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우리 드라마의 최고 강점이자 단점은 너무 재미있다는 거다. 한국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 한국어 전공을 선택한 외국인들이 늘 정도다. 물론 너무 재미만 추구하다 보니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이라고 우기고, 온갖 출생비밀에 동성애를 비롯한 모든 금기가 깨져 “이제 남은 것은 사위와 장인의 사랑뿐”이라는 농담이 나올 만큼 막장드라마가 가득하다.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는 재미있다. 출생의 비밀도 애틋한 로맨스도 아이돌 스타도 없는데 텔레비젼 앞에 앉게 만든다. 하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시청자 뒤통수 치는 드라마’란 애칭(?)도 얻었다. 손현주·김상중·박근형 등의 탁월한 연기는 굳이 주·조연을 구분 짓지 않는다. “용서는 힘있는 사람이 하는 거야. 힘없는 자는 그저 포기할 뿐이고” “몸통에서 떨어진 꼬리는 절대 몸통에 다시 붙을 수 없어” 등의 대사들도 여운에 남는다.

 

SBS 드라마 '추적자' ㅣ 출처:SBS

 

매번 텔레비젼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드라마가 끝나고나면 납량특집 드라마가 아닌데도 왠지 섬틋해진다. 막강한 부와 거대 권력 앞에서 딸과 아내의 생명을 잃고 친구의 우정과 존경하는 상사마저 돈에 뺏긴 아버지의 분노와 복수를 그린 이 드라마가 작가의 상상력과 문장력의 결과물만이 아니어서다. 극중에서 재벌회장 박근형과 대통령 후보 김상중, 그리고 아내 김성령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기꺼이 딸을 버리고 장인이나 아버지를 협박하고 보통사람들은 벌레취급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한 사실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몇 년 전 권력자의 아들과 그 친구들이 차를 타고가다 인명사고를 냈다. 사건 가해자는 실종신고된 사람으로 교체(?)됐고 진짜 가해자인 그들은 다음날 단체로 미국으로 떠났다. 모 재벌며느리도 친정 사업이 부진해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연예인과 스캔들이 난 후 이혼했다. 한 재벌 2세는 하청업체 직원을 몽둥이로 때린 후 매값이라며 백만 원짜리 수표 몇 장을 건넸다. 1년 가까이 포크레인 위에서 생활하고 4명이 자살해도 묵언수행 중인 듯 재벌회장님은 답이 없다. 지금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날 장관시켜줄까?”가 궁금한 이들이 점집을 찾는다.

 

그나마 추적자의 주인공은 형사여서 동료형사의 도움도 받고, 담대한 행동이라도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이런 거대 권력 앞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맞설까.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은 100만 부 이상 팔렸다지만 정작 ‘정의’가 사라진 한국사회에서 소시민의 목소리는 작은 메아리로 공명조차 이루지 못한다. 대부분 드라마의 주인공은 통쾌한 복수를 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을 하지만 실상에선 법과 제도에 입각한 정의로운 복수를 못해 오히려 범죄를 저질러 죄인이 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복수를 포기하고 심지어 삶조차 포기하고 싶어지는 소시민들은 혼자 남아 추적자가 아닌 도망자 신분으로 거대권력에 맞서는 주인공 백홍석에게 응원을 보낸다. 제발 드라마에서라도 처절하게 응징하고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면서.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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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비 2012.07.02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범죄를 저질러 죄인이된다.. ㅠㅠ
    와닿네요

  2. 가비 2012.07.02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범죄를 저질러 죄인이된다.. ㅠㅠ
    와닿네요

  3. 고수부지 2012.07.04 1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적자는 명품드라마~정말 재미만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