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직장에 다니는 중년 여성들과 식사를 했다.

사회생활에서 산전수전 공중전 시가전을 다 겪어 기침만 해도 사리가 나올 지경인 이들이지만 여전히 수시로 퍼부어지는 소나기와 곳곳에 감춰진 암초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한 대기업의 부장은 부장 생활만 8년째다. 동료들은 상무 등 임원으로 승진했는데 인사고과가 나쁜 편이 아닌데도 임원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더구나 최근에 TF팀을 만들었는데 자신보다 후임인 부장이 팀장을 맡았다. 


“상사에게 왜 내가 선임인데 팀장을 안맡기냐고 물으니까 그러더군요. 나는 일은 잘 하지만 조직 장악력은 약해보여서 그렇다고. 팀장이 뭐 대단한 감투도 아닌데 마음에 두지 말라고요. 당장 사표를 쓰거나 팀의 일을 협조해주고 싶지 않지만 그럼 역시 여자들은 속이 좁아서 그래란 말을 듣고 여자 후배들에게 누가 될까봐 그냥 참았어요.”


공공 연구원에 다니는 여성도 거들었다.


“그래도 부장님은 덜한 편이에요. 난 벌써 후배들이 상사 자리에 오른걸요. 연구소란 독특한 분위기가 승진 등에 연연하지 않고 저 역시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에 다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매번 인사 발표가 있을 때마다 참 서글퍼요.”


가장 유능한 기자 중 한분이었고 <장명수 컬럼> 등 탁월한 문장을 자랑했던 장명수 전 한국일보 사장은, 나중에 한국 일보 구사대의 일환으로 사장에 오르긴 했지만 부국장만 10년을 지냈다고 했다. 후일에 사장은 시켜도 편집국을 운영하는 편집국장은 시키지 않았다며 “매번 승진을 못한 것보다는 편집국장이 된 후배가 오히려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에 속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향DB)


주변을 보면 이처럼 유능하고, 직장에 헌신적이고 20여년 이상을 성실하게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여성들이 정작 동료들인 남성에 비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동안 우리는 그것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남존여비 사상, 혹은 여성들에게 “마음껏 올라가봐!”리고 헤놓고는 보이지 않는 유리 천정으로 막아버린 ‘유리 천정’의 시스템 탓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이지만 이렇게 착실하게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는 여성들의 사기를 저해하고 여성들의 능력까지도 매도하게 만드는 것은 일부 여성인 것 같다. 최근에 화제가 된 차영 스캔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차영씨는 최근 자신의 아들이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친손자라며 유전자 감식 등을 요구하고 조 목사의 아들인 조희준시를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과 양육비와 위자료 소송을 했다. 그 두 남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게 사랑인지 불륜인지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영역이 아니다. (물론 속으론 궁금해 죽겠지만..) 


그 사건이 터지면서 새삼 차영이란 인물의 이력서가 화제가 됐다. 



차영



전남 완도 출생으로 전남대 농경제 학과를 졸업하고 광주 MBC에서 아나운서로 3년간 활동했다. 이후 방송 연구기관 한국영상연구소 전임강사와 프리랜서 아나운서 등을 거쳐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디어컨설턴트를 맡으며 정치계에 입문했다.  

1995년 조순 서울시장 정책비서관으로 활동했고, 세종문화회관 홍보실장,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실 문화관광비서관으로 근무했다. 2002년에는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후 기업인으로서 넥스트미디어홀딩스 대표, KT마케팅전략담당 상무, 미니게이트 부사장을 맡았다.  특히 청와대 비서관재직시절인 2002년부터 1년동안 조희준씨가 대주주였던 넥스트미디어홀딩스의 대표이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다시 정치계로 발을 돌린 차영 전 대변인은 통합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변인, 민주당 대변인과 언론특보 등을 역임했다.  2008년과 2010년에 민주당 대변인을 지냈고 지난해 4·11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서울 양천갑구에 출마했으나 400여표 차이로 분패했다.



이처럼 이력서만 보면 “아, 내 딸도 이렇게 승승장구 했으면 좋겠다”라고 느낄 정도다.

작은 섬 완도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고 화려한 청와대에 입성하고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변인을 지냈으며  KT 마케팅 상무며 세종문화회관 홍보실장, 넥스트미디어 그룹 대표까지 맡았으니 정말 화려하기만 하다. 아나운서, 스피치전문가, 행정가, 공기업 임원에 미디어그룹 대표에 국회의원 후보까지 대체 그가 못하는 일이나 영역이 무엇인지 놀라울 지경이다.  


그를 인터뷰한 이에 따르면 차영씨는 스스로를 ‘냉정한 천재’라고 했다는데 그가 냉정한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천재는 아닌 것 같다. 천재라고 하면 학계에 놀라운 논문을 발표하거나 세상을 뒤집은 업적을 내놓아야하거나 적어도 아이큐 140이 넘어 멘사 클럽에라도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가 일했던 영역에서 천재다운 성과를 낸 곳은 드물지 않은가.


그의 이력은 실력보다는 항상 누군가의 힘, 그를 인정했는지 어여삐 여겼는지 홍도처럼 불쌍히 여겼는지 혹은 사랑했는지 그런 오빠나 남성들의 조력 덕분이라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학력위조 사건의 신정아의 경우도 그렇고,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에 몸담은 후 30대 후반에 KT 상무 자리로 옮긴 김은혜씨 등이 비슷한 경우다.


사회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서의 ‘승진’은 사법고시나 수능시험처럼 성적 순이 아니기에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것보다 평판이나 기여도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긴 한다. 하지만 차영씨의 경우엔 확실히 좀 심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측근의 후광없이 그가 청와대 비서관이나 세종문화회관 홍보실장, 혹은 KT 상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한 직장에서 25년째 근무하고도 부장 자리에 만족하는 이들이 얼마나 수두룩한가. 조희준씨와의 인연없이 그가 넥스트미디어 대표이사에 취임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화려한 이력서 없이 민주당 대변인으로 등용될 수 있었을까..


수많은 여성들이 매일 구슬을 하나씩 꿰며 언젠가 아름다운 목걸이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구슬들이 잘 모아지지도 않고 끈이 뚝 끊기기도 한다. 또 한계단, 한계단 숨을 고르며 착실하게 올라가면 꼭대기에서는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이들이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나는 “여성의 적은 여자다”란 말을 싫어한다. 많은 남성들이 여자들이 여자의 성공을 바라지 않으며 서로 시기질투하고 심지어 여성들에게 가장 적대적으로 대한다는 음모론에 가까운 말을 한다. 


그런데 여성의 적은 여성들을 시기질투하는 여성이 아니라, 이처럼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의 힘으로 다른 여성과 남성을 밟고 올라가는 이들이다. 그래서 착하게, 성실하게 살려는 마음에도 찬 물을 끼얹는 이들이다.


(경향DB)


차영씨는 변호사를 통해 “정치 생명을 걸고 아들의 뿌리와 명예를 찾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그가 걸었다는 정치 생명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그 상황에서 정치를 했다는 것부터 먼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엔 남녀 모두 정말 생명을 걸고, 또 가족의 생명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영씨는 자신의 아들 이전에 이런 사람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아, 왜 내 주변엔 친오빠건 친척오빠건 혹은 아는 오라버님들이건 낙하산을 태워주는 이가 없을까. 수시로 이걸 알아봐 달라, 저걸 해결해달라, 돈 꿔달라는 남자들 사이에서 이나마 무사히 버티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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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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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봉 2013.08.05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자확인소송이 어떻게 능력 밖의 출세의 증거가 되는지 연관성을 증명해 주시지요. 쓸거리가 없으면 차라리 절필을 하시지 아무거나 건드려 서야... 정말 싫다 당신 같은 여자

  2. 서민 2013.08.05 2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어줍잖은 페미니즘 글을 쓰곤 하는데요
    유기자님 글 읽으니까 이런 게 바로 글이구나, 싶습니다.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꾸벅

  3. 참나무 2013.08.08 0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일단 전신성형 하세요.

    • 유인경 2013.08.08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성어린 충고, 감사합니다. 어디 전신성형한들 가능하겠어요?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죠.. 그리고 참나무님 같은 기준과 의식가진 분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덜 발전한다는 말씀은 꼭 드리고 싶군요. 볼수록 매력있는 유인경 올림.

  4. 대구아지매 2013.08.08 15: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에게서 내공의 가치를 배웁니다.

  5. 호산나 2013.08.09 0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핫~~~~~~!!!!기자님 댓글이 넘 웃겨요^^ 그런 내공은 어디서 나오시나요~~^^ 저는요, 몸이란, 그냥 사지육신 멀쩡하고 기능 다하면, 그것도 참.. 진심 감사한 일이라구 생각하는데요~^^

  6. 화이팅 2013.08.09 14: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글이 좋아서 한번씩 들려서 보고가요. 저도 사회생활 하면서 작게 나마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억울한 일들도 있었는데 정말 시원하게 글 써주셔서 좋습니다. 일부 자기 성공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인과응보를 알고 죄가 있으면 언젠간 죄값을 치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7. 김wlstjs 2013.08.14 2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여자의 적은 여자인것 같아요.
    저도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얼마되 않는 같은 여자가 무척이나 힘들게 하고 있답니다.
    너무 속상해요...

  8. 선규 고모 2013.08.19 2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이 뼈절이게 느껴졌던 어제...
    그래도 참아야 한다는 언니의 말이 너무 슬퍼지더라구요

  9. 고개를 갸우뚱 2013.08.25 2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의 마음속 불편함은 이해가지만, 글내용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못하네요. 여성이라는 gender측면에서 차영씨의 행동이 다른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방해를 줄수 있다는 연결고리는 사실 별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차영씨 정도의 사례는 수많은 남성들사이에서도 얼마든지 그 사례들이 널려있는 출세지상 주의적 남자들의 전형으로 보이니까요. 어차피 경쟁을 사회작동의 근간으로 하여 돌아가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이건 남성이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상에 올라가려는 이들이야 적지않이 있지요. 하지만 눈살을 찌푸릴수 있는 이정도의 사례가 남성들로부터 주로 박해받는 여성의 권리적 팩트와 무슨 관계가 있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0. 2013.10.19 16: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다음 정신승리 ㅋㅋ

  11. 속이 시원하네요 2014.01.02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쉽게 일반화할만한 사항이 아니기는 하지만, 기자님 말씀대로 (외모...를 이용해) 남자의 권력을 빌어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쟁취하는 여자들 덕분에 정직한 남,여가 괴로움을 겪는건 절대로 드문일이 아니죠. 그런데 남자 입장에서보면 그런 여자분보다 줄을 잘 타서 승진할려는 남자들이 더 많아보이는 것도 사실이에요. 어쩌면 큰 산 밑에 들어가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게 인생을 잘(혹은 최소한 "쉽게") 사는 방법이 아닌가 싶어서 괜히 씁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