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사회에는 윤일병 사건, 여고생 사건 등 흉악한 사람, 심지어 ‘괴물’로 까지 지칭되는 사람이 많지만 드라마에는 착한 사람이 넘쳐납니다. 통속드라마의 특성이 권선징악 인지라 대부분 주인공은 법 없이도 살만큼 선량한 성품인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 드라마의 착한 인물들은 비상식적으로(?) 착합니다. 국어 사전에서 ‘착하다’를 찾아보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도대체 곱고 바른 기준이 뭔지 모를 지경입니다.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주인공 장나라는 ‘인간문화재’ 격의 착한 심성을 지녔다는 평을 듣습니다. 다른 사람의 부탁이라면 그 어떤 것도 거절하지 못하고, 어떤 의도의 말도 곡해해 듣는 법이 없습니다. 우연한 실수로 재벌가 후계자 장혁의 아이를 임신한 그는 변덕이 심하고 기억상실로 온갖 구박을 하는 장혁 앞에서도 호수같이 평화로운 미소만 짓습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최진혁-장나라, ‘운명적인 커플’ (출처 : 경향DB)


종영을 앞둔 KBS주말극 <참 좋은 시절>의 윤여정은 홀연 이혼을 요구해 극중 가족은 물론 시청자들을 당혹하게 했습니다. 바람둥이 남편 탓에 남편의 소실인 최화정, 그리고 그가 낳은 아들 옥택연을 거둔 것도 모자라 옥택연이 고등학교 때 사고로 낳은 쌍둥이까지 자기가 낳은 자식으로 올려 키우는 인내심은 올림픽 금메달 감입니다. 그런데 집안의 구심점인 자기가 없어야 방랑 끝에 돌아와 가족들과 서먹한 관계인 남편이 가족들과 화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혼을 요구합니다.


KBS 2TV 일일극 <뻐꾸기둥지>의 장서희도 자기 남편과 바람나고 친정을 파멸로 이끄는 여성 이채영 앞에서 큰소리는 커녕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입술을 깨물기만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고도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집에서 쫓아내는 시어머니에게도 울며불며 매달리기만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인간의 양심과 선량함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선량함은 판단력 없음, 저항의식 없음, 심지어 ‘착한 사람=무뇌아’로 비춰집니다. 결국 착한 사람이 오랜 인내 끝에 행복을 얻는 것으로 끝나리란 것은 알지만 요즘 드라마의 착한 사람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착한 사람도 제 할 말은 하고, 나쁜 사람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은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 작가들의 덫에 또 걸려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까지 화를 내야하다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유인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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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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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미옥 2014.08.13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말씀처럼
    저 역시 현실감 심하게 상실한 드라마속 캐릭터들(어디 모자란 거 아냐? 라는 분노의 소리를 부르는 착한 캐릭터들)을 보면서 이 시대에 어떤 의도로 이런 드라마가 쓰여지고 기획되는 걸까? 궁금해했습니다.
    '네가 너무 감정이입을 하고 보는 것 같아. 그냥 드라마야...라고 생각하고 봐.'라며 흥분한 저를 가라앉히려는 남편의 말을 듣고서도 슬슬 드라마속 내용에 짜증이 나곤 했는데...
    유기자님 글 읽으면서 괜히 속이 좀 시원해지네요^^
    감사합니다. ^^

  2. 샛별 2014.08.26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갑자기 유기자님의 글에 관심이 많아져 오랜 시간이 흐른 글들도 읽어보게 되네요.

    솔직하고 숨김이 없는 글을 읽고있으면 왠지 후련함이랄까 ....

    저에게도 딸이 있다면 이렇게 멋지게 키워보고 싶은 욕망이 흐를 정도로..

  3. 상큼이 2014.09.02 1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고있는 이즈음!
    그보다 더한 토크프로가 역겨울 정도로 많더라구요...
    세상을 선도하고 국민들의 건강을 진정으로 신경써줘야 할 사람들이
    시청률에 급급해 튀는 말로 방송출연을 계속 하려고 맞지도 않고
    검증되지도 않은 말들을 마구 쏟아 내더라구요.
    유기자님도 방송에 출연을 하시니 혹 같이 출연할때 그런 사람들을 따끔하게 혼 내 주셨으면 합니다.

  4. 기원섭 2014.10.25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아버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주위의 칭송을 받을 정도로 착하게만 사시다가 20여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덕에, 울 엄마는 그 30여 년 전에 서른셋 꽃다운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가셨고, 이어서 순식간에 가난해진 집안 형편으로, 저는 전교 1, 2등을 할 정도의 향학열을 잠재운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막노동판을 찾아다녀야 했고, 결국 엇비슷한 실력의 동기동창이 검사 판사가 된 법조계에 박봉의 9급 검찰수사관으로 입문해야했습니다.
    질곡 같은 세월들, 저는 그 세월속에서 '착하기'를 포기했습니다.
    혼탁도 해봤고, 굴종도 해봤습니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 좀 착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tv드라마와 담 쌓고 살아왔는데, 이젠 좀 봐야겠습니다.
    얼마나 착한 짓을 하는 지,
    그리고 배울 것이 있는지, 좀 알아보려고요.

  5. Stella 2014.11.23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현실 사회에서 살짝 비슷한 경우에 나쁜 역활을 하는 사람은 저런 사람도 있는데,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더욱 악행을 저지르고 희생하는 역활은 더 큰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하는 것 같아요.
    제발 정상적인 사회 분위기 만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