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나 노희경 작가가 쓴 드라마는 꼭 본다. 칠순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 시대의 트렌드를 가장 정학하게 집어내는 직관력, 세대를 초월해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 특유의 감칠맛나는 대사를 쓰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노희경 작가의 경우 단순히 드라마라고 하기엔 너무나 깊이 있고 아름다운 대사와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담긴 작가의 고뇌가 엿보여 역시 노희경 작가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본다. 그런데 그토록 역량있는 작가,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작가 지망생들이 우러러보는 작가들도 상업주의의 바람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노희경 작가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협찬·간접광고 제품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드라마 속에서 각종 상품들을 너무 노골적으로 노출하고 대사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최근 막을 내린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는 막내아들이 운영하는 코오롱 스포츠 가게며 옷이 상표를 그대로 달고 나오고 온가족이 기아자동차만 탔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물론 다른 드라마는 더욱 심하다. 지난 2010년 방송법 개정으로 간접광고 PPL이 허가된 이후 과거 브랜드 이름을 살짝 바꿔 노출하는 방식에서 이제는 대놓고 상표를 노출해 극의 흐름까지 영향을 준다. 드라마의 줄거리와 별 상관없이 주인공들이 홍삼액을 마시기도 하고, 특정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고. <광고천재 이태백>SK텔레콤이 지난 18일부터 새로이 펼치는 광고 캠페인의 실제 탄생 과정을 선보이기도 했다.

 

상품이나 회사를 소개하며 협찬 형식으로 드라마나 방송 프로에 노출시키는 PPL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김수현 작가나 노희경 작가처럼 정말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작가란 자존심으로 버티는 이들조차 이런 상품 정말 좋아등 극과 무관한 대사까지 쓰게 된 현실이 참 안타깝다.

 

방송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서 여주인공이 입는 옷이 다음날 완판되고, 수억대의 수입자동차도 꽃미남 주인공이 몰고 나오면 몇 대씩 팔리기도 한단다. 하지만 드라마에 협찬 회사 이름이 그대로 나오는 것은 좀 어이가 없다. 드라마에는 대개 재벌회사의 가족들이 등장하는데 온갖 졸렬한 암투, 출생의 비밀 등이 뒤범벅되어 그야말로 패륜 가정이자 비윤리적인 회사로 나오는데도 그렇게 자기 회사 이름을 버젓하게 노출하고 싶을까.

 

이젠 시청자들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상품들이 협찬이란 걸 안다. 한 시청자는 얼마전 <무자식상팔자>에서 임예진이 피부에 좋다며 숟가락으로 얼굴을 마사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도 숟가락 회사 협찬인가 의심이 들 만큼 극의 몰입이 힘들다고 했다. 시청률과 돈에만 목숨 거는 방송사들이야 그렇다 치고 작가들의 자존심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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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방송국 비정규 사원 2013.03.27 0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인경기자님의 예리한 분석과 지적에 절대 동의하며 박수를 칩니다.
    짝짝짝...

  2. ㅎㅎ 2013.03.27 1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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