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서 가장 좋은 것은 입시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난 것이다.

아득한 옛시절 이야기지만 내가 대학에 진학할 때는 그야말로 복고풍으로 예비고사와 본고사의 두 단계 시험만 보면 그만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실컷 놀다가 시험보기 2달 전에 대오각성해서 미친듯 공부해 서울대학에 갔다 등 전설적 이야기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대학도 많지 않았지만 대학진학률도 낮아서 성적이 아주 형편없거나 집안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대학에 가지 않는게 상식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무조건 대학에 가야하는 시대에다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대학에라도 무사히 합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일단 할아버지의 재력(당대 발복한 재력으로는 힘들다는..),  어머니의 정보력(족집게 과외 선정부터 각 대학의 특성까지 파악하는..), 아버지의 무관심(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나서지 말라는...) 아이의 체력에 가정부 도우미 아줌마의 요리솜씨가 있어야 한단다.

그 외에도 학교 내신성적, 온갖 대회의 수상 경력과 자원봉사 증명, 논술, 수시전형에 정시전형, 가나다군의 대학 배정 등 너무 복잡하다. 입시 전형료만 백만원이 넘게 썼다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어지간한 재력과 판단력이 아니고선 아이를 대학에 보내기 힘들다.

대입 정시모집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고3 수험생들이 11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연 대입정보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서성일기자


요즘 주변에서 얼굴 빛이 환한 이들은 아이가 무사히 대학에 합격한 복많은 부모들이다. 반면에 얼굴이 어두운 이들은 아이가 수능 시험 성적이 나쁘거나 수시 지원에 줄줄이 떨어져 정시에 목숨을 건 이들이다. 그런데 왜 아이의 대학 입학 여부에 부모들이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할까. 왜 아이의 성적표가 엄마의 성적표가 되어야 하나.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생각해보니 딸 아이가 대학 시험을 치른 이맘때 나 역시 불안하고 괜히 스트레스받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났다. 가나다 군에 골고루 원서를 내놓고 간절히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데 걸려오는 전화들이 모두 반갑지 않았다.

“그래, 어떻게 됐어? ”는 약과다.

“(수시에 합격한)우리 아들은 대학생이 된 기분인가봐. 그리고 서울대가 대단하긴 하다. 벌써 주변에서 과외해달라는 주문이 온단다.  네 딸도 수시에 지원하지 그랬니? 다군 마지막까지 기디리려면 속이 바짝바짝 타겠구나.”

“뭐 대학에 떨어지면 어떠냐. 글로벌시대인데 외국에 유학보내.”(유학은 공짜로 보내나)

“넌 그렇게 딸 아이 성적에 신경도 안써놓고 뭘 기대를 하냐?” (기대도 못하나)

평소에 온갖 심란한 말을 들어도 별 타격을 안받고, 인터넷의 악플에도 담담한 편인데 아이의 대학과 관련해서는 약간 예민해졌다.

고맙게도 딸 아이는 수험생의 날카로움이나 신경질을 부리지도 않았고 몸도 건강했다. 엄마의 솜씨를 믿지 못해 수능 시험일에도 동네 음점에서 주문한 음식으로 도시락을 지참했고, 도우미 아줌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태연하게 먹고갈만큼 엄마에게 심적 부담을 주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무사히 대학에, 아니 겨우 대학에 합격했을 때 너무 감사해서 마치 장기수가 출옥한 심정이었다. 하바드나 서울대가 아닌데도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한 어머니가 아이가 대학에 떨어졌다고 자살을 하거나, 탈진해서 사망한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면서도 이 ‘입시 지옥’으로 표현되는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에 감사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아직도 가나다군의 특성과 입시 전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얼마전 “성관계를 하면 성적이 오른다”며 여학생들을 성폭력한 기숙사형 입시학원 원장의 인면수심의 행동에 분노하면서 더더욱 분노를 한 것은 우리사회의 대학만능, 학력 위주의 풍조였다. 오죽하면 겨우 열여덟, 열아홉의 소녀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해 나이든 원장의 성관계 제안을 마치 제단에 오르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그렇게 대학을 나와도, 취업도 안되고 88만원 세대가 될 뿐인데 말이다.


대체 이 대책없는 학벌주의는 언제 사라질까.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모두 상고 출신이라 다음 대통령은 지역상 강원도 상고 출신이 유력하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리지만, 대체 이 대책없는 학벌주의는 언제 사라질까.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모두 상고 출신이라 다음 대통령은 지역상 강원도 상고 출신이 유력하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리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 상고를 진학하는 이들은 없다.


또 영문도 모르고 들어간 영문과, ‘전공 불문’이라기에 취직하려고 들어간 ‘불문과’,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한 ‘신방과’ 등등 대단한 철학이나 적성 파악이 아니라 내신과 수능 성적, 당시의 트렌드를 보고 들어간 대학에서 우리가 배우고 얻은게 뭔가....

21세기인 요즘도 여전히 정관계 인사들은 서울대 출신들이 압도적이고, 국회의원들도 서울대에다 그것도 법률가 출신들이 가득한데 그 명문대 출신의 인재들이 꾸려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별로 모범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게다가 연예인들조차 서울대 출신, 혹은 고대나 연대 출신이라면 ‘아우라’, 후광 효과를 발휘한다. 예쁘긴 하지만 김태희가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지금같은 인기나 대우를 받았을까,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같은 노래들 역시 서울대 출신이란 편견이 더해져 더욱 근하하게 여겨지는게 사실 아닌가.

난 모든 이들에게 다 똑같이 동시에 기회를 주는 ‘기회의 균등화’보다는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또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의 다양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명문대를 나오지 못했더라도 입사 시험이나 승진 등에서 편견없이, 다른 시스템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고등학교만 나온 이들이나 비명문대 출신들도 실력을 인정받지 않을까. 그게 공정 사회의 기본인 것 같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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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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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환주 2010.12.16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동료들 중 이런 삶이 있죠.
    남들과 사회적인 토론 할때는 가장 공익적으로 하지만
    본인의 취향은 매사에 학벌을 찾는 그런 사람이 있답니다.
    혹여, 유기자님은 그런 분은 아니시겠죠?

    • 김환주 2010.12.16 2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람이란 단어를 잘못쳐서 삶이 되었네요.
      그런데 막상 적힌 다음에 보니 그것도 괜찬으것 같기도 하고 찌질이 같기도 하고 뭐 생각하기 나름이죠...

  2. 유인경 2010.12.17 0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학벌을 찾지는 않습니다.
    다만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벌을 얻은 것에 대해서도
    절대 배아파하거나 폄훼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학벌지상주의 사회풍조때문에 너무 많은 이들이 상처받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전 비굴한 면은 있으나 별로 위선을 떨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보다 다 똑똑하셔서 제 위선을 금방 눈치채시거든요..

    • 김환주 2010.12.17 2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지막말씀은 듣기가 거북하군요.
      세상 사람들보다 덜 똑똑하다고 하신다면
      어떻게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줄수 있다고 글을 쓰실수 있으신지요?
      설득력이 떨어지네요...

  3. 고수부지 2010.12.18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학벌가진사람들은 그만큼 그시절노력해서 그런거지요~
    학창시절 공부안했으면 놀기라도 잘해야지요~
    놀지도 않고 공부도 안하고 어영부영 시간만보내기에는 아까운 청춘이지요

    특히 공부말고는 할게 없었던 시절이야 학벌이 중요했겠지만?요즘 인터넷게임하랴 TV보랴 책보랴 놀것투성이인이시절에 학교공부만 잘한 사람이 과연 인재일까요? 30년후에 판가름 나겠지요~ㅋㅋ

    • 2011.01.11 1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시대에는 학교 공부만 잘한 사람이 인재라고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사실 학생 때는 누구나 주변에서 공부하라고 하고, 공부가 전부인것처럼 사회에서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착하고 성실한 학생들이 자신이 하고싶은것의 유혹을 뿌리치고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나니까 그때서야 30년후면 판가름이 난다느니 이런 말을 하면 그 학생들은 뭐가 됩니까?
      저는 이번에 고등학교 졸업하는 학생이지만, 제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자기는 노느라고, 인내심이 없어서, 공부안한거면서 무슨 자기는 공부잘하는 얘들하고는 다른 관심사가 있기 때문인것처럼 얘기하는 거보면 한심하더군요.
      물론, 자신이 공부가 아닌 다른 뚜렷한 관심분야와 그 분야에 재능이 있다면 그 분야의 재능을 계발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보다 훌륭한 일이겠죠. 그렇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공부 못하는 학생들 중에서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에 흥미가 있어서 그 분야의 재능을 계발하느라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오히려 님 말씀대로 놀것투성이인 요즘 시대에 그 유혹을 모두 뿌리치고 공부한 학생들이 옛날 놀것없던 시대에 공부만 한 학생보다 훨씬 훌륭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