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 2014년이 한달이 흘렀는데도 구정이 되어야 진짜 새해가 온것 같다. 
새해는 푸른 말, 청마의 해이고 갑오경장 등 혁명적 기운이 강한 해라고도 한다.
확실히 50대 중반이 넘은 올해, 나는 뒤늦게 새해 다짐을 해본다.

항상 새해에는 ~~하겠다라는 계획을 세우지만 올해는 절제와 자제의 해로 정했다.
내가 행복하고 즐겁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일을 꼭 해야하는 용기보다는, 어떤 일을 하지 않아야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이들수록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나의 새해 목표는 ~~하지 않기다.

 

제주경주마육성목장에서 경주마들이 힘차게 달리고 있다. (경향DB)

 

 

첫째는 오지랖 펼치지 않기다.

그동안 난 오지랖이 너무 넓었다. 세상사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다보니 본의 아니게 참견도 하고, 훈수도 두고...
그러다가 그 훈수에 책임지느라 별 별 일을 다 해야 했다. 잘 살펴보면 내 스케쥴의 70%는 남의 일에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까지 더해져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김정운 박사가 내껄 뺏아 사용하는 중), 그것도 무료 연구소를 운영하는 중이다.
 
알고보면 그 일에 내가 꼭 참여해서 빛이 나거나 도와줄 일도 아니다.(지인의 부탁으로 결혼식 사회를 봐준 적도 있는데, 누가 주례를 서도 많은 나이에 왠 사회를 보냐고 비웃은 적도 있다)
그저 잔잔하게 웃으며 “다 잘 될 겁니다”란 덕담만 해도 될 일을  나는 혜안도 없고 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 그 일은 이렇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그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는 저 사람을 만나보세요. 제가 연락해드릴께요”라는 말을 먼저 늘어 놓아 잔뜩 숙제를 받아온다. 그리곤 그 숙제를 푸느라 늘 끙끙거리고 혹시 잘못되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부탁한 책의 추천사를 써주고, 평소 팬이라며 칭찬을 늘어놓기에 붕 떠서 먼 지방까지 공짜로 강의도 가고, 남편에게도 돈 달라는 말을 안하는데 엉뚱하게 다른 사람의 일을 위해 후원금이나 협찬상품을 달라고 하고...
 
이번 겨울휴가에 딸을 만나러 파리에 갔다. 공부에 지치고 영양 풍부한 밥도 못먹은 딸을 위해 놀아도 주고, 영야보충을 시켜주겠다(만들어준게 아니라 같이 사먹었다)는 단순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파리에 원래 있던 친구들은 물론 서울에 있던 친구들이 이런러전 일로 파리에 와서 다들 만나자는거다.
“어머, 우리가 드디어 파리에서도 만남을 갖는구나. 네 딸에게 맛있는 식당 물어봐서 그곳에서 만나자”라는 말에 약속이 줄줄이 이어졌다. 딸 아이는 “엄마는 서울에서도 늘 이사람 저사람 만나느라 날 외롭게 하더니 파리에까지 와서 이래야 하냐”며 살짝 짜증을 부렸다. 난 “마르세이유 근처에 사는 세라 아줌마에게 안 놀러 간 것만도 다행 아니니?”라고 얼버무렸지만 딸은 섭섭해했다.
그래서 새해에 나는... 오지랖을 싹둑 잘라내고 내 일, 내 생활에만 충실하려고 한다. 남의 집 논일 거들어주느라 내 논이 바짝 말라서야 되나.  

 

둘째는 기대하지 않기다.

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에게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피와 살을 나눈 가족이긴 하지만 나도 나를 잘 위해주지 않고 내 몸을 잘 돌보지 않는데 누가 나를 위해 살아주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뭘 해줘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해준다. 그 사람이 고마와하면 좋고, 감사를 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관용과 포용도 커지지만 노여움도 커진다.
예전엔 그러려니 했던 일도 이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또 젊은 시절엔 풍선처럼 부푼 기대가 펑 터져도 금방 새 풍선을 띄우거나 빨리 회복이 되었는데
요즘은 기대와 바람이 가득찬 풍선이 터지면... 몸과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다. 회복도 더디다.
그래서 혹시라도 불평많은 뺑덕 엄마가 될까봐 더더욱 남들에게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늘 싸가지 없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안보면 그만이다. 좋은 사람,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사람, 내게 덕을 베푸는 사람에게도 감사드릴 시간도 부족한데 그런 사람까지 감싸 안고,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마음을 끓이고 싶지 않다.


셋째는 비난하지 않기다.

신문기자란 직업은 객관적 비판과 올바른 지적이 생명이다.
그런데... 그 알량한 정보를 갖고 난 비판이 아니라 수시로 비난을 했다.
어떤 사람이 A란 인사에 대해 물어보면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갖 미디어에 드러난 일(사실이라 할지라도)을 바탕으로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고백하자면, 나의 추측과 상상력이 더해질 때도 있다. 남들이 누굴 비난할 때 나도 기꺼이 동조하기도 했다.
물론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도 있다해도, 과연 내가 그를 비난할 자격은 있는걸까. 그런데 지혜로운 내 딸이 이런 충고를 했다.
“엄마. 다른 사람들은 누굴 비난해도 가십으로 여겨지는데, 엄마는 기자니까 다들 더 진지하게 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꼭 해야 해? 지나친 칭찬도 가식으로 여겨지지만, 가십거리로는 남들 비난하지 마. 다른 사람들은 엄마가 언젠가 자기를 그렇게 비난할 수있다고 여기지 않겠어?”
난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최근 시어머니가 말기암으로 밝혀져 간병중인 내 후배는 이런 말을 했다.

“선배, 암병동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며 느낀게 뭔줄 아세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거에요. 암이 아니라 사고나, 자연사로도 누구나 죽죠. 다 죽는 존재라는걸 새삼 확인하면서 내가 왜 그동안 사람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비난했을까란 반성을 했어요.”

부조리하고 공정하지 않은 우리 사회 시스템에,
양심도 영혼도 없이 사리사욕만 채우는 권력층에
국가를 떠나 인권의식이 없는 일본 아베에게야 비판과 지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저 배우는 왜 저렇게 생겼니? ” “그 사람은 참 푼수같이 군다. ” 등의 대책없는 비난은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머리와 가슴에 정의로움과 지혜, 지식이 가득차면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자기성찰을 많이 할수록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새해 각오를 다진 후 친구에게 말했더니 호응은 커녕 코웃음을 날렸다.
“인경아, 오지랖 없고 남들 지적질 안하면 그건 유인경이 아니쟎아? 괜히 성스럽게 살지 말고 속편히 살아.”

새로운 유인경으로 거듭나겠다는 내게 찬물을 끼얹는 친구. 그래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얼마나 견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난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유인경이 아니라 뉴 인경으로 인생 후반전을 평화롭게 살겠다고!!!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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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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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굿굿굿 2014.01.28 1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말인것 같아요 아직은 해야지하는 다짐만 세웠는데... 하지 않을 절제의 다짐도 함께!

  2. 고수부지 2014.01.28 23: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뉴인경~~~~~~기대만발입니다^^^

  3. 이주호 2014.01.29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좋은 글들 잘 보고 적지않은 영감을 받아 갑니다. 감사하고 새해에는 꼭 뉴인경으로 거듭나길 바라겠습니다! 인간 유인경 화이팅!

  4. 문수정 2014.01.29 2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고 도전받고 갑니다..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뭣보다..건강하세요^^

  5. 강산해 2014.01.30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글도 감동입니다.
    하지만 나에겐 <하지 않기>란 결국 <하지 않기를 하기>와 같은 것으로 느껴져 <자제>라기 보다는 또다른 모습의 <다짐> 또는 <도전> 같이 느껴져...기자님과 같이 해탈의 경지는 커녕 아직도 속세에 쩌든 심신임을 확인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길 기대합니다. 꾸벅~

  6. 김소영 2014.01.31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인경기자님 글 잘 보았습니다. 공감합니다^^

  7. 황보영 2014.01.31 2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블로그를 방문 했습니다.
    유기자님!
    새해 복 많이받으시고 늘 맑고 유익한 글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8. 가을 2014.02.01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웃겨라는 분, 정신과에 가 보세요...

    • 박귀영 정신과원장 2014.02.01 1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정신과 의사인데
      그냥 나두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예요.
      건들면 본인이 병세가 호전되어 더욱 기승을 부린답니다.
      여름날 모기때처럼...
      나중에 소독약으로 말끔히 정리 함이 좋을듯 하군요.

    • 케빈아빠 2014.02.01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건드리면 혼잣말로 도배를 하더군요.. 여기 관리자님이 벌써 신상정보 다알고 계시던데.. 알고는 있을까.. 에혀..

  9. 기원섭 2014.02.02 0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군가 사랑의 조건이라면서 이렇게 ‘사랑의 십계명’을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1. 계산하지 말 것 2. 후회하지 말 것 3. 되돌려 받으려 하지 말 것 4. 조건을 달지 말 것 5. 다짐하지 말 것 6. 기대하지 말 것 7. 의심하지 말 것 8. 비교하지 말 것 9. 확인하지 말 것 10. 운명에 맡길 것」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계명이 ‘기대하지 말 것’과 ‘운명에 맡길 것’ 그 두 계명입니다.

    그 두 계명은, 읽기만 해도 선뜻 받아들여지는 다른 계명과는 달리, 기대하다가 속상하게 되고, 운명에 맡기지 않으니 상대를 탓하게 됨을, 오랜 세월의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로, 사랑하기 위한 핵심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사랑에 있어 가장 암적인 요소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명예심과 함께, 암 덩어리처럼 자꾸 자라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오늘 우리 유기자님께서는 그 중 하나를 실행하겠다고 하셨어요.

    꼭 이뤄내시기를 바래요.

    왜 이렇게 강조해서 기원하는가 하면요, 내가 그 십계명을 가슴에 담은 지 이미 10여년이 다 됐고, 기대심을 비롯해서 명예심까지 버린 지도 오래됐는데도, 지금껏 이루지 못하고 있는 대목이거든요.

    나의 기대심이 얼마나 쪼잔하냐 하면요, 이번 설날에도 손녀가 우리 집에 와서 세배하고 놀고 하는 것은 좋았는데, 오후가 되어 ‘이제는 우리 집으로 가자.’라고 했을 때, 참 섭섭하더라는 겁니다.

    겉으로는 ‘빨리 가라.’라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내 속 생각에는, 손녀가 억지를 부려서라도 더 놀다 가겠다고 말해주기를 바랬거든요.

    기대하지 않겠다는 그 다짐, 꼭 이뤄내시기를 바래요.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내 마음을 확 꿰뚫어 보는 우리 유기자님~~

    무서워요~~

  10. 조아조아 2014.02.16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티비로 알게 된 유인경님이 참 좋습니다. 글도 참~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