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건 때 나미경씨는 집으로 연기가 스며들자 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세 살짜리 아들을 몸으로 덮었습니다. 소방관들이 구조하러 갔을 때 그는 온몸이 그을린 상태에서 아들을 꼭 껴안은 채 의식 없이 쓰러져 있었답니다. 겨우 스물두 살, 고아 출신의 미혼모였지만 그 엄마 덕분에 세 살인 아들은 별 상처 없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감동적이지만 놀랍진 않습니다. 모성애는 그렇게 숭고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일 우리 안방을 찾아오는 일일드라마 속 어머니들에게는 그런 모성애를 찾기 어렵습니다. 사랑과 헌신은커녕 핏줄임을 부정하거나 저주를 퍼붓고 발목을 붙잡는 악마의 모습을 보입니다.


MBC 일일극 <압구정백야>에서 이보희는 병든 남편과 아들·딸을 두고 가출해 돈 많은 의사와 재혼합니다. 전처 딸을 재벌집에 시집 보내 그 덕에 노후까지 따뜻하게 보낼 생각뿐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친아들에게도 “더 이상 날 찾지 말라”고 말해 아들은 충격에 넋을 잃고 나오다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KBS 일일극 <당신만이 내사랑>의 이효춘은 무능한 남편과 딸을 두고 부잣집에 가정부로 들어가 홀아비 한진희를 유혹해 재혼에 성공합니다. 과거를 지운 채 교양 있고 우아한 귀부인 행세를 하는 그녀는 자신의 추악한 과거가 발각될까봐 친딸에게도 못할 짓을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자리가 흔들릴까 불안할 뿐, 딸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없습니다. SBS 아침드라마 <황홀한 이웃>의 박탐희는 애인과 밀애를 즐기며 한눈을 팔다 사고가 발생했고 그사이 어린 딸이 무서움을 토로하다 죽습니다.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에 다시 돌아온 복고풍처럼 이런 악마 같은 어머니도 한때의 유행일까요. 혹은 시청자들은 이런 막장 어머니와 자기 어머니를 비교하며 그 따뜻한 사랑과 헌신에 감사하고 효도하라는 것이 제작진의 속깊은 의도일까요. 이제 ‘엄마를 부탁해’가 아니라 ‘모성애를 찾아줘’라고 모성애 실종신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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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박덕분 2015.01.31 0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효춘이 유혹한건 한진희가 아니고 이영하아닌가요??

  2. 칠링 2015.01.31 14: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녀가 없으면 안되는 드라마.. 남자들은 멀찍이 뒤로 물러나 있고 여자들끼리 아웅다웅 치고 받는 장면들이 늘 불편하네요..

  3. tlsgjsal 2015.01.31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우리나라는 이미 모성애가 차고 넘쳐서 좀 덜어냈으면 하는 사회 아닐까요?
    사례로 든 드라마들은 주로 중장년 여성들이 타겟이죠 사실 저도 사십대지만 저도 드라마는 안보는데 70대이신 우리 양가 어머님들이 몰입해 보시더라구요
    그 시대 어머니들은 자의든 타의든 "넘치는 모성애"로 살아오신 분들이죠
    남편이 바람피고 속을 썩여도 거지같은 시집에서 학대수준의 시집살이를 시켜도
    무능한 남편 때문에 아이업고 공장을 나가거나 행상을 하면서도
    "어머니"로서의 의무감을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삶을 사신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이런 드라마를 열심히 보시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저런 싸가지 없는 여자와 비교해 자신의 우월성을 인정받고 싶은 한편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도 저렇게 부담스러운 모성애를 던져버리고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해 살아봤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동경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대리만족까지 타박하심 안돼죠
    지금도 모성애를 발휘해야하는 당사자들은
    아이 남편 치닥거리하기 바빠서 그런 드라마 볼 시간 없어요

  4. E 2015.02.27 1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내리는게 즐겁죠?

  5. 조미영 2015.05.16 0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40대인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