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저장된 메일을 확인하다가 잠시 울컥해졌다. 올해 세상을 떠난 이윤기 선생과 최윤희 선생에게 받은 메일을 보고서다.
하루에도 백여통 가까이 온갖 메일이 와서 확인하기도 전에 지우는 것, 보자마자 지우는 것 등등이 있는데 오래도록 지우지 않는 메일도 많다. 그 두분에게서 온 메일도 아마 반가와서 지우지 않았던가보다.
이제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더 이상 메일을 주고 받을수도 없는 저 세상 사람이 된 분들인데 그들이 내게 보낸 메일은 생생한 글자로 남아 있다.

이윤기 선생은 1, 2년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치아가 빠지고 볼살이 홀쭉해져 투르크 전사같던 그의 풍모가 너무 앙상해졌다. 그래도 딸과의 공동으로 세익스피어 전집 번역을 하는 등 번역과 집필 활동은 열심히 하셨다. 새로운 전집 출간을 앞두고 인터뷰를 청했더니 그 분은 난색을 표했다.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본지사진 (김석구기자)



현실과 사실을 전달해야하는 기자로서는 그 분의 쇄잔해진 모습, 세월과 병마에 스러져가면서도 눈빛만은 형형한 얼굴을 촬영해 천마디의 말보다 강하게 그 분의 상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는 번역 작업에의 열정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사진 촬영을 간곡히 거절해서 인터뷰라도 하고 싶었다. 요청 전화를 건 내게 이윤기 선생은 커다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인경씨. 요즘 내 귀가 아주 성능이 나빠요. 잘 안들려요. 특히 인경씨처럼 빠른 말은 잘 못 알아듣겠어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기가 힘들 것 같아.”

급한 성격에 말을 빨리 하는 편인데, 그게 그 분과의 인터뷰 장벽이라니... 그럼 이메일 인터뷰를 하자. 질문지를 보낼테니 답안지를 보내 달라는 제안에 그 분은 “생각해보자”라고 말씀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메일 인터뷰도 어렵다는 짧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세계적 특종도 아니고, 아픈 분을 괴롭히기엔 기자적 정신보다 인간적 양심이 더 강해서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거절의 메일이 내게 마지막 보낸 메일이다.

최윤희 선생은 우리 신문 에세이난에 원고를 보내고 메일을 보냈다. 그 분 특유의 경쾌하고 발랄한, “보고시퍼용” 등의 간지러운 말이 난무하는 메일이다. 그 메일을 보낼 무렵에 이미 최선생은 심한 통증을 느낄 때였다.  하나님이 쉬란 경고를 보낸 것 같다, 이젠 좀 몸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에세이를 쓰면서 “경향신문에 나의 졸고를 실어도 될까요?”란 겸양의 메일을 보냈다. 너무 겸손하고 배려심깊은 그분다운 메일이다.

 

경향신문 본지사진 (정지윤기자)



아직도 과천 집에서 오후 6시면 서재의 자리에서 일어나  “난 퇴근했소. 이젠 술을 마셔도 돼. 근무 시간이 아니니까”라고 석양주를 드시던 이윤기 선생, 그리고 언제 만나도 “오예~ 반가와요..”라고 말하던 최윤희 선생의 미소가 그립다.

해마다 12월에는 명함, 전화번호, 메일 등을 정리한다. 지난 1년간의 나의 인관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두 분 처럼 확실하게 세상을 뜬 분도 몇몇 있고 도대체 어디로 증발한 것인지 연락이 두절된 이들도 있다. 
직장이 바뀐 사람, 직급이 바뀐 사람, 스마트폰으로 전화 번호가 바뀐 사람, 이사해서 주소지가 바뀌 사람 등등 변화도 심하다.

그뿐인가. 휴대폰에 입력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살펴보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그런데 왜 전화번호를 입력했을까) 1년 가까이 소식이 뜸한 사람, 너무 보고 싶은데 정작 연락을 못 한 사람, 바쁘단 핑계로 보내온 문자 메세지를 씹은 사람 등등 관심도와 연락 빈도도 다채롭다. 습관처럼 행사에서 인사치레로 받은 명함, 이미 바뀐 옛직장 명함 등을 버리고,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와 메일도 삭제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쯤 누군가 내가 보낸 메일이나 메세지를 지우고, 전화 번호를 삭제하지는 않을까. 살아있는 나를 생매장(?) 시키는 이들은 없을까.
혹시 내가 상냥하게 받지 못한 전화, 씹은 문자 메세지, 무심코 던진 말을 오해해 내 전화 번호를 볼 때마다 미워하는 건 아닐까...
정보기관이나 대기업의 전략팀에서는 사람들을 성향별로 분류해서 “소액 매수 가능한 자” “성질이 괴팍한 자” 등으로 분류한다는데 난 나의 지인들에게 어떻게 분류되어 있을까. 그런데 그 진실을 아는게 행복할까...

해마다 연말이면 “해가기 전에 얼굴이나 봐야지”라며 저녁 약속을 잡자, 조찬이라도 하자는 이들이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난 남들에게 ‘그리운’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낸다.
누군가 내 이름을 보고 나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고, 나와의 좋은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비록 내가 실수를 하고 자주 연락을 못하고 주책을 떨었더라도 말이다....

생각 끝에 세상을 떠난 몇 분의 전화 번호를 삭제했다. 누군가 그 번호를 새로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그리움과 애정은 삭제하지 않았다. 그 분들에 대한 나의 애정과 그리움은 컴퓨터가 아닌 내 마음속의 폴더로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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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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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수부지 2010.12.07 14: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의미가 되고싶다~

    전화번호든 이멜이든지우지않고......

    언제든지 소식을 전하거나 받는 사이이고싶다

    전번이든 이멜이든 이름을 삭제하지않고 서로에게 존재하는 의미이고싶다^^

  2. 명동DJ 2010.12.07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윤기선생은 생전에 딱한번 만났었죠.
    그때 헤어지며 악수와함께 "나중에 문디들 끼리 밥 한번 묵읍시다."였는데
    그게 마지막 말씀이되고 말았군요.
    최윤희선생은 저와는 제법 가까운 분이었는데 내가 그분을 편협한 마음으로 바라만 보던중 그렇게 모질게 떠나신게 너무도 안타깝고 난, 죄를 진것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답니다.
    "최선생님, 생전에 제가 좀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점 사죄드립니다.
    배려와 좋은 일만 하시던 분 이시겠기에 극락왕생 하셨으리라 믿으옵니다.
    다시한번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유기자님의 주변 분들을 많이 알고 있네요.
    겨울철 건강 잘 챙기시고 한번 뵐수있는 날이 있을것 같은 좋은 예감!(ㅎㅎㅎ)

  3. 돌쇠 2010.12.09 2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봄날 봄비 내리던 어느날 떠나간
    내 사랑했던 친구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저도 해를 마감하며 떠나 보내려 합니다.
    유기자님의 글을 읽으며 새삼 그친구가 생각나는군요.
    잘 가가시게나...

    "내 친구는 좋은 친구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