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 교수(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를 보면 늘 ‘놀랍다’는 생각과 ‘부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중·고교 교사, 프로듀서, 대학교수, 방송사 사장, 다시 종편방송사 대PD를 거쳐 60세에 여섯 번째 직장을 다시 구한 그의 능력은 놀랍기만 하다.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거다. 40대같이 보이는 방부제 미모에 고교생부터 팔순 어르신까지 두루 인연을 맺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모습들. 그가 최근 환갑을 맞아 15권째의 책,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를 펴낸 건 놀라운 동시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모헌드레드(평균 100세를 사는 인간을 지칭하는 신조어) 시대에 가장 모범적으로 삶을 경작하는 주 교수를 만났다. 세월이 그를 피해가는 듯 해맑은 미소로 그는 그가 맺은 인연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가 경향신문에 ‘스타 PD가 는다’라는 기사를 통해 주철환 PD를 소개한 것이 1992년 6월입니다. 당시 함께 소개했던 프로듀서들은 현재 근황을 전혀 모르고, 주 PD가 만든 프로에 출연해 스타가 된 이들도 사라진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장수 비결이 뭡니까.
“제 이야기보다 올해 90세인 송해 선생의 장수 비결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의 본명은 송복희예요. 예명에 바다 해를 썼는데 바다처럼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 같아요. 코미디 전성기 시절의 <웃으면 복이 와요> 등의 프로에서도 송 선생은 구봉서, 곽규석, 배삼룡 선생 등에 가려져 있었지만 스타에 욕심을 내지 않고 바다처럼 넉넉하게 버티셨죠. 또 그 이름을 ‘Song해’로 읽으면 항상 노래하듯 사는 삶이기도 하고요. 저는 오래 사는 것보다 오래 사랑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제 정체성은 교육자와 프로듀서를 합친 것인데, 융복합이 이뤄졌기 때문에 오랜 시간 사랑을 받지 않나 싶어요. 학교 수업이건 프로그램이건 지루하지 않게, 항상 새로운 것을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학교와 방송의 일치점은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즐거운 삶을 살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자신이나 주변이 다 즐거워졌고, 덕분에 지금까지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MBC 프로듀서 시절에 너무 일찍 스타 PD가 되고, 칼럼도 쓰고 다른 활동도 많이 해서 시기와 질투를 받지는 않았나요.
“지금은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언론인들이 많지만 1980~90년대만 해도 폐쇄적이었죠. 그래서 ‘나댄다’, ‘튀려고 발버둥·몸부림친다’는 비난이나 비아냥을 많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좀 억울하긴 했지만 절대 화를 내거나 변명하지 않았어요. 본업에 충실하라는 선배나 동료에게 ‘설쳐서 송구해요. 원고료 받으면 밥 살게요’라고 애교를 부리는 전법을 썼습니다. 그럼 별로 미워하지도 않더군요.”

이번에 펴낸 책이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입니다. 다들 인맥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진정한 친구를 한 명 얻으려고 목숨을 걸기도 하지만 이 각박한 세상에 인연을 맺기가 어디 쉽습니까.
“인간관계는 밥을 산다고, 선물을 준다고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제 인생의 주조는 ‘다정다감’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알고, 뭘 바라기보다 배우려고 합니다. 제가 경향신문을 통해 기사 데뷔를 했는데, 제가 맡았던 <모여라 꿈동산>이라는 작품의 주제가를 썼기 때문이었어요. 그 노래 가사에 제 삶이 다 담겨 있답니다. ‘숲길을 돌아 구름을 타고 꿈동산에 왔어요/새들은 날아 꽃들은 피어 노래하는 꿈동산/하늘 아래 땅 위에 모두가 친구죠/아무라도 좋아요 꿈동산엔 담장이 없으니까요(중략).’ 저는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와도 친구가 됩니다. 친구는 제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이자,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행복이란 결국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줘야지’라고 생각할 때 찾아오고, 그러려면 행복을 나눠줄 사람, 즉 친구가 필요하거든요. 경쟁에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은 친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이 책을 통해 그들에게 좋은 친구를 사귀는 제 나름의 방법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좀 더 보충설명을 해주세요.
“친구를 사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비지심보다 측은지심’ ‘기브 앤드 테이크는 잊어라’ ‘상대가 원하는 거리 배려하기’ 등의 노하우를 이번 책에도 소개했습니다. 결국 친구를 만든다는 것은 ‘If I were you’(내가 너라면)를 얼마나 잘하는가에 달려 있어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는 노래는 친구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죠. 내가 너의 편에 설게. 언제? 시절이 거칠어졌을 때,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게 친구입니다.”

특히 부러운 것이 아들의 친구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겁니다. 5년 전인가 이화여대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때도 아들 친구들이 백댄서로 출연해 춤을 추더군요.
“맞습니다. 그게 제 가장 큰 재산이자 노후대책이에요.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들 친구들을 모아 저녁을 사주며 이렇게 말했어요. ‘너희들에게 친구의 아버지가 아닌 친구가 되고 싶다. 프로듀서이자 교수인 나와 친구가 되면 좋을 거야. 그리고 맛있는 것 많이 사줄게.’ 다행히 그 친구들과 우정(?)이 지속되고 있고, 외국에 가서도 계속 안부를 묻고 연락을 합니다. 또 그 친구들의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죠.”



아무리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발랄하게 살아도 나이를 느끼지 않습니까. 올해 환갑인데요.
“젊다는 것은 형용사이고 늙다는 동사입니다. 젊어 보여도 늙어 가죠. 저도 흰머리에 주름살 가득한 동창들을 만나면 제 나이를 자각합니다. 친구들은 제 거울이기도 하니까요. 아내도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은데 진짜 나이를 잊지 마’라고요. 저는 ‘착각 속에 살다가 착각하며 죽을 거야’라고 응답하죠. 젊어 보인다는 것은 20~30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숫자상의 나이와 간극이 큰 것을 말합니다.”

그런 감수성을 어떻게 유지합니까.
“의학용어로 비유하자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겁니다. 신진대사는 한자로 새 신, 늘어놓을 진, 대신할 대, 물러날 사로 이뤄졌죠. 즉 묵은 것은 차례로 가고 새 것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속의 똥, 오줌, 땀을 잘 내보내야 신진대사가 원활해지는 것처럼 영혼의 배설물도 잘 빼내서 새로운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신세대 음악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돌의 선정적 옷차림을 못마땅해 하지는 않습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어느 시점에 머물며 과거의 판단력으로 사람들이나 시대상에 대해 품평회를 하는 겁니다. ‘old man’, 즉 나이든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old map’, 곧 옛날에 만든 낡은 지도를 갖고 길을 찾으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신진대사만큼 동화작용도 필요하죠. 머물지 않고 늘 움직이며 새로운 세대에 스며드는 힘을 뜻합니다. 전 고교생과도 문자를 나눕니다. 가끔 어린애들에게 버르장머리 없다 등의 훈계를 하고 싶기도 하지만, 항상 그들의 입장에서 보려 합니다.”

스타 PD, 스타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 명강사 등 너무 맹활약하고 명성이 드높은데, 하산할 생각을 하면 두렵지 않습니까.
“당연히 어느 순간, 세상이 저를 잊을 때가 오겠죠. ‘잊으면 잊혀지리라’란 각오를 항상 하고 있습니다. 스타는 언제 어디서나 늘 반짝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반짝입니다. 스타보다는 등대가 되고 싶어요. 세상이 바뀌고 별은 사라져도 등대는 늘 지표가 되니까요.”



요즘 책을 보면 ‘버팀’을 강조한 책들이 많습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고 시련에 좌절하는 이들이 많아서겠지만요.
“고난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이니 너무 쉽게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너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려는 버팀은 싫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버팀으로써 그 자리에 올 새사람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빠질 때 빠지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사랑이나 열정, 혹은 가슴이 뛰는 일에는 풍덩 빠지라는 것이고, 자신이 빠져줘야 할 자리에서는 슬쩍 물러나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신문에 고정칼럼을 쓰지만 ‘수사학의 달인’이란 말을 들을 만큼 비유가 탁월합니다. 국문학 박사인 것은 알지만 ‘방송은 감탄고토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방송의 생리다’ ‘PD는 주전자가 있어야 한다. 주체성, 전문성, 자존감’ ‘PD에겐 3ㅅ, 3ㅊ이 필요하다. 상상력, 설득력, 순발력, 창의력, 추진력, 친화력’ 등 화제가 됐던 촌철살인의 표현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MBC에서 이화여대로 전직할 때의 고민을 PD연합회보에 쓴 칼럼 ‘이대로 갈까? 이대로 남을까’는 아주 인상적이었요. 어떤 이들은 ‘언어적 유희’라고도 합니다만, 이런 말들을 언제, 어떻게 만들어냅니까.
“평소 훈련이죠. 누군가 저를 규정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젊음, 국문학적 감수성, 음악을 꼽았더군요. 저는 끝없이 사물에서 단어를 유추하는 습관이 있어요.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가도 붙여놓은 유자 크랜베리 파운드 광고에 대해 생각합니다. 유자에 대한 지식과 추억, 회사 1층 빵집의 샌드위치가 크랜베리다 등등. TV도 중독된 상태로 보는데 시청률 낮은 프로그램도 재미있게 봐요.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토론에서 엉뚱한 리액션을 잡는 이유는 뭘까…. 평소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합니다. ‘외로움의 역에 오래 머물지 말고 그리움의 역으로 빨리 가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지독한 외로움이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봅니다.”

독서나 공부가 아니라 외로움이 상상력이나 창의력의 동인이라고요.
“네. 저는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가정에 무심했어요. 그래서 서울 고모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결핍이 창조의 원천이 된 거예요. 잡화상을 하던 고모님하고만 살았어요. 잡화상이니 신문지가 쌓여 있었고, 읽을 게 없으니 매일 신문을 읽었죠. 신문을 보며 세상을 읽었고, 영화포스터 등을 보며 상상력을 키운 겁니다. 고모님이 라디오를 많이 들어서, 저도 음악을 많이 들었죠. 살아 있는 대중음악의 역사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저는 그 시절을 저의 ‘신라시대’(신문과 라디오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그 신라시대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여러 가지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것, 그리고 그걸 풀 소통력이 있는 지도자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녀노소 누구와도 소통이 잘되는 주 교수께서 소통법을 소개한다면.
“우리 사회 소통의 위기는 ‘캐스팅의 비극’에 있습니다. 편가르기로 인재를 구분짓는 행태, 고정관념에 가로막힌 사고가 문제입니다. 리더의 잘못된 캐스팅 때문에 이 시대에 ‘벽’이 더 두꺼워집니다, 저는 그 해법을 ‘세종대왕의 지혜’에서 찾고 싶어요. 설득, 통찰, 역지사지의 미덕이 핵심입니다. 세종대왕의 설득력은 상대를 내편으로 만드는 힘입니다. 세종은 굉장히 전략적이어서 4년의 수렴청정을 견뎠고, 반대파를 포용했습니다. 정사에 균열을 만들지 않았죠. 설명이나 설교 대신 설득을 택한 덕입니다. 세종대왕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였어요. 이런 소통법을 리더들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25년 동안 봐왔지만 항상 행복한 모습입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 성격 순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고 남에게 친절하려는 것이 제 인생 모토입니다. 아무런 기대나 이해관계 없이 친절을 베푼 이들이 결국 제게 너무 많은 기쁨과 행복을 선물했습니다. 앞으로도 ‘친절한 철환씨’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친절한 철환씨’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은 것 같다. 그가 만든 방송 프로그램과 다양한 책, 칼럼을 보면서. 고민이 깊었을 때 만난 그가 “세상이 그대를 등져도 세월이 품어줄 것”이라는 말로 다독거려 주던 것도 생각난다. ‘친절한 철환씨’에게는 정말 샘조차 나지 않는다. 아무리 젊어 보여도.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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