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원로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는 에세이 <삶의 힌트>에서 “기뻐하는데 서툰 여성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기뻐하는데 서툴거나 능숙하다는 기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난 그의 말에 공감한다.


겸손해서 자신의 영광이나 승리의 기쁨을 혼자 삭이는 것은 몰라도, 그 어떤 일에도 시큰둥하고 툴툴거리는 이들은 주위 사람들까지도 기운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모처럼 결혼기념일에 반지를 아내에게 선물해도 기뻐하기는 커녕 “아유, 누가 이런 촌스러운 걸 사오랬어. 내 친구 신랑은 진짜 다이아먼드를 사줬단말야”라고 투덜거리면 남편은 다시는 선물을 사주고싶지 않단다. 


휴가철에 멋진 휴양지에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도 그 곳의 아름다움이나 풍광을 만끽하지 못하고 “비싼 돈들여 뭐하러 피곤하게 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집에서 삼계탕이나 먹고 선풍기 쐬는게 좋지”라고 말하면 효심은 상처받는다.


맛있는 식당에 가서도 그 집의 음식을 음미하기보다 “이 곳보다 우리 동네 식당이 더 맛있어”라고 하면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진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이사해서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도 “아유, 집이 크면 뭐해. 청소하기만 힘들지 뭐”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만이다. 


미국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의 전기를 읽으면서 놀란 것은 그가 평생을 전쟁과 전투, 그리고 백악관의 치열한 권력의 전쟁터에서 살아왔는데도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장면마다 “~해서 참 기뻤다”란 표현을 유난히 많이 썼다는 것이다.



연설 도중 우스꽝스러운 몸짓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로이터뉴시스)



어린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의 아저씨가 급료를 좀 더 많이 줘서, 똘똘한 후배가 지시사항을 잘 들어서, 자신이 계획이 예상대로 잘 실천되어 등등 곳곳에서 기뻤다란 말이 참 자주 등장했다.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어 어쩌면 오바마보다 먼저 첫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그는 아내의 만류와 자신의 삶의 목표가 대통령이 아니라며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찬란한 권력보다 일상의 기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듯하다.


나이가 드니 감격할 일도, 감동할 일도 없어지고 감각기관도 둔해지긴 하지만, 일상의 기쁨을 느끼는 것은 타고난 천성보다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이츠키 히로유키씨도 50대 중반 무렵에 갱년기 증상으로 우울했을 때 “하루에 한 번은 기뻐하자”고 결심하고 기뻐했던 일을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처음엔 새삼 하루 중에 마음이 반짝거릴듯한 기쁨의 순간을 적으라고 하니 좀처럼 쉽지 않았지만, 날이 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졌단다. 너무 큰 기쁨만 찾으려고 해서 당황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평소와 달리 넥타이가 한 번에 예쁘게 매졌다. 이렇게 잘 되다니 드문 일이다. 기쁘다”

“백화점에서 산 볼펜의 필기감이 매우 좋다. 정말 기쁘다.”


이렇게 작심하고 기뻐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나니 기쁨이 절로 찾아오는 것 같더란다. 기쁨을 바라는 마음의 촉수를 크게 펼치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단다.

 

그는 또 한 여성작가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저는 자기 전에 거울을 보고 제 몸의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칭찬해줍니다. 손가락이면 손가락, 어깨면 어깨, 배면 배, 부드럽게 매만지면서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정말 잘 했어, 진짜 대단해라고 칭찬해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몸 이곳저곳의 새포가 피부 아래서 뽁뽁 소리를 내며 기뻐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기쁘게 할 줄 알아야 자신의 몸과 영혼을 기쁘게 해주는 법도 알고 남들에게도 기쁨을 나눠줄 수 있다.


어릴 땐 사탕 하나만 누가 줘도 정말 기뻤는데, 친구가 내가 그린 낙서를 칭찬해줘도 우쭐했는데 처음으로 냉장고를 샀을 때 수시로 얼음을 만들어서 너무 기뻤는데, 에어컨은 커녕 엄마가 무릎에 누인채 부채바람만 보내줘도 너무 시원했는데.


기뻐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기뻐하는 것에 점점. 서툴어지고 무뎌지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매일 매일 기쁨에 인색하지 말고 흐드러지게 기뻐해야 겠다.

비록 정치권은 연일 전직 대통령 대화록에, 청소년 캠프 사고에 우울한 일이 가득하지만 너무 나까지 덩달아 우울해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서 되겠는가.


친구가 보내분 격려 문자에 기뻐하고

한여름 수박의 시원함에 기뻐하고

사려깊은 딸아이의 말에 기뻐하고

전화 한통으로 인터뷰가 성사되었음에 기뻐하고

살짝 뿌린 향수의 향기에 기뻐하고

아이라이너가 한 번에 잘 그려졌을 때 기뻐하고..


기쁨에 서툴어지는 것은 기뻐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다른 욕심과 욕망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스테이크를 기대하는데 빈대떡을 내밀면 분명 실망하고 투덜댈 것이다. 하지만 빈대떡의 고소함과 깊은 맛을 진심으로 기쁘게 맛봐야 다음에 스테이크를 먹을 때 기쁨은 배가 된다.


오랜 장마로 집안도 주변도 다 눅눅하고 울적하다. 이 길고 지루한 장마에도 마당에 꽃들이 씩씩하게 피어있는 것이 참 기쁘고 기특하고 장마 중간에 살짝 파란 하늘이 보일 때 참 기쁘다.


이렇게 매순간 기쁨을 구슬로 만들어서 나중에 늙었을 때 두고두고 꺼내서 되새겨봐야겠다. 그 때 내가 바라본 하늘의 구름, 내게 미소를 지어준 친구의 예쁜 입매, ‘엄마’하고 달려와 안기던 아이, 그 순간을 흠뻑 만끽하고 즐기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국이 통일되는 것,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것, 편견과 차별이 없어지는 것도 의미있고 기쁜 일이지만 그런 거대담론에 짓눌려 일상의 조촐한 기쁨을 우리는 너무 많이 잊고 살지는 않는걸까.


2차대전 다큐멘터리를 봐도, 아유슈비츠의 관련 자료를 봐도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영국인과 유태인은 댄스파티도 하고, 포로 수용소에서도 피아노 연주를 하는 등 일상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행한 사람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난 오늘부터라도 맘껏 기뻐하겠다. 수시로 기뻐해서 내 몸과 영혼이 기쁨으로 충만하게 만들어야겠다. 야호!  올레! 브라보!!  원더풀! 앗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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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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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우철 2013.07.24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는동안 덩달이로 저 역시 기뻐지더군요
    고맙습니다 유기자님

  2. 존재기쁨 2013.07.26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요즘 딱 그 증상임니다...50대 후반 중늙은이가 되어가면서...
    세상에 별로 재미잇는게 없어져 갑니다..
    대신 짜증나는 일은 많아지고...이 세계가 불교에서 말하는 참고 견뎌나가는 사바세계..
    라고는 생각하지만...참..
    유기자님 말처럼 기뻐하는 것에 점점 서툴어지고 무뎌지는 감각을 다시 살려서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기쁨을 찾는 훈련을 해봐야 겟슴니다...
    깨우쳐 주어서 고맙슴니다...

  3. 이수경 2013.07.26 16: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

  4. 네병 2013.07.26 2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기뻐하는 거 실천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5. 새벽잠이 없는남자 2013.07.27 0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에 나온 사람이 혹시 유인경씨인가요?
    tv에서 본듯해서...
    이른아침 참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6. 작곡가 2013.07.29 0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을 선택하는 것도 습관인 것 같습니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이도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여정속에서 성취해 가는 작은 성공, 배움, 만남, 등에 기뻐한다면 그 여행이 더욱 뜻깊고 즐거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7. 아줌마 2013.07.31 1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6살 딸래미 키우고 있는 38살 직장맘입니다. 제 직장이 도서관인데요,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이라는 책이 이용이 많이 되길래 저도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에서 읽었느데, 너무 좋아서 직접 구입해서 두번째 읽고 있습니다. 기자님 덕분에 지친 삶에 힐링이 되고, 너무나 큰 힘이 됩니다. 그 책과 이 블러그 때문에 유기자님 팬이 되었습니다. 지치거나 힘드실 때 저처럼 유기자님 덕분에 힐링된 사람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이 게시글과는 무관한 내용이지만 유기자님 덕분에 삶에 큰 힘을 얻어서, 이렇게 글이 라도 남겨서 보답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글 남깁니다~^^)

    • 유인경 2013.07.31 1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딸을 둔 엄마라니 더 반갑습니다. 제 글을 읽고 힐링이 되었다니 너무 감사드리고요. 제딸은 26세인데 키울수록 기쁨과 행복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이 징글징글한 장마와 더위에 건강 챙기시길...

    • 문수정 2013.08.03 2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늘 유기자님의 글에 마음의 위안과 지혜를 얻습니다.감사합니다.

  8. 성주댁 2013.08.28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작은 거지만, 첫걸음은 쉽지않는 실천이네요
    오늘부터 기뻐해보려고 해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잘 살고 있는 친구는
    참 잘 웃고 기뻐하던데
    아마 잘 웃어 기쁜일이 자꾸 생기나봅니다

  9. 두딸맘 2013.11.05 1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싶다는 기자님의 말에 살짝 저와 닮았다는 느낌~^^이었는데,,,,
    이글에서도 솔직히... 외람되지만.... 너무너무 기여우세요~ ㅋㅋㅋㅋ
    저도 오늘 앗싸~ 브라보~ 해야겠어용~ ㅋㅎㅎ

  10. 에벤에셀 2013.12.11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딸아이 기말고사성정이 바닥이라 가슴이 답답했는데 내일 면접일정이 잡혀서 참 기쁩니다 ^^

  11. 쥬맘 2014.04.24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히 사진 맘에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