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비례대표제 포럼 주최로 <야당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100여석 정도의 규모인데 400~500명이 몰렸다.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을 비롯, 천정배·김두관 등 정치인과 유종일·한홍구 교수 등 학자들은 격론을 벌였다. 야당의 향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입증한 토론회였다.

그런데 정작 이곳에서 가장 할 말이 많지 않을까 싶었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에서 졌고, 재·보궐선거에서도 공천을 받지 못한 데다, 최근 대거 등장한 진보교육감들로 진보교육이 화두여서 그의 소회와 행보도 궁금한데 말이다. 진보의 아이콘인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을 만나 야당과 진보교육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호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는데 반발이 많습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특별법 합의는 세월호 참사의 핵심을 간과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사건 전말의 재구성입니다. 유가족들은 검·경 합동수사나 국정조사가 의혹만 키웠다고 보고 국정원이나 청와대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검사에게 진상규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게 유가족들의 핵심 요지죠. 지금 필요한 것은 실체적 규명이니 진상조사위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정치연합이 새롭게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려면 합의에도 신중해야 합니다.”

이번 재·보궐선거 후 구민주당 원로 및 각계에서 참패 요인 분석이 한창입니다. 김 전 교육감이 생각하는 야당의 참패 원인은 무엇인지요.

“첫째, 자만입니다. 당 지도부를 비롯, 계파들의 자만입니다. 세월호 참사, 인사 참사가 거듭되어 박근혜 정부로부터 국민들이 멀어졌는데도 ‘새정치연합으로는 이 상황이 수습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무감각하고 오만했습니다. 둘째는 계파정치죠. 당의 승리보다는 계파 이익을 챙기겠다는 계파 수장들이 누가 더 국민과 당에 이익이 되는 후보인가를 따지지 않고, 누가 더 우리 계파와 가까운가를 기준으로 후보를 공천한 결과입니다. 다음은 메시지의 부재입니다. 한국 정치의 병폐를 보여주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견제하고 어떻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가 없었어요. 이번 참패는 국민들이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야당을 새정치의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국민에게 비전을 전하는 정책도 없고, 따뜻한 메시지도 못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참패가 오히려 국민들이 야권에 주는 기회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에 다수당 회복, 2017년에 대권을 차지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도록 당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손학규 전 의원의 정계 은퇴를 계기로 야권의 세대교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올드보이 퇴진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데요.


“새정치는 정치신인만 하는 게 아닙니다. 세대교체라고 하는데 그게 나이순입니까, 아니면 의원 선수 기준입니까. 저는 우리 나이로 66세인데 올드보이입니까, 아니면 정치신인이니 영보이입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과거 당을 이끌 때 노·장·청 즉 원로와 장년층과 청년들의 조화가 이뤄져야 당 발전의 근간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치엔 신선함만큼 경륜도 필요하고 신세대다운 박력만큼 노련함도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 이상훈 선임기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당 정체성을 ‘보수정당’으로 선명하게 표방했습니다. 문제는 새정치연합인데요, 김 전 교육감이 생각하는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원칙적으로는 명확하게 야당으로서의 선명성과 원칙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 전에 국민의 생활에 기본을 둔 정치,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진보라고 해도 말로만 진보가 아니라 국민들 속에서 생활진보를 구현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깨끗하고 따뜻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며 교육전문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주변에서는 3선 교육감도 전혀 힘들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하던데요.

“교육감으로 교육정책과 행정을 하다 보니 교육분야가 제대로 되려면 교육을 뛰어넘는 더 큰 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교육감 5년 하는 동안 도의회에서 도정(道政)에 대한 논의를 지켜보면서 공부도 하고 경기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도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교수로서 대학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교육감으로서 갖게 된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교육을 비롯한 각 분야가 개혁되고 활성화되려면 정치·행정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니까요. 물론 아쉽게 좌절했습니다만….”

혁신학교·무상급식·학생인권조례…. 민선 1기의 대표적 진보교육정책들은 모두 김 전 교육감의 손에서 시작됐다고들 합니다. 교육부가 받아들여 전국으로 퍼진 정책도 많고, 경기도지사 후보로 제안한 도은행의 경우 남경필 현 경기지사가 벤치마킹할 것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그런 정책이나 아이디어들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모든 정책 아이디어는 국민의 생활 속에서 나옵니다.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물론 교육전문가와 토의를 하고 자료를 찾고 그런 정책들이 과연 실천 가능한지를 논의한 후에 정책으로 만듭니다. 무상급식의 경우도 초기에는 엄청난 반발을 샀습니다. 기득권, 여권, 보수언론의 거부감이 컸지요. 재벌 아이나 손주들에게도 공짜 점심을 줄거냐 등등…. 하지만 학부모들이 바라는 교육 현장과 상황을 공감하며 실천한 끝에 이제 정착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바임을 거꾸로 증명해 보인 셈이죠. 한국 경제의 밑바닥, 최전선은 사실 교육입니다. 무상의무교육이 확장되어도 학부모의 부담은 여전합니다. 혁신학교의 경우도 교육의 문제가 바로 전 국민의 문제라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입시 중심의 무한경쟁 교육입니다. 그걸 해소하려면 초·중등학교부터 바꿔야 합니다. 그 모형을 바꾸는 것, 현대적 교육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됐죠.”

진보교육의 아이콘이라는 김 전 교육감의 성공으로 이번에 진보성향 교육감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다른 분야와 달리 대한민국의 교육분야는 매우 보수적인데 시민들은 왜 진보교육감을 선택했을까요.


“교육의 진보와 보수는 일반적 이데올로기와는 접근이 다릅니다. 제가 처음 진보교육을 주장했을 때 보수층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는데, 교육의 점수는 학부모가 평가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교육 정상화의 열쇠는 진보에 있다는 것을 학부모나 유권자들이 실감하고 이번에 진보교육감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진행한 진보교육은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두 함께 어우러져 학생인권과 교권이 교류하며 더불어 숨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재정부담은 교육감은 물론 정부나 국민의 고민입니다만 국민들이 진보교육의 성과에 공감하고 미래를 걸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벌써 진보교육감과 학부모 사이, 혹은 교육계 사이가 삐그덕거리는 것 같습니다. 자사고 폐지나 전교조 파견교사들의 복귀문제 등 사안이 복잡합니다. 진보교육감들만이 아니라 후배 교육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교육을 바꾸는 작업은 교육가족 모두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국민적 사업입니다. 신중하면서도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교육가족 및 시민들과 소통하고 동의를 이루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야 정파를 떠나 교육개혁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독립적인 상설기구로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합니다. 교육 혁신을 위해선 학생·학부모·교사 등이 함께 활약하는 교육공동체를 활성화하고 학교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쟁교육으로 내달렸다면, 박근혜 정부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소질과 소양에 따른 창의교육을 내걸었죠, 초·중·고 교육과 대학 교육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바꿀지 국가교육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또 진보교육감들은 국민들이 교육에서 희망을 갖도록 교육을 살려 선진교육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역사적 책무를 의식해야죠. 무엇보다 학생·학부모·교사들이 함께 학교를 가꿔가는 ‘교육공동체 활성화’와 ‘학교 민주주의 발전’에 치중해주기를 당부드립니다. 사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교육부의 검찰 고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외노조화 등에 우려가 큽니다. 세월호 참사는 잘못된 우리 정치·사회구조가 아이들에게 가한 교육 참사입니다. 교육자들이 이런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면 그건 죽은 사회죠. 시국선언은 교사 이전에 시민으로서 양심에 따라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인데 후속조처로 징계 등을 직접 맡게 될 수밖에 없는 새 교육감들께서 교육행정엔 실정법과 현실적 판단이 있음을 고려해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랍니다.”

진보나 보수 성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돈, 즉 교육예산입니다. 김 전 교육감의 각 정책들도 때론 포퓰리즘으로 비난받고 무상급식하느라 학교 에어컨도 못 다는 등 다른 분야가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는데요.

“무상급식으로 돈을 다 써서 엉망이 되었다면 그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거나 이번에 진보교육감의 대거 등장이란 결과를 낳았을까요. 물론 항상 예산은 부족합니다. 진보교육감이 13명으로 절대다수이지만 현재의 중앙집중적 교육시스템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성급하게 졸속으로 하지 말고,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국민의 동의를 구한다면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정치 이야기를 해보죠. 이제 새정련은 박영선 비대위원장 체제로 들어섰습니다. 정권 창출의 희망이 보입니까.

“지난 10년 사이에 우리 당은 정책 방향이나 정강을 수시로 바꾸고 중도로 가자, 진보로 가자 등 방향도 오락가락했습니다. 당의 가치나 노선을 명확히 못보여주는데 어떻게 국민의 공감을 얻겠습니까. 말로는 서민과 중간층을 위한 정당이라면서 새누리당 2중대 역할만 하지 않았나요? 새정치연합이 단순히 당내 개혁만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워낙 계파정치가 오래 되어 당내 불신이 팽배하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은 실망할 뿐이죠.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구한말 ‘만민공동회의’처럼 ‘전당원 공동회의’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회의를 해서 의견수렴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당이 바뀌려 하는구나, 바꿀 수 있구나란 믿음이 당원들 사이에 생겨나고 결국 국민들의 믿음을 얻게 될 텐데, 과연 그렇게 될지….”

<최고의 석학은 어떤 질문을 할까>란 책을 보니 석학만이 아니라 지도자들은 수시로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질문을 하더군요. 요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육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인으로 출발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질문과 생각을 합니다. 사실 윤 일병 사건이나 여고생 살인사건 모두가 결국 참교육의 부재, 인성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학교에서 엎드려 자는 학생이 없는 교육, 학생들과 교사들이 다 행복한 교육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묻습니다. 또 87년 체제 이후에 변화가 없는 한국 정치,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추락했는데, 정치인으로서는 어떤 길을 가야 하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이 스스로에게 던진다는 이 질문은 사실 모든 정치인이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그 질문이 그저 공허한 질문으로 그치지 않게, 행동으로 모범답안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박성길 2014.08.20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양반은 가만히 시켜준 교육감이나 잘 하시지 무슨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다가
    그냥 한번 명함도 못내밀고 가버렸네...ㅉㅉ

  2. 기원섭 2014.10.25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는 나이가 비슷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선지 생각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저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그런 구분을 잘 하지 못합니다.
    저는 오로지 온전한 마음가짐만 생각합니다.
    온고지신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제 두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비의 경험담을 듣지 않으려거든, 아비가 그 경험으로 쌓은 것을 탐하지 마라.'
    며느리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네 존재는 네 스스로 창조 것이 아니라, 주위의 도움 족에서 어우러진 것이다. 네 혼자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주위의 도움 속에 네가 있다. 그리니 부탁해라. 들어준다. 그러나 고마워해라.'
    아주 작은 우리 집안의 일을 까발렸습니다만, 세상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역사의 경험도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제도는, 다 그 이유 있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온고지신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동안 못 챙겨읽은 유 기자님의 글을 오늘 몽땅 읽고 댓글도 몽땅 달겠다고, 앞에서 스스로 다짐을 했기에, 이 어려운 글에 또 댓글 한 편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