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어도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이다. 사람 관계, 알 수 없는 사람 속, 그리고 호감과 친분의 정도... 그래서 사람이 사람과 잘 어울리며 오랜 인연을 유지하며 산다는게 참 쉽지 않다. 

 

얼마전 이번에 출간한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의 출판 기념회를 했다. 지인들 중 비교적 출세한 어르신들이 순서대로 등장해 양복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고, 이어서 돋보기를 쓴 후에 참으로 담담하고 지루한 어투로 하는 형식적인 축사도 싫고 다들 중요한 사람들인데 “오늘 참석하신 귀빈들을 소개합니다”라는 안내 멘트도 싫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초대해서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나쁘게 표현하면 좀 저렴한 모임을 열기로 했다.

 

 

 

 

그들에게 내가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즉 정담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아무 생각없이 “출판 기념 모임이나 하려고 한다”니까 주위 사람들이 더 걱정을 했다. 장소는 어디에서 할 거냐, 시간은 언제로 할 거냐, 저녁 시간대면 밥은 어떻게 준비할 거냐... 무엇보다 대체 누구를, 어떤 사람을 부를거냐...

 

그리곤 엄청나게 기대들을 했다.

“인경씨는 워낙 발이 넓쟎아. 그동안 인터뷰한 사람들만도 어디야?”

발은,,, 짧지만 넓긴 하다. 인맥은 모르겠다. 3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으니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또 내가 방송에도 출연하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인터뷰한 사람만 초대해도 어지간한 강당을 차겟지만 내가 그들을 알고 그들이 나를 안다고 우리가 인맥인가, 우리는 친한 사이인가...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과연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가. 친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바쁜 시기에 저녁 시간에 달려올 여유가 있을까. 시국 포럼도 아니고, 뮤지컬이나 가수 공연도 아니고, 김제동의 재기넘치는 토크쇼도 아니지 않은가. 혹은 결혼이나 상가처럼 예의나 의리상 가줘야할 자리는 더더욱 아니고 내가 이번 박근혜 정부에서 한 자리 맡거나 맡을 사람은 더더욱 아닌데 과연 누가, 얼마나 흔쾌히 와줄까..

 

요즘 유난히 자주 만나는 이들도 있고, 또 몇달을 전화 한통화 못해본 사람들도 있는데 달랑 문자 하나 보내놓고 와주길 기대하는 것은 또 얼마나 뻔뻔한 일인가. 무엇보다 과연 나의 지인들이 나를 조금이라도 사심없이 좋아하고 보고싶어는 하는지도 갑자기 의구심이 들었다.

 

 

 

누굴 좋아한다는 감정은, 그게 사랑이건 존경이건 호감이건 리트머스 시험지에 넣어 산도 몇도로 정확히 수치를 매길 수도 없고 내 감정과 상대의 감정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네비게이션처럼 그 사람의 마음에로 향하는 지도도 없다. 내 앞에서는 흐드러지게 찬사를 늘어놓아도 정작 다른 이들에게 험담을 늘어 놓은 인사도 있고 무뚝뚝한 태도여서 나를 싫어하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려운 부탁도 잘 들어준 이들도 있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고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하는가라고 판단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동창, 학교 선후배, 취재원으로 만났지만 친분이 깊어진 이들, 수다수다컴이란 홈페이지를 운영할 때 알게된 분들 등 각종 인연으로 나와 얽힌 이들에게 와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이란 책 제목처럼, 내가 좋아하고 보고 싶은 이들이니 와주고 안와주는 것은 그들의 문제였다.

 

그리고.. 출판기념일날. 정말 많은 이들이 와주셨다. 대한민국에서 바쁘기로 소문난 이들, 시간없다고 노래하는 이들이 모였다.

45년 우정을 나눈 초등학교 동창 정숙이, 고등학교 동창들은 담임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 부인의 생일인데도 패션디자이너 서정기씨는 격려의 포옹을 나누고 먼저 자리를 떠났고, 기자 초년병 시절에 나를 도와줬던 취재원들, 그리고 어떤 시절에건 나와 좋은 인연을 맺었던 지인들이 왔다. 최윤영 아나운서는 유아원에 다니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왔다.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에, 내가 직접 챙기기 못해 허접하고 부족한 식사, 따지도 않은 와인과 음료 등 엉성하기 그지없는 행사였는데도 다들 끝까지 자리를 지켜줬다. 나는 이렇게 인삿말을 했다.

 

“오늘 저는 제가 좋아하는 분들을 모셨습니다. 여러분이 절 좋아하고 말고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죄라면... 유인경에게 사랑을 받은 죄랍니다.”

 

성형외과 의사인 나의 사돈은 색스폰을 연주했고, 3월 2일부터 전국 콘서트 투어를 하는 이장희씨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러줬다. 조영남 선생은 유인경만을 위해 부르는 노래이니 다른 이들은 귀를 막아달라는 엉뚱한 요청을 하며 <라 팔로마>를 불러줬다. 조영남 선생은 “이렇게 그지같이 밥을 주는 파티는 처음”이라고 투덜거렸지만, 그런 말로 다른 이들의 불만을 잠재워주었다. 정운찬 선생은 “이제는 유인경을 위해 살겠다”고 공약했고,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는 “이렇게 좌빨이 많은 곳에 오니...”라며 재미있는 인사를 남겼다. 고교 은사인 서영신 선생님은 “인경이는 어릴 때부터 예뻤다”는 덕담 아닌 덕담을 하셔서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1년 이상 얼굴을 못본 친구도 왔고 새 정부의 요직을 맡은 선배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줬다. 명사나 권력자들이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이들이 가득한 자리여서 나도 행복했다.

 

이 모임을 통해 나는 또 배웠다. 내가 사랑받는 것, 누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다른 이들을 좋아하고 감사해하면 그들도 그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이다.

 

난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좋아하고 사랑할거다. 그리고 새로 인연을 맺은 이들과도 그 인연을 오래오래 소중히 이어가고 싶다. 내가 10만큼 사랑하는데 왜 나를 5밖에 사랑하지 않냐고 투덜거리는 대신에, 그 사람을 10만큼 사랑할 수 있는 나의 에너지와 마음에 자부심을 가지고 싶다.

 

씨줄과 날줄로 이어지는 인연들. 때론 줄이 어긋나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정성껏 엮으면 아름다운 매듭이 된다. 때로는 내가 엮이고 때론 그들을 내가 묶기도 하면서 우리의 인생이 다듬어진다.

 

난 고위관직에 오르지도 않았고, 부와 명예도 없지만 이처럼 좋은 인연을 맺고 사니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생각이다. 그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내가 참 많이 사랑받는다고 착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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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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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들레 홀씨되어 2013.02.26 15: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의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잘 읽었고 너무 많은 감동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자리에 가보고 싶었는데...
    혹시라도 앞으로 그런 계획이 있을때는 이곳에 들르는 우리 모두가 참여할수있게 공지를 해 주시지요.
    약간은 서운합니당~~

  2. 고수부지 2013.02.26 1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로 축하하고 또 축하합니다~미모와 사랑 짝짝짝!!!

  3. pradu 2013.02.27 1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져요~

  4. 이네 2013.02.27 17: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 드려요~~~!! 좋은날 좋아하는분들과 행복한 시간 이였겠어요
    영양만점"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 대박 나셔유~~~^^

  5. kristina 2013.02.28 1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사는 버지니아주의 페어펙스 카운티에 제가 주로 다니는 도서관 3곳에 모두 유기자님의 책이 있는데요
    새로 나온 책도 이곳에서 곧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유기자님 축하드리구요....어렸을 때 부터 예쁘셨군요....^^
    여지껏 저만을 위해서 살아온 인생 이제부터는 남들을 위해서 살아볼까 했었는데....이를 어쯜? ^^;;

  6. 이수경 2013.02.28 1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책사서 볼께요. 그걸로 제가 기자님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지려나 ㅎㅎ

  7. 이수경 2013.02.28 1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책사서 볼께요. 그걸로 제가 기자님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지려나 ㅎㅎ

  8. 기원섭 2013.03.01 09: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감동이 깊은 자리였습니다.
    주인공인 유기자님도 아름다웠고, 축하를 해주려고 발걸음해준 이들도 아름다웠습니다.
    모습도 아름다웠고, 그 마음도 아름다웠습니다.
    단, 저 하나만 빼고...
    유기자님의 소개로 앞으로 나가서 몇 마디 말을 하게 되었는데, 왜 그리 떨리는지, 다른 분들 하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넋이 나가 제 자랑만 늘어놨습니다.
    특히 이장희님과 조영남님의 노래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선물이었습니다.
    저 지난해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님의 '위대한 침묵'이라는 책에 조영남님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짚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저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는 유기자님의 요청을 선뜻 받아들이셔서 멋지게 한 곡을 뽑았습니다.
    바로 옆에서 지켜봤는데, 정말로 정성을 다해서 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남달리 음악을 좋아하고, 특히 조영남님을 좋아하는 저로서,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날로 집에 돌아와, 그 노래를 배워버렸습니다.
    남의 잔칫상에서 내놓은 것 없이, 얻어만 온 하루였습니다.
    유기자님!
    그날 진행솜씨, 참 일품이었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어찌되었건, 제 가슴에는 깊은 감동을 담아왔기 때문입니다.

  9. 꽃사슴 2013.03.04 2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출판기념회 다녀오신분들이 마냥 부럽습니다. 저도 책을 사 읽고 있는데 후딱 빨리 읽어버리기가 아까워서 천천히 맛있는 빵을 오래 먹으려고 매일 한입만큼씩 먹는 아이처럼 책을 조금씩 보고 있어요.
    물론 수다의 힘에 들어와서 최근의 글도 열심히 읽는데
    만나보고 싶은 분입니다.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 살고 싶어서 올 2월말로 명퇴하였고 가장 훌륭한 선택이라 자부하며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유인경기자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세요. 좋은글 많이 볼 수있게

  10. 2013.03.06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리차드 2013.03.19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인경님 팬입니다.
    오랜전 20년 그 이 전부터 TV나 매스컴을 통해 오랜동안 보았고 토론 대화 외모도 아름답지만
    말씀은 아주 시원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주의 지인 들도 기자님의 책을 구입하는것 같더군요.
    왕성한 할동 부탁드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인생 이야기 많이 글로 방송으로 매스컴으로
    부탁해봅니다.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