의였습니다
    왜 이리 아까운 분들이 세상을 떠나는 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속물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당신은 절대 죽지 마십시오
    당신의 글을 읽고 만나는 즐거움을 주십시오
    28일 부산에 오신다는 전화받고 심밨다라고 외쳤습니다
    제발 오래오래~~~~사십시오

  9. 임국천 2010.10.16 2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분은 참 비밀이 많은 분이야...
    생전에 주변사람들에게 진실로 인간적인 대화가 없었던 분인지...
    아니면 본인이 그렇게 설정을 하듯,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리 만큼 엄핬던건지...
    이제는 편하게 좋은 곳에서 영원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