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8세의 김희수 건양대 총장은 별명이 많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수시로 빵을 사줘서 ‘빵총장’으로 불리는가 하면, 곳곳의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직접 주워서 ‘담배꽁초 줍는 총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총장의 스킨십 덕분일까. 최근 성균관대학교 배상호 교수가 대학생 3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건양대는 지방대학 가운데 학생들의 자신감과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다시 8대 총장으로 연임하는 데 성공한 김희수 총장을 만나 그의 교육관, 그리고 88세에도 그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한 비법을 물었다.

 

한국의 대학과 교육이 위기라고 합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 대학들도 세계 대학에 비하면 경쟁력이 낮다고 하는데 지방대인 건양대는 어떤 경쟁력으로 승부합니까.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우선 총장부터 솔선수범 모범을 보이면 교수들이 따라하고 그런 진정성이 보이면 학생들도 절로 따라옵니다. 저는 교육이야말로 열정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설립하고 10년이 지난 2001년 직접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가르쳤으면 책임진다’는 자세로 임했어요. 대학의 역할은 학생을 가르쳐 졸업시키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취업, 즉 미래까지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교육시스템과 조직을 개편하며 열심히 움직여 왔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우리나라는 대학도 우후죽순 많이 늘었고 대학진학률도 너무 높습니다. 다들 대기업 취업을 원하지만 현실은 중소기업도 힘들죠. 대학을 상아탑,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지만 4년 내내 학생들을 공부시키고도 실업자를 만들면 그게 대학입니까. 대학교육이 잘못됐어요. 이건 제가 교수 출신이 아니라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2011년 전국 최초로 동기유발학기를 만들었어요. 명사 초청 강의도 듣고 자신의 적성도 파악해서,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 어떤 직업을 찾을지를 알도록 한 겁니다. 이 제도는 교육부 ACE사업의 대표적인 성과모델로 자리 잡아 100개에 가까운 대학에서 관련 내용을 벤치마킹하고 6개 대학에서 유사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죠. 또 전국 최초로 융합 전문 단과대학인 ‘창의융합대학’을 신설했는데, 4주를 1학기(연 10학기제)로 운영하는 집중교육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 학사제도의 틀을 완전히 깼죠.”

 


일부에서는 반값 등록금보다 대학이 반으로 줄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대학, 특히 지방대학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학은 가만 놔두면 저절로 구조조정이 됩니다. 2018년이면 인구 감소로 대학 신입생이 10만여명가량 줄어듭니다. 당연히 서울대나 명문대부터 가겠죠. 가뜩이나 대학 서열화가 심각한데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학교,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않는 학교는 절로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학생들이 선택할 겁니다.”

 

그런데 학교에 양치실은 왜 만들었습니까.
“저는 시간만 나면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문제가 있는 곳은 없는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살핍니다. 그러다 점심시간 후에 학생들이 화장실에 줄 서서 기다리면서 양치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안 그래도 복잡한 화장실에서 줄 서서 양치를 하는 게 불편할 것 같아 학생들과 상의해서 우선 논산캠퍼스를 시작으로 양치실을 만들었어요. 학생들이 무척 좋아하고, 볼 때마다 양치실이 있어 고맙다고 합니다. 제가 올해 88세인데 신입생들은 18~19세예요. 손주 나이죠. 자식보다 손주가 예쁘다는 말을 실감할 만큼 다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만나면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빵도 사줘서 우리 학생들은 제 얼굴을 다 압니다.”

 

안과 전문의로 ‘김안과’란 동양 최대의 전문병원까지 운영하는데 왜 논산에 학교를 만들었나요. 고향에 학교 만든 이들은 국회의원 등 정치에 진출하는 것이 기본 코스인데 정치도 안하시면서요.
“1979년 고향인 논산 양촌면의 한 중학교가 폐교될 처지에 이르자 지역주민들이 제게 인수해줄 것을 요청해왔습니다. 고민하다가 중학교를 부채와 함께 인수해 건물을 새로 짓고 운동장을 조성해서 1980년 중학교를, 83년엔 고등학교를 설립하게 됐죠. 막상 인수하고 보니 도저히 학생들을 교육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설이 낙후돼 있었습니다. 4000여평의 부지에 2층 건물 한 동뿐이었어요. 그래서 그 옆에 땅을 매입해 1만3000여평의 대지에 학교를 새로 지었습니다. 당시에는 고가였던 컬러TV를 시청각실에 설치하고 어학실, 도서관, 기숙사, 수세식 화장실, 테니스장 등을 꾸며 대전·충남 지역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췄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육 쪽에 눈을 뜨게 됐고 대학까지 설립하게 됐죠. 어떤 이들은 당시 그 돈으로 서울에 땅을 사서 학교를 지었으면 땅값도 훨씬 올랐고 지방대가 아니라 서울대가 되었을 텐데 아쉽지 않냐고 합디다만 지방 명문학교를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큽니다. 저는 일찍부터 지역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집중해서 우리 대학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정원의 60%를 대전·충남 소재 고교 졸업생에게 배정해 왔습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절대 하지 않던 일이죠. 지방 인재를 육성해서 지방 발전의 일꾼으로 만드는 겁니다. 지방대학의 성장과 발전은 곧 그 지역의 성장과도 직결됩니다. 제 나름의 애향심입니다.”

 


1962년에 만든 김안과도 동양 최대의 안과병원으로 성장했는데요.

“제가 처음 개원할 당시엔 서울시내의 경우 개업하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개업이 안 되던 때였습니다. 정부가 개업해도 괜찮은 지역을 정해주던 시절이었는데, 저는 영등포를 선택했죠. 신흥 인구밀집 지역이기도 했고 공장에 다니는 젊은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처음에는 환자가 없어서 전단지를 만들어 영등포는 물론이고 수원, 안양까지 쫓아다니며 담벼락에 직접 붙이고 다니면서 병원을 알렸는데, 3명으로 시작한 안과가 이제 동양 최대 규모가 되었으니 참 뿌듯합니다.”

 

성공 비결이 따로 있나요.
“김안과의 성공은 환자를 왕으로 알고, 고객만족의 병원 운영을 고민하고 실천한 결과라고 봅니다. 당시만 해도 모든 병원은 6시에 문을 닫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의사들도 대단한 권위의식을 가지고 병원운영을 했을 때였죠. 저는 ‘365일 언제든지 찾아가도 문이 열려 있는 안과’ ‘환자에게 자상하게 설명을 잘해 주는 안과’를 원칙으로 정했어요. 설립 초창기부터 365일 24시간 연중무휴 원칙을 세우고, 설날·추석 등 공휴일은 물론, 한밤중이나 새벽에라도 눈이 아픈 사람은 누구든 신속하게 진료받도록 했습니다. 환자들 머릿속에 ‘김안과에 가면 언제든지 치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놓았고, 그렇게 쌓아온 신뢰가 오늘의 김안과를 만들었죠.”

 

병원에 손님이 너무 많아 소매치기까지 생겨났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80년대 중반, 여름에 눈병이 크게 번져 하루 외래환자가 수천명에 달했을 때가 있었어요. 당시 병원 로비가 명절 때 서울역 대합실을 방불케 할 정도였어요. 그런 상황을 틈타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려 ‘소매치기 주의’ 안내문을 곳곳에 붙이기도 했습니다. 병원 초창기에는 점심을 거의 먹어보질 못했고 저녁도 마음 편히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밥 먹다가도 환자가 오면 수저 놓고 달려나가고, 환자가 기다는데 밥 먹고 온다 소리를 못해서 배고파도 참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물론 그때 참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신용카드가 없을 때라서 무조건 현금 아니면 외상이었죠. 매일 진료를 마치고 돈을 다 셀 수 없어서 은행 직원이 와서 돈을 세어서 바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덕분에 3명으로 시작한 김안과는 반백년의 세월 속에 50여명의 전문의를 포함해 300여명의 대식구가 근무하며 연간 외래환자는 40만명에 이릅니다. 2008년에는 세계 최초로 망막전문병원도 세웠고요.”

 


그럼 가족과 휴가나 여행도 못 갔을 텐데 후회되지 않습니까.
“후회되죠. 왜 가족여행은커녕 아이들 생일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까. 왜 일요일만이라도 쉬고 외식을 하거나 추억을 더 많이 만들지 못했을까란 후회를 이제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엔 정말 일하는 것이 즐거웠고 돈 벌어 집 사고 병원 키우고 남들이 은퇴할 63세에 대학까지 만들다 보니 중단 없는 전진만 해온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잘 참고 내조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일만 했으면 지칠 만도 한데 얼굴도, 몸도 참 젊고 건강해 보입니다.
“신체 나이를 측정해 보면 50대로 나옵니다. 내 치아 28개 모두 자연니예요. 안경 쓰고 시력이 1.2이며 청력도 말짱합니다. 술·담배를 일절 안 하고 하루 1만2000보 이상씩 걷는 것, 그렇게 규칙적이고 절제하는 생활이 비결이라면 비결일 겁니다. 대전에서 서울 등 다른 지방에 갈 때는 절대 자가용을 안 타고 기차나 버스를 활용합니다. 경로우대로 차비도 할인받고 많이 걸어서 일석이조죠. 또 스트레스를 잘 안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금방 잊습니다.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이를 악물고 익힌 습관입니다. 수시로 ‘잊자, 잊자’를 외칩니다. 기억력도 좋은 것 같아요. 결재 서류를 한 번 보면 내용을 다 외우고 교수들이나 직원들 이름도 외웁니다. 병원에서 간호사를 보고 ‘통 안보이던데’라고 했더니 ‘어머, 휴가 다녀왔어요’라며 깜짝 놀라더군요.”

 

88세 어르신의 하루 일상이 궁금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많이 걷는 습관은 이미 20년 정도 됐습니다. 매일 새벽 3시30분에 기상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10분 정도 걸어 새벽 4시에는 병원 응급실로 향합니다. 집이 대전 건양대병원 근처거든요. 병원 11층부터 지하 1층 전기실까지 구석구석 점검하고 당직의사와 간호사들을 격려하고 오전 10시쯤 대학으로 이동하여 강의실을 돌아봅니다. 이렇게 움직이면 오전에 7000보 이상 걷게 되고, 하루 종일 1만2000보는 거뜬히 걷게 됩니다. 이렇게 움직이며 계속 메모를 하죠. 전 메모광입니다. 언뜻 떠오른 생각도 적고, 구석구석 손볼 곳도 적고, 학교에서 만난 학생이나 교수들과의 이야기도 적고…. 적자생존, 즉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6시 퇴근해서 하루 동안 메모한 수첩을 정리하고 9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그런 수첩이 수백개가 넘어요.”

 

그렇게 너무 꼼꼼하게 챙기고 다 메모하고 기억하면 직원들이 싫어하지 않나요.
“싫어하겠죠. 칭찬보다는 지적을 더 많이 하니까요. 하지만 늦도록 시험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나 빵과 음료수도 사주고, 새벽에 퇴근하는 간호사들에게 용돈도 쥐어주니 제법 인기가 높습니다. ‘총장 오빠’라고 부르는 여학생도 있어요. 전 병원이건 학교에서건 현장주의자입니다. 현장을 가봐야 뭐가 문제인지를 알고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고 개선을 할 수 있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린 학생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습니까.
“목표가 같으면 나이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자신감을 갖고 공부해서, 인성과 실력을 갖춰 사회에 나가 성공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우리 학생들도 같은 목표를 갖고 있죠. 목표가 같으면 나이, 성별, 취향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목표를 향해 꾸준히 도전하는 동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의 고민이 제 고민이고 우리 학생의 꿈이 제 꿈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꿈 너머 꿈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평생 지켜온 인생 철학이 있습니까.
“가장 쉬운 말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기본에 충실하자’입니다. 사람의 기본은 ‘정직’, 성공의 기본은 ‘노력’, 병원의 기본은 ‘치료’, 학교의 기본은 ‘교육’입니다. 기본이 지켜지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죠. 기본을 지키지 않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학생들에게도 예절과 인성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그게 교육의 기본이어서입니다. 사람도 건물도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김희수 총장의 건강도 부러웠지만 ‘목표가 같으면 나이 차이는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같은 목표를 가지려면 서로 눈을 마주보고 소통을 해야 한다. 부모도, 선생님도, 정치인도 자녀나 학생들,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이들이 너무 드물다. 그게 기본인데….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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