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한 벌 값보다 비싼 프리미엄진 불티

신분·재력 과시욕에 여성들 스타 따라하기

전문직 중년남성 청바지 도전도 시장 불붙여

 

열렬한 청바지 애호가이자 패션디자이너인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청바지를 진정한 패션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남루한 노숙자부터 수조원대의 거부 빌 게이츠까지, 그리고 어린아이부터 80대의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빈부 차별이 없고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모두 입을 수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장소나 행사도 가리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고상한 오페라하우스에서도, 기업의 제품 발표회에서도 청바지를 보는 게 어렵지 않다. 1만원짜리 셔츠만이 아니라 수백만원대의 샤넬 트위드재킷에도 잘 어울린다.

 

이렇게 민주적인 청바지도 정작 자신들의 계급화는 피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고가의 프리미엄진, 패션진이 등장하면서 청바지의 서열이 매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활용 중고품을 파는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청바지 한 벌이 500원에 팔리기도 한다. ‘반값을 주장하며 텔레비전 등을 팔던 이마트 등 대형할인점에서는 9000원대에 청바지를 팔았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의 제품은 2~3만원대. 중저가 제품은 보통 5~8만원대에 팔린다.

 

프리미엄진으로 올라가면 가격이 치솟는다. 디젤 등 프리미엄진은 30~100만원대이고 돌체가바나, 칼 라거펠트 등 디자이너가 패션쇼에서 선보인 청바지는 무려 200~300만원에 팔린다. 한국에서 팔린 가장 비싼 청바지는 3년 전 랑방에서 판 598만원짜리 제품으로 30대 보통(?)여성이 구입했다.

 

 

 

프리미엄진, 한 해 500억대 시장으로 급성장

 

현재 우리나라의 청바지 시장은 1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청바지 브랜드는 뱅뱅으로 2011년에 2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청바지를 일상의 활동복으로 입는 이들이 가장 익숙하게 들어본 브랜드이고, 가격대도 무난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중저가 브랜드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청바지 시장에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게 프리미엄진이다. 프리미엄진은 지난해 기준으로 500억원대 시장으로 커지는 등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블루핏 등 청바지 전문 편집매장에서 주로 팔리는데 월 매출이 1억원을 넘을 만큼 인기다. 해외브랜드를 직접 구매 대행해주는 업체에서 판매되는 금액까지 계산하면 그 이상이다. 값싼 청바지가 수두룩한데도, 또 겉으로 보기엔 큰 차이가 없는데도 정장 한벌값보다 더 비싼 청바지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스타일리트스 윤혜미씨는 스타 효과 독특한 디자인과 탁월한 착용감 CEO, 금융인, 변호사 등 전문직 중년 남성들의 새로운 구매층 등장 등을 이유로 꼽는다.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제시카 알바 등의 할리우드 여배우들과 슈퍼모델 지젤 번천, 미란다 커 등이 입은 청바지를 보면서 동질화 욕구를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스타들의 공항패션과 파파라치 사진 등을 통해 스타가 입은 브랜드를 파악하고, 해외에 직접 주문해서라도 특별한 청바지를 구입하는 마니아층까지 생겨났다.

 

디자인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윤혜미씨는 프리미엄진의 질 좋은 원단과 부위별로 정교하게 재단된 패턴은 착용했을 때 몸의 선이 살아나도록 몸매를 꽉 잡아주면서도 움직이기 편해서 S라인을 꿈꾸는 많은 여성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진은 엉덩이를 팽팽하게 잡아주어 다리가 길어 보이도록 해 숨막히는 뒤태를 완성해준다. 탁월한 착용감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요인 중 하나다. 대부분 수십단계의 공정과 다양한 가공을 통해 부드러워진 소재로 입기에 편하다.

 

프리미엄진이 청바지의 명품으로 인식되면서 착용한 브랜드를 드러내고자 하는 소비자의 과시욕도 작용한다. 심리학자 최창호 박사는 프리미엄 청바지 역시 과거 나이키 운동화나 노스페이스처럼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신분과 재력을 상징하는 기호가 됐다면서 특히 이들 청바지는 상표가 대부분 엉덩이 주머니의 심벌로 구분되어 뒷모습으로 은근한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문직 고수입 중년남성들의 청바지 도전도 고가의 진 판매에 불을 붙였다. 비교적 보수적인 기업에서도 청바지 입는 날을 정하는 등 청바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대표이사까지 신입사원들과 소통과 공감의 장을 펼칠 때 청바지 차림으로 참석하는 게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특히 7080세대들에게 청바지는 추억의 코드로 작용한다.

 

각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청바지 연출법등을 지도하는 것도 이런 풍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패션디자이너 박윤수씨는 “40~50CEO들의 경우 청바지만 입어도 위에 입는 셔츠, 신발, 헤어스타일 등이 모두 달라져 결국 사고의 유연성을 갖게 한다면서 그들에겐 딱딱한 소재의 일반 청바지보다는 부드러운 촉감과 세련된 디자인의 프리미엄진을 권한다고 했다. 코오롱의 조은주 마케팅 부장은 청바지 선택에 곤혹스러워하는 중년남성들을 위해 일반 신사복에서도 따로 입기 편한 청바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 민주주의고가의 아이템으로 진화

 

청바지는 옷 가운데 유일하게 오래 입을수록, 연륜이 묻어날수록 멋지고 근사해 보인다. APC진이나 누디진은, 아예 워싱(염색 가공)하지 않는 생지의 청바지를 판매한 뒤 가장 멋스럽게 청바지의 형태를 잡아온 이들에게 고가로 되사거나 다른 상품을 더 주는 프로모션도 한다. 취향이 맞는 이들끼리 청바지를 입고 바닷물에 뛰어들기, 1년간 세탁하지 않고 한벌로 버티기 등의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트럭진의 임아름씨는 미국이나 유럽 등은 우리나라와 세탁문화가 달라 한두번 입고 세탁기에 돌리지 않는다면서 청바지 데님의 원상 복원력을 살리려면 자주 안 빠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청바지의 창시자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자신이 판 천막천이 물이 샌다며 항의하러 온 이들을 무마하기 위해 그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팔았다. 당시 6달러짜리 천조각에 불과했던 청바지는 그 민주성으로 세상을 점령한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은 수십만,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패션아이템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청바지의 민주성보다 계급성이 주목받는 시대가 됐다. 누구나 청바지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또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는 것은 더 이상 청바지 자체가 아니다. 그가 입는 청바지 브랜드의 상표다.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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