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00만원대 고가 브랜드 상당수 한국인이 만들어

우수한 품질·최신 트렌드 반영한 디자인·철저한 현지화로 본고장 미국서 성공 신화

 

서울 충무로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3층에 가면 블루핏이라는 매장이 있다. 프리미엄진 전문 매장이다. 30~100만원대의 프리미엄진은 청바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큰 맘 먹고 사야 하는 고가의 명품 청바지다. 입구에는 블루핏에서 취급하는 프리미엄진 브랜드가 소개돼 있다. 로빈스진과 제임스진, 트루릴리젼, 시위, 세븐진 등 세계적인 브랜드 7개가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데 이 중 AG진과 제임스진, 시위는 한국인이 만든 청바지다.

 

임선희씨(27·가명)프리미엄진은 막연히 미국업체들이 만드는 줄 알고 있었는데 한국인이 만든 브랜드가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드라마나 K팝만 한류의 주역이 아니다.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청바지에도 한류 바람이 거세다.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명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즐겨 입는 프리미엄진의 대부분은 재미동포들이 만들어 판매하는 청바지들이다.

 

프리미엄진 시장에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의 스타들이나 명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즐겨 입는 허드슨진과 제임스진, AG진 등은 재미교포들이 만들어 판매하는 청바지들이다. 청바지를 입고 포즈를 취한 한 모델.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섹시 청바지의 대명사 된 허드슨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최근 허드슨진은 이제 섹시 청바지의 대명사가 됐다며 허드슨진과 창업자인 재미교포 피터 김의 성공담을 크게 보도했다. 허드슨진은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주드 로, 영국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즐겨 입어 유명세를 탔다. 허드슨진만이 아니다. 재미교포 정장훈씨가 만드는 제임스진은 할리우드 톱여배우들인 제시카 알바와 패리스 힐튼, 제니퍼 애니스턴 등이 단골 고객이다. 고소영이 즐겨 입어 일명 고소영진으로 불리는 시위진과 레이븐데님의 주인도 한국인 크리스 박이다. 특히 구우율씨가 만든 AG진은 오프라 윈프리가 방송에서 가장 편안한 진이라고 극찬해 당시 판매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이들 한국인이 만든 프리미엄진은 연매출이 각각 3000~5000만달러(330~550억원)에 이를 만큼 인기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 200대 이상의 기계들을 가동하는 공장들 중 10군데 이상은 한국인이 운영한다.

 

또 패션디자이너 브랜드들의 고급 청바지 원단인 데님도 LA 지역에서 한인들이 운영하는 청바지 공장에서 거의 70% 이상을 생산한다. 이제 프리미엄 청바지 시장에서 한인들을 빼면 이야기하기가 힘들 정도다. 독일 출신의 청년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150여년 전 천막천으로 만든 작업복으로 미국 의류의 상징을 만들었듯 이제 한국인들이 청바지의 본고장 미국 LA지역을 중심으로 전 세계로 뻗어가며 새로운 청바지 한류로드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여배우 송혜교, 김희선과 작업한 스타일리스트 심우찬씨는 스타들은 브랜드만 보고 옷을 고르지 않는다.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게 해주는 독특한 디자인과 편안한 착용감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탁월한 손재주로 승부한 한국인의 청바지가 그들을 만족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청바지는 겉보기와 달리 제작과정이 단순하지 않다. 평범한 면부터 신축성이 뛰어난 스트레치까지 원단 종류만 수백여가지가 되고, 공정도 다채로운 염색기법을 비롯해 단추달기부터 재단에 이르기까지 40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꼼꼼하게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프리미엄진은 성공하기 힘들다. LA에서 트럭진을 만들어 국내에서도 히트시킨 블루제이드의 장재택 사장은 청바지는 옷이 아니라 생필품이자 철학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타고난 꼼꼼함과 정성을 통해 한인들은 저마다 특색있는 진을 만들어냈다. 허드슨진은 마치 입체재단을 한 듯 몸의 선을 부드럽게 감싸 착용감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다.

 

제임스진은 뒷주머니에 다트(입체감을 살리기 위한 주름같은 것)를 넣는다. 마치 브래지어처럼 엉덩이를 감싸 볼륨있어 보이도록 만든 기법으로 섹시함을 강조해 인기다. 미국 트럭의 자유로움을 상표로 내건 트럭진은 다양한 기법의 염색으로 다리가 가늘고 길게 보이게 해준다.

 

한인 프리미엄진 브랜드 성공의 밑바탕에는 경영인들의 불굴의 정신이 깔려 있다. 트럭진 장 사장은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있었기에 미국 청바지 시장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초기엔 봉제공장으로 출발했죠. 처음부터 샴페인을 터뜨린 게 아닙니다.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고 눈물과 땀을 흘리면서 10년 이상 꾸준하고 끈기있게 데님 생산을 해왔고, 그 품질과 생산 구동력으로 한인들이 마침내 미국 데님 생산의 중심에 서게 된 겁니다. 또 유명브랜드의 하청을 받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과감한 자체 브랜드 개발과 적극적인 세일즈, 마케팅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게 미국 주류사회에서 견고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입니다.”

 

장 사장은 인건·제작비가 저렴한 남미나 중국 등에서 생산할 수 있지만 반드시 미국 현지에서 디자인과 생산을 해서 Made in USA를 강조한 것도 주효했다고 말했다.

 

2011년 세계 패션계의 힘 있는 100인 중 96위로 한국 사람 중 유일하게 랭크된 구우율 사장은 패션계 아메리칸드림의 대표주자다. 프리미엄진 AG를 비롯, 빅스타 아드리아노 골드슈미스 같은 브랜드를 만든다. 그는 한국에서 부모님이 경영하던 뜨개질 공장에서 경력을 쌓은 뒤 미국으로 진출, 부와 명예를 일궈냈다.

 

한국인 특유의 성실·끈기가 비결

 

허드슨진을 만든 피터 김은 LA에서 태어난 한국계 2세다. 빚더미에 놓여있던 부모의 봉제공장을 물려받아 일으켜 세운 다음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했다. 지난 2000년 여성 진브랜드 제인스 아미’(Jane’s Army)를 선보였으나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태국에서 만든 제인스 아미는 반품이 너무 많아 결국 문을 닫았다. 2년 후 이탈리아에서 고급원단을 사와 LA 현지 공장에서 모든 공정을 끝내 만든 허드슨진이 히트를 쳤다. 가격경쟁력보다는 품질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덕분이다. LA타임스는 피터 김의 실패를 두려워말라’(Don’t be afraid to fail)는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허드슨진의 신화가 가능했다고 그의 성공스토리를 소개했다.

 

제임스진의 정장훈 대표는 뉴욕 월가의 잘나가던 변호사에서 돌연 패션 CEO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제임스진 론칭 첫 해에 매출 400억원의 엄청난 판매액을 기록했다. 그는 최근 국내 토크쇼 프로에 출연해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낯선 환경에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길이 있다. 막혀도 또 돌아갈 길은 있다고 늘 생각했다며 긍정적 사고가 성공비결임을 밝혔다.

 

시위진의 크리스 박은 최근 <트랜스포머>의 여주인공이자 섹스심벌인 메간 폭스와 함께 비영리 자선단체를 설립해 화제가 됐다. ‘우리는 하나’(We R(are) 1)라는 의미를 담은 R1 재단은 크리스 박이 주도했으며 메간 폭스, 브라이언 오스틴 그린이 참여했다. 이 단체는 미국의 스타들이 평소에 만들고 싶었던 스타일의 청바지를 레이븐데님의 디자이너와 공동 제작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크리스 박은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큰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여러명이 모여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의 경제 불황으로 의류업계도 타격을 받고 있지만 청바지, 특히 프리미엄진은 불황을 모른다. 2012년에도 전년에 비해 매출이 2% 성장했다.

 

청바지 하면 가장 편안한 옷과 함께 미국이 떠오른다. 미국은 이렇게 청바지로 세계의 옷을 지배했다. 이제 한국인이 그 청바지를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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