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정희 시인에게 전화하면 “지금 베니스예요” “여기는 스웨덴”이란 답이 올 때가 많다.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각종 문학축제나 토론회, 시인의 행사 등에 초청받아 간 것이다. 그의 시집은 8개 언어로 번역돼 10개국에서 발간됐다. K-팝이나 드라마만 한류가 아니다.

문 시인은 가장 대중적으로 친숙한 시인이기도 하다. 전수안 대법관은 그의 시 <먼길>로 퇴임사를 대신했고, 이라크로 파병 가는 비행기에서는 그의 <아들에게>란 시가 낭송되기도 했다.

외계어 같은 인터넷 용어나 짧은 문자 메시지가 가득한 요즘 시대에 시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 우리 삶에서 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무엇보다 시인은 어떤 삶을 사는지가 궁금해 가을이 시작되는 길목에서 문정희 시인을 만나야 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활동이 더 활발합니다.
“경제인이나 연예인도 아닌 시인을 외국에서 자주 초청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죠. 올봄에 프랑스의 유명한 예술전문방송인 아르테 텔레비전에서 <기적을 이룬 한국>이란 5부작 프로그램 가운데 시의 소재가 된 제 서재를 소개하겠다며 찾아와 촬영했습니다. 기적을 이룬 한국인 가운데 시인을 선정한 것만으로도 기뻐 흔쾌히 응했죠. 6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대 초청으로 시낭송을 했고, 7월에는 일본 조사이 국제대학에서 한·중·일 시인들이 모여 생명을 주제로 토론을 했습니다. 9월에는 중국 사마천학회의 초청으로 중국에 가고 11월에 다시 일본에서 이토 히로미 시인과 여성의 몸을 주제로 토론을 합니다. 제가 아니라 한국시에 대한 관심이겠지요.”

그 나라의 정서, 삶, 역사를 함축한 시가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소통되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우리 시가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려면 좋은 번역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이 이미 세계인으로서의 보편성에 노출되어 있어 우리 시가 외국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우리도 보들레르, 로르카 등의 번역시를 읽고 감동을 느끼지 않나요. 시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어로 낭송을 해도 외국인들이 감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시인들끼리는 서로 동지애, 자매애를 느껴 소통에 문제가 없습니다. ‘시는 인류의 모국어’란 말도 있잖아요.”

그런데 왜 유독 문 시인을 외국에서 많이 찾을까요.
“한국의 언어는 정감의 언어입니다. ‘이쯤 하면 알아듣겠지’ 하며 너무 함축된 시어를 쓰거나 민족시 등을 고집하면 외국인들에게는 이질감을 주죠. 제 시가 외국에서 인정받는 것은 명료하고 논리적이고 분명한 것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일 겁니다. 정확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또 저는 외국에 가면 그 나라를 철저히 공부하고 갑니다. 아마 학창시절에 그 정도 공부했으면 고시도 충분히 합격했을 거예요. 그렇게 그 나라에 대해 이해심을 갖고 쓴 시는 당연히 그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서로 공감대를 나누게 됩니다.”

영화 <변호인>의 감독은 한 시대의 아픔이 문학이나 문화로 남겨질 때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면서 IMF사태 같은 국가적 고통을 겪고도 왜 그걸 다룬 문학작품이 없는지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시인들은 여전히 꽃·별·사랑만 노래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공자는 ‘국가의 불행은 시인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재료가 많기 때문이죠. 저는 한국전쟁 무렵에 태어나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10월 유신과 5월 광주를 거쳐 1997년 경제위기까지 겪었습니다. 미국 시인들은 ‘내 장난감은 탄피와 수류탄이었다’는 제 얘기에 무척 놀랍니다. 환경을 보면 한국 시인은 정말 축복(?)받은 셈입니다. 또 시는 언어를 재료로 만드는 요리입니다. 현실의 구조를 투시하는 힘이 있고 그것을 언어를 통해 시화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서정시가 많다면 우리 시인들이 현실 투시에 소홀하다는 방증일 겁니다. 그런 사회문제에의 관심보다 정감이나 자기호소, 교훈에 몰두하는 한국시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요. 시는 혁명입니다. 그런데 무혈의 정신혁명을 일으킬 시가 너무 드물죠. 발레리가 스승 말라르메에게 ‘시를 어떻게 씁니까’라고 묻자 스승은 ‘고독이 하는 소리를 받아 적어라’란 답을 합니다. 고독의 권리를 잊거나 잃어버린 이들, 문명의 과잉과 정보 과잉이 시인들에게는 독 묻은 사과 같은 재앙입니다. 모두 바빠 허둥대지만 가장 필요한 정신을 망각합니다. 물이 흘러넘치는 홍수가 날 때 정작 필요한 것은 인간이 마실 한 잔의 생수죠. 시는 그런 생수 역할을 해야 하고, 시인은 생수를 만드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는 과잉이지만 정서적으로 황폐화된 현대, 특히 한국처럼 양극화가 심각하고 상처가 많은 우리들에게 시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시를 한 편 읽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요즘 자연과 환경파괴를 우려하지만 가장 파괴된 것은 인간입니다. 아마존 밀림보다 더 황폐해진 것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아닐까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나왔을 때 프랑스 문맹률은 45%,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발표했을 때 러시아는 90%가 문맹이었습니다. 문맹의 시대에도 고급스럽고 귀중한 언어들이 쏟아져나와 문학의 골격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시를 읊조린다 해도 잠시 위안은 받아도 치유는 되지 않죠. 아무개 시인의 시를 읽고 위로받는 건 자그마한 밴드로 심장병을 고치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 시인들의 시를 자주 접해 시어에 익숙해진 다음에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자기 치유입니다. 거기에 문학의 기쁨이 있어요. 상투에 길들여진 언어를 걷어내고 내면에 솟아난 신선한 샘물을 만나는 게 문학이니까요. 일기건 습작이건 자기 언어를 만드는 것이 바로 모두 시인이 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인과 달리 유독 남성성과 여성성, 섹스를 다룬 작품이 많습니다. <남자를 위하여> 등 남성을 위로하는 시도 많고요. 특히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세우기 위해 산다/좀 더 튼튼하고/좀 더 당당하게/시대의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중략)천 년 후의 여자 하나/오래 잠 못 들게 하는/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란 <사랑하는 사마천의 당신에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기둥 하나 세우려고 별별 짓을 다하는 졸렬한 남성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맞아요. 천 년 전에 남근을 잘리는 궁형을 감수하며 역사에다 진정한 큰 기둥을 세운 사마천 같은 남자가 있는가 하면 고작해야 남성적 에너지의 강화를 위해 그런 끔찍한 짓을 하는 남성들이 있다니…. 어떤 이는 ‘Pen is Penis’란 말로 문학이나 언론에서의 남성 우월주의를 말합니다만, 제게 펜은 피입니다. 생명의 피죠. 오늘날 시를 쓰며 남자를 통과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시를 쓰기 어려워요. 남성을 이해하고, 남성의 원형질을 살려주는 것도 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성 공격은 여성학 초기에나 다루는 것이고 이제는 여성이 갖고 있는 생명의 원형질로 서로를 감싸줘야 해요. 남성과 여성은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이니까요.”

 

 

진명여고 시절에 백일장을 휩쓸며 ‘천재 문학소녀’로 불리고 미당 서정주 선생으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소년 천재’는 그 무게에 짓눌려 불행해지거나 이름도 없이 사라지던데 지금도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청소년 시절엔 저도 우쭐하고 착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재능과 영광은 그저 추억거리로 밀어두었습니다. 문학은 직장처럼 시간이 흐르면 과장, 부장으로 승진하는 미래가 보이는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목숨처럼 시에 매달려 왔죠. 그 과정에 얼떨결에 결혼을 하고,(왜 가장 중요한 선택은 제일 허술하게 할까요) 치마 뒤집어쓰고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이의 심정으로 제 선택에 책임을 졌어요. 결혼, 출산, 양육 등 한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제에 함몰되어 넋이 빠진 삶을 살았지만 그 사이에 10월 유신, 광주를 겪으며 사회의 고통을 느꼈고, 아우내장터에 가서 유관순을 기억하며 ‘왜 난 소리를 못 지를까, 왜 난 미치지 못하나’란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30대에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모국어를 잠재우니 저는 시인이 아니라 그저 영어 못하는 아줌마더군요. 물론 나중에는 그게 언어로부터 자유로운 계기가 되었지만요. 미국에서 예술적 자극과 개안,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8년 동안 시인으로 공백을 가진 후 다시 공부해서 본질로 승부하는 정공법으로 시를 썼습니다. 다들 제가 엄청나게 문학상을 휩쓴 걸로 아는데 우리나라 390개의 문학상 가운데 그렇게 많은 상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돌아보면 제 전 재산은 도처에 깔린 외로움과 고통과 위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시에 찔리며/낚시바늘 입에 물고 온 몸 파득거리며/내가 가는 길/그래도 나는 시 몇 편을/통행세로 바치고 싶다’란 시 <통행세>를 썼어요. 그게 시인의 삶입니다.”

고정관념이겠지만 대부분의 여류시인은 조신하고 옷차림도 단아한데, 문 시인은 온몸을 휘감는 스카프, 엄청난 크기의 반지, 집시처럼 부풀린 헤어스타일 등 세련된 연극배우 같은 분위기입니다.
“이미지가 화려하죠. 그래서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길에 나서면/사람들은 멋있다고 말하지만/나는 그녀의 상처를 덮는 날개입니다/쓰라린 불구를 가리는 붕대입니다’로 시작되는 <머플러>란 시도 썼습니다. 실은 뚱뚱해진 몸을 가리기 위해 스카프를 애용합니다만…. 외국에 가면 시장에 가서 스카프나 반지를 사는 것이 취미이자 제게 주는 선물입니다. 10달러, 20유로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지만 저를 행복하게 해주니까요. 외양은 화려해 보이지만, 저는 가사도우미도 두지 않고 사는 주부입니다. 평생 결핍감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긴 하지만 시인은 항상 스스로 절제하고 유배시켜야 합니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한계령을 위한 연가>, ‘사랑에 은퇴하고/가을 하늘처럼 투명해지면/터키석 반지 사러 터키에 가고 싶다’<터키석 반지>,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돌아누워 버리는/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남편> 등 연애에 관련한 시가 많습니다. 아직도 연애를 꿈꾸십니까. 아니면 진작 은퇴하셨나요.
“위장 은퇴했습니다.(웃음)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도 타계하기 전, 부자유한 몸을 휠체어에 맡긴 채 마지막 인터뷰에 응하면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도 주저없이 ‘연애!’라고 대답했죠. ‘해도 자꾸 더 하고 싶은 것이 연애야’라면서요. 모든 예술가들에게 연애감정은 원천적인 힘입니다. 곧 나올 시집 <응>은 연애보다 더 강도가 높은 걸요. ‘햇살 가득한 대낮/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네가 물었을 때/꽃처럼 피어난/나의 문자(文字)/“응”//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건 문학이고 상징이지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어릴 때 모 선배의 연애스캔들을 목도했을 때 아름답지 않고 흉해 보이더군요. 저도 숱한 연애로 유명한 조르주 상드의 말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순위는 첫째 아이들, 둘째 일, 다음이 사랑입니다. 오죽하면 무용가 홍신자씨가 저보고 ‘당신은 입은 (세련된) 유럽인데 몸은 (개발이 안 된) 아프리카’라고 했을까요. 하지만 시인이어서 숙명적으로 가슴속에는 항상 연애가 진행 중입니다.”

문 시인이 존경받는 이유는 연애시만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 시, 혹은 통찰력이 넘치는 시를 썼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고 싶은 권력의지는 없었습니까.
“장관보다 시인이 더 영광스럽습니다. 문학은 생래적으로 이상을 추구합니다. 현재가 낙원이라고 하더라도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끝없이 부정하고 저항해야 하죠. 문학이 권력을 사랑하는 방법은 찬사나 칭송이 아니라 질문과 비판과 저항이에요. 어용이나 관변작가는 침묵의 비겁자입니다. 진정 살아 있는 정신을 원한다면 권력자도 어렵지만 문인들의 그런 날선 질문, 진정한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문정희 시인은 “문학의 본질은 질문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누구이며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란 질문을 계속 던지고 내면의 갈증을 해소하는 문학 없이는 진흙탕을 헤매는 돼지의 삶과 같다”고 했다, 문 시인의 명징한 말보다 그의 큼직한 돌반지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걸 보면 난 돼지임에 분명하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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