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운동이건 비타민을 먹는 것이건 별로 꾸준히 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일기만은 꾸준히 쓴다.,
초등학교 시절에야 담임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기 위한 숙제였지만 그 이후 일기는 내 일상과 내 생각의 기록으로 나의 분신이기도 하다. 중학교 시절부터 쓴 일기장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일기를 쓰는 것은 습관일 뿐,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다.
꼼꼼하게 생활을 기록하는 것도 아니고, 문장력을 다듬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안네의 일기, 난중일기 등등 역사에 남을 내용도 없다.
매일 쓰는 것도 아니고 쓰는 분량도 일정하지 않다. 수첩은 해마다 같은 것을 사용하는데 일기장은 항상 다른 노트를 선택한다.

그런데 일기쓰기가 건강에도 좋단다. 7월 5일에 신문에 난 기사를 소개한다.

 

일기는 초등학교 때 숙제로 써간 이후로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 느낌, 매일의 사건 등에 대해 기록하는 습관은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나아가 전체적인 건강도 좋게 하다.
노스다코타 주립대학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천식이나 관절염 같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들의 일상생활을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씩 일기로 쓰도록 했다. 그 결과,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환자의 47%가 증상이 호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이나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을 글로 쓰게 되면 환자들은 자신에게 닥친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불면증이 사라지는 등 전체적인 건강도 좋아진다.
왜 일기를 쓰면 스트레스가 풀릴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사적인 생각을 풀어놓을 공간을 필요로 한다. 글을 쓰면서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보다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일기 쓰는 요령은 정해져 있지 않다. 최소한 8분 정도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적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일 의무로 쓸 필요도 없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쓰면 된다.....


하루 8분 투자라... 무리한 운동도 아니고 돈들여 사먹는 건강보조제로 아닌 일기가 그런 효과가 있다니...

내 경험상 일기는 확실히 치유효과가 있다.


내가 행복하고 마냥 즐겁고 발이 땅에 닿지 않을만큼 붕붕 뜬 기분일 때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저 내 황홀한 감정에 나를 맡기고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랄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고 속상하고 분노가 치밀 때 일기장을 펼쳐든다.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삶에 해법을 찾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감정조절이 잘 안될 때 난 일기를 쓰면서 혼자 자문자답을 하며 나를 위로하고 달랬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기도 그렇고, 누굴 꼭 욕하거나 흉보고 싶을 때 일기장에 고자질을 한다. (이러니 절대 타인에게 공개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보면 오빠들에 대한 원망이 대부분이다. 오빠들이 수시로 야단치고 약올렸는데 위계질서상 반항도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오빠들에 대한 미움을 토로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오빠들, 미안해요. 하지만 다시 일기를 읽어봐도 오빠들이 좀 치사하고 어른스럽지 못했어요)


대학교 시절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하고 신입 사원 시절엔 상사에 대한 신랄한 평가로 채워졌다.
신혼 시절엔...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한데 어떻게 지금까지 같이 사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35세 이후에 남편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포기한 것 같다. 그저 신세한탄이다.
일이 너무 많다. 사는게 힘들다. 난 왜 인정을 못받을까. 왜 아무개는 승승장구할까.
엄마가 치매에 걸리신 후에는 거의 간병일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고 수시로 엄마, 엄마를 찾는다. 
그리고 딸이 성장한 후에는 딸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절절하다. (내 딸이 매우 양호한 인간이긴 하지만 완벽한 딸은 아닌데 아마도 내가 딸에게 엄청나게 의지하고 좋은 딸이라고 믿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일기장은 내가 나를 응원하는 비타민주사 역할을 한다.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는데 뭐 이 정도면 잘 버틴 셈이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쨍하고 해뜰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난 꽁꽁 언 빙하시대에 살지는 않는다.
잘 나가던 아무개가 시련을 겪고 있단다. 세상사 참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난 무사하니 다행이다.
난 성실히 살고 있다. 내가 대견하다.
일이 너무 많다. 그건 내가 그만큼 역량이 있다는거다. 감사하자. 요즘 내 일기장에 자주 등장하는 문장들이다.

 

 

 

 

 

 

나 혼자 일기를 쓰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내 어깨를 또닥또닥 거려주고 “잘했어”라고 칭찬도 해준다.
더구나 작은 일에 무척 감사해하고, 겸허해지고 가장 놀라운 것은 누굴 원망하거나 흉보는 분량이 극히 줄었다는 것이다.(전혀 없지는 않다)

젊은날, 그토록 타인과 세상과 운명을 원망하며 팔자타령을 하던 것에 비해 참 관대해지고 겸허해졌다.


내 상황이 평화롭고 안정되어진 덕도 있지만 40년 가까이 일기를 쓰면서 누굴 비난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 별 효과가 없음을 깨달은 것 같다.
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고, 그게 충족되지 않아 열등감이나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대신에
내가 날 많이 사랑해주고 감싸 안아주게됐다. 전엔 내가 내게 제일 가혹한 비판자이자 혐오자였는데 이제야 내가 날 인정해주고 화해한 것 같다.

 

수십권의 일기장은 내 인생의 기록물로 남아 있다. 아마도 내가 죽기 전까지, 팔에 힘이 있을 때까지는 종이로 만든 일기장에 펜으로 또박또박 내게 일어난 일, 나의 생각과 감정의 편린들을 기록할게다. 삶이 내게 의문 부호를 던질 때 내가 자문자답하면서 날 따스하게 보듬어주고 싶다. 일기는 나의 치유제이자 카운슬러였다.

 

이제 어린 시절에 이니셜로 기록해둔 사람들은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고, 사건들 역시 가물가물하다.
날 사랑해준 엄마와 딸, 친구들 덕분에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내 일기에 악역으로 등장한 사람들과 억장무너진 사건들 덕분에 또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그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적다가 자세히 보면 내가 더 문제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다.


그 어떤 일도 메세지가 있고, 그 누구도 내겐 반면교사일지언정 스승 역할을 해주었다.

안경쓴 강아지가 그려진 나의 일기장. 그 유치찬란한 일기장을 위안삼아 오늘 하루도 잘 버틴다. 고맙다, 나의 일기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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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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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희 2012.07.06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경씨의 시원시원한 글솜씨가 어릴적 부터 써온 일기가 아마 밑거름이 되었을 겁니다
    차아암 성실 하십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쭈~욱 좋은글 부탁드려요

  2. 존재기쁨 2012.07.06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가 들면 쫌 편안해 질줄 알앗는데..
    뭔 일이 이리도 많고...스트레스가
    쌓이는지요...아직 도사가 덜되어서...
    유기자님...일기..좋은 방법 알려주어서
    고맙슴니다...힘들 때 저도 유치찬란한 일기를
    써가면서 존버(존나게버티기)해보겠슴니다..ㅎ

  3. global 2012.07.07 2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땐 일기 쓰는 것 너무 힘들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꾸준히 글쓰고 기록하신것. 타고난 기자님이세요
    누구나 알기쉽게 공감하면서 미소짓게하는 글 고맙습니다^*

  4. 마포댁 2012.07.08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의 도움이 되는 유익한 글들을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써주시는 그모습에 감사드립니다.

  5. 이름 2012.07.09 0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기자님께 고맙네요ㅎㅎ^^
    유익하고 공감가는 일기들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요~

  6. 이름 2012.07.09 05: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기자님께 고맙네요ㅎㅎ^^
    유익하고 공감가는 일기들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요~

  7. 기원섭 2012.07.10 0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는 우리 유기자님께서 탁자위에 놓은 노트를 단 한 번도 내려다보지않고 그저 상대의 얼굴만 쳐다본채 2시간이나 인터뷰하면서 글을 쓰는 것을 현장목격한 사람입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바로 그 실전적 실력,
    어릴때부터 써온 일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저는 일상의 이야기를 씁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A4용지 12포인트 4, 5장짜리로 1만 편...
    참 재미있더라고요...
    누가 보든 말든 말입니다.

  8. 공감 2012.07.10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경언니의 설득력있는 일기의 중요성에 저도 마음먹기에 그쳤던 일기쓰기를 시도 해 보려구요..
    독자들의 내면을 꾸준히 성장시켜주는 '수다의힘' 화이팅!!

  9. 한명희 2012.07.23 2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 7월 계속 일기쓰기에 게으름을 부렸는데
    유기자님 글을 보며 다시 일기쓰기에 부지런을 떨어야겠단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10. 마음의 위로 2012.08.14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이 팍팍할때마다 들러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갑니다..
    언제나 읽다보면 저도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네요- ^^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