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이상 우리 집의 살림을 도와주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출근하다 우리집 앞에서 심장에 통증을 느껴 갑자기 병원에 실려갔다. 그날, 우리 가족은 아무도 집에 없어서 나중에야 경비 아저씨로부터 그 소식을 알았다.
   막상 아주머니가 입원했던 병원을 찾아가려고 휴대폰을 누르니 꺼져 있었다. 무작정 병원으로 가려다가 생각해보니 세상에, 그 아주머니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환자 이름을 알아야 병원에서도 면회를 하지...
 10년을 함께 얼굴을 보고 우리 집안의 구석구석을 주부인 나보다 더 잘 아는 분이고 우리 식구들 생일을 챙겨주는 분인데도 내 휴대폰에는 ‘아주머니’로만 입력되어 있었다.

 만약 그 분이 어떤 사건에 관계되어 내가 증언을 해야할 입장이라면
 “제가 보증할만큼 정말 좋은 분입니다. 법없이도 살만큼 양심적이고 정직하고 착한 분입니다. 가족 사항은 아드님 두 분, 그리고...” 라고 인품에 대해 덕담을 해줄 수 있지만 정작 이름, 나이, 주소를 몰랐다. 다행히 무사히 퇴원하고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우리 집의 일을 도와주고 계시지만 어떻게 이런 관계를 10여년간 무사히(?) 지속했는지 서로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사람의 이름, 나이, 성격, 부모, 학력, 직업, 취미, 대인관계를 잘 아는 것일까.
 나는 방송에 출연해 내 사생활을 주절주절 뻔뻔하게 잘 늘어놓고, 블로그나 책에도 내 감정이나 상황을 잘 써서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아니 나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지인들로부터 가끔 “아무개를 아냐”는 질문을 받아 “전혀 듣도 보고 못한 사람”이라고 하면 “어머머, 잘 안다고 하던데?”라고 놀란다. 난 그 아무개가 거짓말을 한거라고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그 아무개는 미디어를 통해 나를 아는 것, 아니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끔은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해 내 남편이 외국인이네, 이혼했네 등등의 소설까지 쓰는 이들도 있단다. 조지 크루니와 결별한 걸 어떻게 알았을까. 헐)

 나 역시 다른 이들로부터 “누구를 아냐”는 질문을 받을 때 너무 쉽게 “잘 알죠”라고 한다.
 사실은 몇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게 전부인 경우가 많다. 곰곰 생각해보면 과연 그 사람도 나랑 잘 안다고 답할지도 미지수다. 때론 타인의 이미지, 소문,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만으로 그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난 가장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까운 남편이나 딸은 잘 알고 있을까. 그들의 취향 정도는 알지만 깊은 속내나 고민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신있게 답하기 어렵다.
 딸 아이가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최근에 알았고 (그냥 내가 주니까 먹었단다. ㅠㅠ)
 무표정한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이젠 알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보다 과연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 몸에 대해서조차 난 잘 모른다. 내시경을 통해서 들여다봐야 알고, 내 쓸개에 돌이 잔뜩 들어가 염증이 생겨 결국 제거수술을 받았을 때도 난 그저 체한 줄로만 알았다.

 내 마음 상태는 또 어떤가.
 내가 우울하고 마음이 착 가라앉을 때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
 괜스레 울적했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시 명랑해지고 몸도 가뿐해질 때도 있고(너무 부끄럽지만...)
 어떤 사람에 관한 감정이 미움인지 질투인지 분노인지도 잘 모르겠고
 호감도 역시 애정인지 관심인지 경외감인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리트머스 시험지나 운전자들의 알콜도를 측정하는 도구처럼 내 감정의 상태를 정확하게 수치로 표현해주는 도구는 없을까...

 어쩌면 내가 가장 무관심하고 가장 호솔히 하는 대상이 나인 것 같다.

 직업이 기자라 세상의 온갖 잡다한 정보에 능통하고,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가십을 줄줄이 꿰고
 알량한 책을 몇권이나 쓸만큼 책도 많이 읽었는데도
 난 세상에 대해, 내 친구에 대해, 내 가족에 대해 아니 나 자신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무엇보다 더 황당한 것은 내가 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왜 그리 푼수를 떠는지, 왜 대책없이 먹어대는지, 왜 그리 오지랖이 넓은지....

 얼마전부터 나와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지만 그건 내가 내 감정 상태를 물어보는게 아니라
 “잘 살자.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거야”란 위로와 덕담의 수준일 뿐이다.

 이제라도 난 날 좀 잘 알아봐야겠다. 내 몸, 내 마음. 내 정신, 내 욕구, 내 기호 등등..
 그리고 더 폭을 넓혀 타인을 잘 알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적어도 그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많은 곳을 여행했어도 정작 어떤 동네를 다녔는지 그 이름을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여러분은 날 잘 아시나요? 혹은 여러분을 충분히 이해하시나요...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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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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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심순득 2014.06.13 2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라도 난 날좀 잘 알아 봐야겠다.... 더 폭을 넓혀 타인을 잘 알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요즘 내가 너무도 공감하는 이야기네요^^ 언제나 응원합니다!!

  2. 토마토 2014.06.15 1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가네요. 쉽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오늘.. 주말 저녁은 나 자신부터 들여다보는 시간 가져보렵니다. ^^

  3. 기자님팬 2014.06.23 17: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이 솔직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분이라는 것..정도 알아요 ㅋㅋ

  4. 백성1 2014.06.27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명제에서부터 시작된 인문학적인 사고의 갈구가 자아를 좀 더 알아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겠지요. 나를 알게 된다하더라도, 또 다른 나의 모습은 다시금 생겨나고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5. pradu 2014.07.01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공감100%

    늘 좋은 글로 위로가 되는 유인경기자님~ 감사합니당.

  6. pradu 2014.07.01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공감100%

    늘 좋은 글로 위로가 되는 유인경기자님~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