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번 정부 임기 내에 ‘여성 경력단절’이라는 용어가 사라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


현장관이 강조했듯 ‘경력단절’이란 말은 여성계의 화두다.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하고 성실하고 스펙이 뛰어나도, 정말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일해도 임신, 출산, 육아 등의 문제에 봉착하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의 직장 육아휴직으로 직장을 잠시 떠나야한다. 또는 계속 전업주부로 남아 다시는 직장, 원하는 직장생활로 복귀가 불가능하기도 한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여성인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종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얼마전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소치올림픽이 끝날 무렵 ‘대한민국 1호 여성’ 12명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자리엔 기업·은행·법조 등 분야에서 최고 리더로 1호를 기록한 여성이 참석했다. 1995년, 비슷한 자리에서는 여성 파출소장, 검찰 수사관, 육군 소대장, 지하철 승무원, 기술사가 참석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기업은행장을 비롯, 정말 각계각층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시긴하다.

조선일보에도 대한민국 ‘여성 1호’ 20명을 만난 기사가 나왔다. 그들의 평균 모습은 ‘54세, 자녀 두 명, 아침엔 6시에 일어나고, 휴가는 1년에 나흘 갈까 말까 한 직장 여성’이었다. 여성 1호들은 여자가 거의 없는 조직에서 남자들보다 두세 배 더 일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은 “힘들고 아프겠지만 용기를 내서 유리 천장을 깨라”고 했고 “퇴직이나 경력 포기는 생각도 말라”고 했다. 

30년전 일이긴 하지만, 서울신문에 근무하던 신동식 선배는 ‘출산휴가’ 제도가 없어서 아이를 낳을 때마다 퇴직했다가 1,2개월 정도 후에 다시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야 했다. 그나마 그 선배가 사회부 기자로 탁월한 실력을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기가 가르친 후배들이 선배가 되어 더 높은 호봉을 받고, 더 일찍 승진하는 것을 감내해야 했단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일이지만 그 땐 그랬단다.


박근혜대통령이 26일 오후 삼성동 코엑스 3층에서 열리고 있는 2013 시간 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참석 하고 있다. 2013.11.26 청와대사진기자단 /서울신문 이언탁기자(경향DB)


그런데... 정말 경력단절이란 말이 사라져야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여성들이 행복할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년퇴직이 코 앞인 지금, 내가 경향신문에서만 24년째 직장생활을 버티는 힘, 그리고 가장 인생에서 잘 한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경력 단절 기간’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70번이나 선을 본 끝에 무사히 결혼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합법적으로 엄마가 되었다는 행복감에 딸 아이를 낳고서 3년 반 정도를 전업 주부로 지냈다. 아이가 두살쯤부터는 프리랜서로 글을 쓰다가 1990년 2월에 경향신문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생활문화부를 담당하던 김명수 부장이 ‘아이를 낳아보고 생활경험이 있는 여기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잡지에 육아 파트를 전담해서 기사를 담당하던 내가 지원했고 합격했다. 애엄마 프리미엄으로 입사한 행운아인 셈이다.


전업주부 시절엔 내 이름을 잊어버리고 하루종일 “아이구, 똥쌌쪄여? ” “우쭈쭈,우쭈쭈” 등  혀짜래기 소리를 하며 지냈고 외출이래야 아이 유모차에 태워 동네 한바퀴 도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비축했던 에너지, 동네 아줌마와 애엄마로 겪은 일들, 아이를 키우며 보낸 시간들 덕분에 다시 직장에 복귀해서도 견딜 수 있었다고 믿는다.


아무리 완벽한 시설과 헌신적인 보육선생님이 있는 곳이라고 해도, 나보다 육아 경험이 월등한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혹은 육아도우미가 돌본다고 해도 아이는 엄마가 모유수유를 하고, 스킨십을 하고 눈으로 교감하고 말로 소통하며 보내는 시간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갖는다.

아이보다 엄마에게 이런 순간과 시간이 더욱 절실하다. 온전하게 나만 믿고 의지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 그 아이가 나의 심장과 온몸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충일감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물론 아이가 밤에 자지 않으면 수면제를 먹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이유없이 울거나 떼를 쓰면 욕이 절로 나오기도 하고, 출산 후 무너지는 몸을 보면 한숨도 난다.(처녀 시절이라고 섹시한 몸매도 아니었지만)

하지만 나를 구속하는 아이가 결국 나를 구원해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울다가도 내가 안아주거나 자장가를 불러주면 신기하게 사르륵 눈을 감고 자는 아이의 천사같은 모습, 그 조그만 입술로 살아보겠다고 맹렬하게 젖을 빠는 놀라운 힘, 아장아장 첫 걸음마를 할 때의 경이로움, “엄마”라고 부르면 온세상에 햇살이 퍼지는 것 같은 환희...  그런 행복감을 직장에서의 몇년 빠른 승진과 바꾸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나는..

아이를 통해 얻는 행복감, 아이를 키우며 키우는 인내심, 살림을 하며 익히는 세상살이의 지혜, 남편이나 시댁과 갈등을 겪으며 깨문 입술에서 얻는 교훈, 사소한 일로 다투며 익힌 협상력 등이 결국 다 몸과 정신의 근육이 된다.


게임회사를 만들었고 현재는 디자인 통이란 회사의 사장인 김양신씨도 ‘경력 단절은 절대 나쁜게 아니라’라고 강조한다.


“둘째 아이를 낳은 후에 직장을 그만 두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재워놓고 책도 읽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며 보낸 전업 엄마 시절이 제게는 너무나 큰 자양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참 많이 책을 읽었거든요. 직장에 다닐 때는 절대 누려보지 못하는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느끼고, 부엌에서 세상을 본다는 말처럼 다른 시각으로 사회와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직장에 복귀한 후에는 제게 다시 일이 주어진 것에 감사해서 더 일을 열심히 하게 되더군요. 

저는 직장에 복귀하는 대신에 창업을 했어요. 전혀 잘 모르던 게임분야에 뛰어들었던 것은 직장을 벗어나서 사회의 흐름을 본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젊은남성들이 벤처회사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인 게임업계에 아이 둘을 낳고 키운 아줌마가 배짱으로 뛰어들어 결국 성공했습니다. 우리 회사를 봐도 확실히 미혼여성보다는 엄마 직원들이 더 성실하고 근성을 갖고 일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도 더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 같아요.”


김양신(왼쪽) 제이씨엔터테인먼트(JCE) 대표(출처 :연합뉴스)



문제는 기회의 균일화가 아니라 기회의 다양화다.

여성들에게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경력단절을 안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만큼이나 경력 단절 이후에 다시 복귀할 때 불이익이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 혹은 창업지원을 해주는 것 등등도 중요하지만 그 어떤 제도보다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 절실하다.


5분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도 세대차이를 느낀다는 현대에는 3개월동안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와도 제대로 업무를 익히는데 힘들고 멀미가 날 지경이긴 하다.

하지만 그 혼란과 혼돈스러운 부적응 기간을 거치고 나면 다시 익숙해지고 더 느긋하게 더 여유롭게 직장에서의 경력 관리나 인생 전체의 목표나 꿈을 이루는 식견을 가지게 된다.


경력단절을 하지 않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여성 1호가 되거나 단체의 수장이 된 훌륭한 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매들린 울부라이트 국방장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은 10여년 이상의 전업주부 시절을 거쳐 학부모회 활동, 자선모금 기금활동 등을 하며 자신의 재능을 재발견해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고백했다.


황정미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여성들은 사회에서 너무 앞서 나가면 총에 맞아 죽고, 너무 늦으면 밟혀 죽는다”고 했다.

너무 잘나 보여도 실시의 대상이 되고, 조금 못하면 “여자들은 다 그렇지 뭐”라고 매도당하거나 여자망신 다 시킨다며 여성들에게도 비난을 받는다. 

사회에서 승승장구하기 위해서는 꼭 경력 단절을 하지 않고 쾌속열차처럼 달리기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가정, 일, 건강, 친구 등 저글링을 하듯 모두 활발하게 돌리는 힘은 일에만 올인하기보다는 여성들의 특권일 수 있는 경력 단절에서 나올 수도 있다.


난 사회적으로 출세한 여성은 아니지만

나중에 죽음을 앞둔 시간에 내가 직장에서 못 이룬 사업, 못 올라간 자리, 내가 못받은 상장과 훈장보다는

내 아이와 더 많이 못보낸 시간, 더 많이 만들지 못한 추억을 아쉬워할 것 같다.

내 딸 아이는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는 간난아기때부터 유아기의 모습이 엄마인 내 눈과 가슴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난 그것을 지켜보고 아이의 몸에서 맡은 내 젖냄새를 확인할 때의 기쁨을 지금도 감사해한다.

그리고 그 경력단절 기간을 인정해주고 30대의 아줌마를 받아준 이 경향신문에 너무 감사하다. 

이런 직장이 더 많아지는 것, 아줌마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포용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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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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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원섭 2014.03.01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유 기자님에게 그랬어요.
    늘 품는 생각이 저와 똑 같다고요.
    저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딱 하나, 유 기자님입니다.
    참 희한하지요?
    여성들에 대한 인식 또한, 남성인 나와 여성인 유 기자님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요.
    진정한 엄마가 어떤 모습인가 하는 대목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 장모님께서 살아생전 늘 하신 말씀인데요, '아이는 부모의 면류관'이라는 말씀이었어요.
    삶의 가장 큰 가치가 무엇이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그 한 마디 말에 다 들어 있지 않은가 싶어요.
    이 세상사는 꿩 먹고 알 먹고 하는 식은 안 된다는 겁니다.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하나는 포기해 주는 것이, 이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동반성장의 사회로 만들어 가는 것 아닌가 싶어요.
    요즈음 젊은 이들에게 진정한 마음으로 권해주고 싶어요.
    하나는 포기하라고요.
    포기하기 싫으면, 포기할 수 있는 준비라도 하고 있으라고요.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딱 한 예만 들게요.
    한쪽만 벌면 더 열심히 벌고, 둘 다 벌면 한 쪽의 마음에는 의지심이 생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일흔을 앞둔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내 가슴에 확고하게 박힌 실전적 삶의 철학입니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요...

  2. 도연승민맘 2014.03.10 0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육아휴직 대상이 늘어나면서 첫째 초등입학 둘째 유치원 입학을 곁에서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군분투로 자리를 지켜주신 선배님들 덕분에 저희가 이런 혜택을 누리는 거겠지요 1년 금새 갈테고 승진은 멀어졌지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3. 빛나는 희망 2014.03.10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 고맙습니다.
    저도 정말 치열하게 일하다, 그 어떤 보모에도 적응 못하고 엄마를 너무 찾는 아이랑 함께 지내고 싶어서 1년 전 그만두었습니다. 유기자님처럼 분명 이 시간이 제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만두었고, 몇년 후에 분명 더 제게 잘 맞고 좋은 일을 찾아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오히려 주변에서 말도 안되는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마치 낭만적인 꿈을 꾼다는 듯이...

    저는 저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없길래. 요즘은 낙담하며 진짜 세상물정 모르고 그만둔건가 싶었습니다. 위축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요. 오늘 유기자님의 글을 보니 새로운 힘이 생겨납니다. 늘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제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몇 년간 늘 들어와서 위로만 받고 가는데, 오늘에서야 글을 남겨보네요. 다시 한번 정말 고맙습니다.

    • 유인경 2014.03.10 2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빛나는 희망님. 희망이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주변의 조언은 잘 들어야겠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의 직관으로, 우리의 의지로 살아가야하지 않을가요. 아이와의 아름다운 추억 많이 만드시고 이다음에 더 멋진 일로 재능을 확인하시길...

  4. 예비맘 2014.03.17 1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감사해요. 저 힘을 얻고 갑니다.
    곧 출산이고 육아휴직을 쓸테지만, 휴가 후 자녀양육문제로 인한 고민을 벌써부터 하고 있네요.
    나이 많은 유부녀는 사회에서 아웃이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비수로 다가왔었는데 말이에요.
    지금 보지 못하는 것을 볼수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내실을 쌓아야 하겠네요.
    글로서 힘을 주시니 대단하세요. 감사합니다^^

  5. 호산나 2014.03.19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엄청 힘얻고 갑니다..
    기억하시나요..
    대학원때문에 고민하다 댓글 올렸을때 친히~~!!! 답글 달아주시면서
    진학하라고 응원해 주셨죠..
    대학원 진학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관련된 자격증도 함께 공부 시작했습니다.
    준비하고 있다보면 기회가 오겠죠..
    그때 그러셨죠.. 해도 시간은 가고 안해도 시간은 간다고요..
    그말씀이 힘이 되었어요..
    글구.. 돈도 마찬가지인것 같아요.. 모아도.. 어디로 날아가면 순식간이더라구요..
    새학기라서 정신 없긴 한데요..
    암튼.. 시간 내서 들어와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구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