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작가 김홍신씨를 만났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그의 건대 후배이자 소설가 후배이기도 하다. 김 대표가 미국에서 이혼 후 귀국한 후(주머니에 달랑 500달러만 들고 왔다고 한다) 정말 찌질한(?) 날을 보냈을 때, 함께 세상을 뒤집어 보자고 도모한 사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물어봤다. 그 때 김한길씨가 이렇게 베스트셀러 작가에 문화부장관에 민주당 대표까지 출세할 줄 알았냐고.


그는 아니라고 했다. 김한길 대표는 공부 머리보다는 감수성, EQ가 풍부한 편이어서 어느 분야에서건 인정을 받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큰 자리에 오를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학벌도, 정당 파벌도, 심지어 백발에 잘 생기지도 않은 김한길씨가 출세한 이유를 ‘인간에게 있는 파충류의 뇌’ 덕분이라고 했다.



궁금해서 ‘파충류의 뇌’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뇌과학자가 아니라 마케팅 전문가가 쓴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인간 최초의 뇌는 이성을 관장하는 대뇌피질과 그 아래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 그리고 생존과 생식을 담당하는 가장 원시적인 파충류의 뇌 등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파충류의 뇌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문화를 만들고 이들 문화에 의한 다양한 경험은 개개인의 뇌에 각인되어 유전자처럼 대대로 이어진다. 파충류 뇌는 제품에 대한 생각과 실제행동을 상호작용시켜서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결국 현재의 이성적인 정보보다 나 스스로는 알 수 없지만 뇌에 각인되어 흐르고 있는 정보에 의해 구매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자동차를 예로들면, 환경문제, 안전이나 승차감을 생각한다면 단연 승용차를 선호하겠지만, 요즘 실제로는 SUV를 더 선호한다. 이는 빠른 속도감, 야생마처럼 거침없이 질주하고, 말안장처럼 높은 시야를 보여주는 SUV의 특성이야말로 유목무누화에서 이어진 심리적 안정감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제품들의 경우 형식적인 가치가 아닌 파충류의 뇌를 자극할만한 감성적 코드나 문화코드를 찾아야 한다.





김홍신 작가는 ‘파충류의 뇌’를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보다 자신과 비슷하게 약점이 있어 보이는 사람, 뭔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끼고 대통령 선거같은 중대한 결정 과정에서도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보다 이 파충류의 뇌에 더 영향을 받습니다. 미국의 경우, 집안·학벌·외모·경력, 심지어 배우자까지 가장 완벽한 엘 고어보다 무식해보이고 실수투성이인 부시를 선택했쟎아요. 우리나라도 그렇죠. 솔직히 이번에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된 것도 정책의 차이보다 국민들에게 그 사람이 문재인 후보보다 더 약점이 많고 불쌍해보여서라고 생각합니다. 독재자 아버지, 남편과 자식도 없는 고령의 미혼녀, 미스테리인 오랜 독신 생활 등등... 김한길씨도 나를 압도하고 지배할 대표가 아니라, 내가 훈수를 둬줘야할 대상으로 본 게 아닐까요.”


그의 말처럼, 인간은 절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운전면허가 없어 주로 택시를 타고 다니는 나는 대통령 선거 무렵에 기사분들께 어떤 사람을 지지하는지, 그 이유가 뭔지를 물어봤다. 신기하게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들은 대부분 이런 대답을 했다.


“불쌍하쟎아요. 아버지, 어머니를 총칼에 여의고, 남편도 자식도 없이.... 그러니 무슨 부정부패를 하겠어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인은 절대 정치하기 싫다는데, 노무현의 가장 측근이라서 나왔다쟎아요. 참 여리고 맑은 사람같은데...”    


각 당의 정책이나 삶의 역정, 철학 등은 별로 관심이 없는듯했다.



(경향DB)



그럼 감성의 시대라는 21세기에 스펙을 쌓기 위해 그렇게 안간심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지도 않는 자격증, 그저 점수 자랑만하는 토익이나 토플 공부에 매달리기 보다

오히려 남들에게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긴 다들 이런 ‘파충류의 뇌’를 다 파악해서 정치인들은 유난히 “어린 시절에 너무너무 가난했다. 안해본 아르바이트와 고생이 없다” 등의 가난 마케팅을 한다. 또 재벌 회장들은 사건만 나면 다들 타고난(?) 환자가 되어 휠체어를 타고 당장이라도 쓰러질듯한 모습으로 구치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산삼을 먹은듯 펄펄 날기도 한다.



동정심을 유발하는 마케팅 차원이 아니라면 기꺼이 자신의 약점이나 부족함을 진솔하게 밝히는 것이 어쩌면 더 많은 지지와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내 경우도 사교 생활에 가장 필요한 조건이라는 술도 못 마시고 운전도 못하고 골프도 못치고 노래도 못부르고 등등 못하는게 참 많다. 

내가 술자리에 자주 참석하고, 골프장에서 ‘나이스 샷!’을 외치고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흔들었다면... 어쩌면 객관적으로 더 높은 자리나 더 많은 연봉, 혹은 공직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술 마시고 노래하다 벌써 추락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바쁜 기자인데도 운전도 못한다는 것, 그 맛있는 술과 술이 선사하는 세계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연민과 긍휼함을 느껴서 더 많은 밥을 같이 먹어주고 뭔가 정보를 더 주는 것은 아닐까. 


tvN 꽃보다 할배



최근 tvN에서 방영중인 <꽃보다 할배>란 프로그램이 케이블방송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이유도 드라마에서는 왕이나 재벌 회장을 맡아 호령만 하던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의 평균연령 76세의 영감들이 20대도 힘들다는 배낭 여행을 떠나 고생을 하고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며 파충류의 뇌를 자극해서일지도 모른다. 시청자들은 파리의 근사한 풍광보다는 그 영감님들이 길거리에서 헤매고, 메뉴를 잘 읽지도 못하고, 민박집에서 여럿이 잠드는 궁상맞은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만약 같은 멤버들을 모시고 최고급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프로였다면 비난만 받았을게다. 


그래서 나는... 피곤하면 나타나는 다크서클도 안 감추고. 제일평화 시장이나 이태원 보세에서 사온 몇만원짜리 옷을 입고 다니며 친구들의 파충류의 뇌를 자극하고 있다.


“어머어머, 너  너무 피곤해 보인다.  “옷은 왜 저렇게 저렴한 걸 입니?”

내 친구들은 이렇게 비난을 하면서도 내게 영양제도 선물하고 예쁜 스카프나 액세서리도 선물한다.

요리솜씨가 없다니까 김치를 담아 가져다주는 친구도 있다. 

조금 비굴해보일지는 모르지만, 이게 훨씬 실용적이고 유리한 생활인 것 같다.


뭐 파충류의 뇌를 자극하면 대통령도 되고 당 대표도 되는 세상이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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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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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병 2013.07.17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홍만기 2013.07.17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홍신씨는 정치인으로 있을때도 훌륭했고 지금도 모습이 참 좋은것같았고
    다른 정치인들도 많이 본받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역시 김홍신은 훌륭한 이 시대의 작가임이 훨 나을듯...

  3. 가을 2013.07.18 1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그래서 였나요! 지금의 대통령 ....그렇구나

  4. 이수경 2013.07.19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그렇군요. 파충류의 뇌. 저도 친구들한테 근천을 많이 떨었는데..동정을 받으려고 했던것은 아니었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저의 본능이었던것 같네요. 파충류의 뇌에서 비롯된 ㅋㅋㅋㅋ

  5. kbsisnopbs 2013.07.25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
    이제야 바로 실토를 하시는군요. 모든 정치인과 언론인을 포함하여 TV에 출연하는 공인이라는 분들 입에 달고 하는 소리가, "유권자는 현명하다"... 유기자님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즉 대중은 "파충류의 뇌"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야 밝히시니....
    우리 모두 미래를 위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고민해 봅시다.

  6. 김여진 2013.08.10 0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인경기자님!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구요.
    항상 건전하고 희망이있는 글과 방송 부탁드립니다.

  7. 하실장의 남자 2013.08.16 1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홍신의 "인생 사용 설명서"란 책을 근자에 매우 감명갚게 읽었어요.
    정치도 나이스하게 참 잘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