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밥을 먹는데 깨작깨작 새가 모이를 먹듯한다. 정신없이 내 밥만 먹다 그 친구의 숟가락 운동이 너무 느려 한마디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요즘 통 입맛이 없어서 그래. 나이드니까 식욕도 주는데다 봄을 타나봐. 넌 좋겠다. 그렇게 늘 잘 먹어서...”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지만, 친구의 말처럼 난 늘 잘 먹는다. 어릴때부터 50대 중반인 지금까지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빼놓고는 거의 끼니를 거른 적이 없다. 입맛없다, 밥맛없다, 식욕이 없다 등등의 말은 내 사전에 없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고 충격적인 상황에 접해도 내 뇌의 식욕담당 기능은 단 한번도 작동을 멈춘 적이 없다. 아니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먹을 것이 떠오른다.



너무너무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겪은 날도 펑펑 울다가 “그래, 고추장에 밥 비벼먹고 기운을 차리자”며 분연히 부엌으로 가서 참기름의 고소함과 고추장의 매콤한 맛에 위로를 받는다. 


비호감인 사람도 “같이 식사 하시죠. 혹시 ㅇㅇ레스토랑 아세요? 요즘 아주 핫한 식당인데 파스타가 일품이래요”라고 하면 그 메뉴에 눈이 멀어 약속을 잡고 그 날의 식사를 즐긴다. 그리고 별로 사이도 안 좋은 이와 파스타를 먹으며 이런 수다를 떤다.


“원래 이 파스타, 즉 스파게티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개발한 거 알아요? 어느 책에 보니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가져온 국수를 이탈리아 스타일로 정착시킨게 레오나르도 다빈치래요. 원래 요리를 너무 좋아하고 요리사가 꿈이라 그림 그려 판 돈으로 식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었다네요.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파스타를 즐기게 된 거죠.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같은 명화보다 난 이 파스타를 개발해준 공로가 더 큰 것 같아요. 그리고 누가 대체 토마토를 국수랑 버무리고, 조개를 처음 넣은 이는 누굴까요. 고마운 분들이야, 정말..”    


대부분 감기에 걸리면 식욕을 잃거나 구토 증상을 보이는데 난 고열에 신음하고 미친듯 코를 풀고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아, 스팸이랑 김치볶음이랑 밥을 먹어야지”라거나 “하동관 곰탕 먹고 싶다” 등의 구체적 음식과 식당 메뉴가 머리 속에서 돌아다닌다.


내 자신이 가장 혐오스러웠던 순간은 우리 엄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10년이나 치매로 고생하디가 돌아가셔서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난 날 지탱해준 힘이 엄마의 존재라고 믿었기에 엄마가 돌아가시면 따라 죽지는 못해도(나도 내 자식을 키워야하니까) 기절을 하거나 식음을 전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참 슬프고 허망하고 허탈한 가운데도  정신이 없어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할 여유도 없었는데도 난 식사 시간이 되자 나도 모르게 육개장을 한그릇 잘 먹고 있었다. 물론 다들 주위에서 “너라도 버텨야 한다”고 식사를 권유하긴 했지만,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의 육개장이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엄마 장례식장에서 식욕이 돌고 육개장 맛을 음미하다니 난 정말 한심한 인간이고 불효녀다.


그래서 단식을 하거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들을 보면 부럽다기 보다 무섭다. 언젠가 가수 옥주현씨가 인터뷰에서 “당연히 배 고프고 음식을 보면 먹고 싶죠. 그럴 때마다 ‘저 음식들, 다 아는 맛인데 뭐’라고 생각하고 식욕을 눌러요”라고 말했다.(난 그렇게 기억된다)



왜 똑같이 아는 맛인데 이렇게 반응이 다를 수가 있을까. 난 아는 맛이어서 더더욱 그 맛의 풍미와 매력과 쾌감이 기억나서 도저히 식욕을 누를 수가 없는데 말이다. 

왜 내 모든 욕망은 출세나 성공, 고급 빌리나 명품 가방이 아니라 음식에 집중되어 있을까. 그렇다고 어릴 때 너무 못 먹어서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더구나 모든 추억도 먹거리와 함께 떠오른다.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 직접 튀겨준 도넛, 아버지가 사준 도가니탕, 여름이면 언니와 같이 먹던 유난히 파란 잎의 김치쌈, 오빠가 고등학교 졸업식날 사준 파인힐의 고기, 내 친구 세라네 집에서 처음 먹어본 튜나 샌드위치, 정숙이 엄마가 구워준 가자미, 그레이스 선생님과 같이 먹던 복국...


일본에서 먹은 초밥, 프랑스에서 먹은 크로아상, 홍콩의 딤섬, 그리스의 올리브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 필리핀의 생선튀김, 모나코의 특급 호텔에서 몰래 먹은 컵라면, 이탈리아 골목의 피자...


같은 책을 자주 읽기는 힘든데 유난히 즐겨 꺼내 읽는 책도 음식이 자주 등장하는 책이다. 뒤마의 <몽테 크리스토 백작>은 나폴레옹 시대 격변기에 살던 청년 에드몽 당테스의 복수극을 다룬 소설이지만 작가 뒤마도 나만큼 식욕과 식탐이 많은 사람이라 곳곳에 음식이 자주 등장하고 그 음식에 대한 설명이 소개되어 입맛을 자극한다. 영국의 광고인 피터 메일l이 프랑스 프로방스에 정착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방스에서의 1년> <언제나 프로방스>에는 프로방스 지방의 각종 음식, 송로버섯 찾기 등이 풍성하게 소개되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참 무식한 독자이지만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서도 주인공 서희의 고뇌보다 음식이 소개되는 장면에서 더 감동했다. 일생 엄청난 절제를 하며 평생 자급자족하고 100세 무렵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자연사한 스콧 니어링과 그의 부인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과 <소박한 밥상>등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들의 인생철학을 실천하기 보다 그들이 통밀로 만든 빵, 메이플시럽 등을 만드는 과정 이야기에 침이 꼴까닥 넘어갔다.     


문제는...예전엔 아무리 많이 먹어도 기쁨만 가득했을 뿐 몸은 별 변화를 보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몸이, 특히 배가 정직해진다. 먹은만큼 배가 볼록해지고 윗배, 아랫배 모두 언덕을 이룬다. 몇년전 입은 청바지의 단추가 채워지지 않고. 허리 벨트를 묵는 옷을 포기한지는 오래다. 갈수록 텔레토비나 미쉘린 타이어의 모습으로 체형이 변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음식의 고마움과 먹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포기할 수가 없다. 아직 식욕이 왕성하다는 것도 감사하고, 단단한 음식도 잘 씹어먹을 수 있는 치아도 고맙다. 무엇보다 혼자 고독하게 먹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밥벗이 되어주는 가족과 지인들이 많다는 것도 축복인 것 같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이라며 많이 먹는 인간을 비하하기도 한다. 나도 식욕과 식탐에 이성을 잃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난 배고픈 철학자 소크라테스보다 즐겁게 먹는 인간이 되고 싶다. 나는 운전, 골프, 춤, 등산, 온갖 게임 등등 다른 이들이 쾌감을 느끼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데 먹는 기쁨마저 누리지 못한다면 불쌍하지 않은가.



몇일전 시장에서 쑥, 냉이 등 봄나물을 사와서 지금도 된장풀어 국과 찌개로 먹고 있다. 


화려한 봄 옷을 못입으면 어떤가, 봄이 내 온 몸안에 퍼지는데... 비만이라고 흉봐도 어쩔 수 없다. 


더 늙기 전에 더 맛있는 것을 먹어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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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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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다 2013.03.29 1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억을 잘 떠올리지 않는 성격인데
    선생님 글 읽으면서 저도 음식에 대한 추억을 잠시 떠올려봅니다.
    돌아가신 엄마는 육개장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드셨는데,
    어느 식당에서도 그 맛을 따라갈 육개장이 없어
    잘 안먹게 되요,
    한옥집 부뚜막에 앉으셔서 부친개를 연탄불에 부쳐주신 기억도
    행복한 기억인데 오랫동안 잊고 지냈네요
    감사드려요
    선생님이 어머님 이야기를 쓰실때마다 저도 잊고 지냈던
    엄마와의 추억이 떠올라요
    큰 시험준비를 앞두고 있는데 시험 끝나면
    선생님 신간 책 얼른 읽어보고 싶네요

  2. 호산나 2013.03.30 1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면 되죠~^^

  3. kristina 2013.03.31 07: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읽고 추천을 눌렀습니다.
    8번째 손꾸락이 제겁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제 식탐에 대한 자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

  4. 명동DJ 2013.03.31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정직한 글을 읽어봤네요!
    세상엔 온통 거짓투성의 글들이 멋부리듯 걸쳐 저 있는데 말입니다.

    유기자님의 글을 읽고 박수를 칩니다.
    혹여 "과식은 금 하시라"고 살짝 충고(?)하면서 나갑니다.

  5. 판교S 2013.03.31 1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밥 먹고 합시다!

  6. 꽃사슴 2013.04.01 15: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맛있게 먹고 그 맛을 즐기는 것도 삶에 커다란 행복인데 그것이 없다면.......
    먹고 싶을 때 적당히 먹고 기분좋게 살아야지요.

  7. 빗소리 2013.04.01 16: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동 DJ 님의 댓글에 공감합니다

    정말 밥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까요?

    초등학교도서관에 근무하면서
    애들에게 독서지도를 할 때 책을 밥먹듯이 읽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상품을 걸고 책을 한글자로 말하면 무어냐고 묻습니다
    당근 밥이죠

    책은 밥이다

  8. 미상 2013.04.03 1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함인지?
    글이 지루하고 재미도 없으며, 수다의 힘?
    식탐과 식욕의, 낱말의 뜻은 무엇이런가....

    • 유인경 2013.04.03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사나 논문처럼 강렬한 메세지를 전달하려는게 아니고 그냥 제가 식욕과 식탐이 많다는 자조적 이야기에요. 미상님의 기대 수준에 못미쳐서 죄송해요. 전 신문기사가 대부분 너무 진지하고 무거워 이 블로그에서는 즐겁게 가볍게 수다떨듯 이야기한답니다. 댓글까지 남겨주신 관심도 감사!!

  9. 대구 아지매 2013.04.05 1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법 글 중 "상대를 최고로 만들어 주기"란 글을 읽고
    사무실 점심 단골 식당 사장님과 함께 식사 준비 해 주시는분께
    지난 설날에
    양말 두 켤레씩을
    맛 있는 밥 해 주셔서 고맙다고 드렸었어요

    지난 번 에는 햇 김치를 싸 주시더니
    몆일 전 에는 오이 소박이를 싸 주셨어요
    맛 있는 것도 다른 테이블 보다 곧잘 더 주시기도 하시고...
    남편과 아이들이 식당 아줌마가 왜 김치를 주냐고 물었을때
    제가 요리를 잘 못 하는걸 눈치 챈거 같다면서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던 걸요
    형님은 제 맨토십니더.(대구에서는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결혼한 여자에게 형님 이라고 불러요)

  10. 이수경 2013.04.08 1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ㅋㅋㅋ
    저도 기자님 말씀에 엄청 동감하거든요. 기자님의 솔직함과 정직함 그리고 자신의 허물이랄수 도 있는 것을 말할줄 아는 용기(?) 저는 제 흠이 될것 같은 말은 잘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숨긴다기 보다 그냥 말 안해요. 그것도 숨기는 거나 다름없는 거죠?

    들풀같은 글. 기자님 글은요 들풀 같아요. 꾸미지 않고 순수하고 조미료 없는 그런 순수함이 느껴져요. 수다라고 하기에 글의 품격이 너무 높고 기자님 글은...소박하면서도 여운이 남고...뭐라고 표현 할 수 없는데..어쨋든 아유..좋아라 ㅎㅎㅎㅎㅎㅎㅎ 품격은 높으면서 소박하다는 표현. 그거 틀린거 아니죠? 그쵸?

  11. 마이러보 2013.11.14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출근길에 봤어요~^^
    제가 옆사람 의식 안하고 세번이나 소리내서 웃었네요
    태어나서 이런곳에 댓글도 첨이구요

    오늘아침이 괜히 특별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