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씨가 바쁘다.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을 맡아 회의에 참석하고, 기업 및 공공기관 등에서 특강도 한다. 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틈틈이 소설 작업도 한다.

경제학자이면서 소설가이고 한때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등 엉뚱한(?) 발언을 하기도 하는 그가 바쁜 것은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올해 칠순에 3년 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맹활약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무마다 새순이 돋는 봄날, 6개월 동안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한 그를 만났다.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인 그는 2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내내 강한 어조로 ‘도덕’을 강조했다.

보수혁신특별위원회는 회의를 그렇게 오래 한다는데, 성과가 좀 있었습니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성과가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가장 믿지 못하는 집단이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 아닙니까. 이 위원회의 본질과 목적은 특권 내려놓기에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혁신하려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많이 내려놓겠다고 합니다. 물론 기득권을 가지고 누린 이들의 반발이 커서 어렵긴 했죠. 그런 반발을 넘어 개혁하는 것이 혁신입니다. 그러려면 추진하는 이들도 도덕적 권위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원래 깨끗하거나, 우리도 다 내려놓겠다는 각오를 보여야죠. 새누리당에서는 4월 초 혁신안을 발표할 예정이고 야당과 협의해서 사안이 다듬어질 것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무엇인가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겸직 금지, 출판기념회 등등이 있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공천권이죠. 국민경선제, 즉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해서 공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야당에서 이 문제는 좀 머뭇거리던데, 새누리당에서는 야당과 별도로 4월 초 의원총회에서 확정하려고 합니다. 김문수 혁신위원장의 뚝심과 김무성 대표의 소신이 합쳐지면 진정한 혁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6개월간 일주일에 두 번씩 혁신위를 열었어요. 김문수 위원장이 굉장히 부지런해서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회의를 해요. 저 같은 병자도 사정 안 봐줍니다. 제가 죽을 뻔해서 그 다음부터는 자주 안 나갔어요.”


때늦은 질문이지만 소설가가 왜 정당의 보수혁신특별위원회에 참여했습니까.
“새정치민주연합이 비대위원장으로 이상돈·안경환 교수 같은 지식인들을 영입하려 한 것처럼 이 보수혁신위원회에도 ‘보수 지식인’인 제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정치는 너무 포퓰리즘이 강하고, 새누리당은 정체성이 모호해졌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 시장경제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커진 것 같아서 정체성부터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했습니다. 물론 김문수 위원장의 힘이 컸죠. 개인적으로 은인입니다.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제가 이끌던 ‘문화미래포럼’이 국군포로 조창호씨의 얘기를 담은 악극을 국립극장에 올렸어요. 칭찬은 많이 들었지만 재정적으로 곤궁했는데 경기지사이던 김 위원장이 공연을 보고 ‘나라가 할 일을 선생님이 하고 있다’며 경기도의 큰 극장에서 공연하게 해줬습니다. 그 덕에 적자를 메웠죠.”

정치인들과 소통은 잘됐습니까.
“목표가 뚜렷하니 소통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겉보기와 달리 정치는 참 어려운 일이고, 프로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때로는 때 묻은 프로가 고집만 부리는 아마추어보다 낫습니다. 최근 시민단체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들이 많은데, 한 가지 이슈에만 매달려 엉뚱한 주장만 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시민단체는 그들의 이익을 따지는 집단이 아닙니까. 그러니 편향된 이익에 함몰하게 됩니다. 규제혁파가 안 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정치는 주고받는 일, 즉 타협이 중요합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것을 선명한 것으로 스스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를 더러운 흙탕물이라고 하는데, 구정물을 만져봐야 개선이 됩니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란 별명을 가졌던 로베스피에르는 결국 단두대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우리 정치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시민과 대중의 목소리라고 주장하는 ‘포퓰리즘’입니다.”

왜 대중의 목소리나 요구가 포퓰리즘인가요.
“진정한 목소리인지, 몇몇 사람의 목소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원래 개혁은 정치인에게 표가 안 됩니다. 그래서 개혁에 한계가 있고 결국 포퓰리즘으로 흐르게 되는 겁니다. 포퓰리즘은 목소리 큰 기득권 세력만 이롭게 할 위험이 있어요. ‘김영란법’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다 알면서 국민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이런 기득권층이나 목소리가 큰 몇몇 사람이 이끄는 포퓰리즘은 사라져야 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 보수주의자입니다. 그런데 ‘보수’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보수정당을 강조하는 새누리당의 정책도 좌편향적인 것이 많던데요.
“보수하는 내용에 따라 보수주의도 각각 다릅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공산주의를 지키는 세력이 보수주의인 셈이죠. 저는 헌법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지키는 것이 보수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문제가 있거나 잘 안 지켜지면 대안세력으로서 진보가 부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면모를 보면 80%가 보수입니다. 과거엔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 등등이 보수야당과 혁신야당으로 나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진보가 없다고 봅니다. 다 뒤죽박죽 섞여 있어요. 우리 신문을 봐도 솔직히 보수언론이라고 하는 조중동이 이 정부를 맹공격하고 대통령을 자주 비난하지 않습니까. 저는 보수주의자라기보다 자유주의자입니다. 자유주의의 궁극의 지향은 생태계의 모든 존재와 공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유기체들은 모두 하나의 조상에서 갈라진 친척들입니다. 당연히 모든 생명체를 생태계의 구성원들로 여겨야 한다는 뜻이지요. 다른 생명체에게도 그들이 누려야 마땅한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다른 종들에 대해서 마음대로 할 힘을 가진 우리도 스스로 그런 제약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주의의 본질이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언제나 세상은 다사다난하고 유사 이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정말 요즘 한국은 정치·경제·사회 곳곳에 문제가 심각합니다. 복 선생님이 진단하는 ‘한국병’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도덕의 추락입니다. 사회는 법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성되어야 하는데 나라 곳곳에서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세월호를 보세요. 배의 안전을 맡은 선장, 청해진해운이란 큰 회사, 항만청과 해경 등 모든 과정마다 다 타락하고 부패하고 책임감이 없었기에 일어난 사고가 아닙니까. 우리나라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이 일은 궁극적으로는 도덕이 낮아져서 발생한 사고입니다. 도덕이 낮아지면 거래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이것저것 사서 카드빚을 지고는 갚을 노력은 하지 않고 탕감부터 요구하니 사회가 비효율적이 되는 겁니다. 서로 못 믿으니 확인하려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입니다. 대통령도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찾다 보니 인사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미국 대통령은 다들 믿을 만한 사람이니 반대 당의 인물도 기꺼이 기용합니다. 도덕 추락에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약이 없다면 주사라도 맞아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도덕의 중요성을 지도자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대통령 임기 5년에 도덕 회복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어려우니 다들 공항 건설, 외자 유치 등 가시적인 사업만 강조하지만, 도덕을 입에 물고 다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가장 간단한 일부터 시행하는 국민운동도 절실합니다. 우측통행을 하기로 했으면 우측으로 다니는 것은 행인으로서의 권리이자 일종의 재산권입니다. 그걸 안 지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죠. 자동차도 무단주차가 아주 극심합니다. 화재 현장에 소방차가 못 들어가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 일간지가 도덕과 공중질서 지키기를 시리즈로 기획했던데, 대통령이 한마디도 언급을 안 하더군요. 도덕은 평소 꾸준히 체화되어야 합니다. 김영란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군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금방 바뀝니다.”



경제학도이면서 소설가이고 삼성, LG 등 기업에서는 인공지능 강의까지 합니다. 본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요.
“저는 지식을 얻는 것이 목표인 사람, 지식 지도 제작자입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그것뿐입니다. 가장 천착하는 분야는 아까 말씀드린 도덕인데, 도덕이 생물학적으로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발전하는가입니다. 우리 사회는 상호적 이타주의가 기본입니다. ‘네가 잘하면 나도 도와줄게’란 생각으로 회사나 정부가 운영됩니다. 배신을 막는 것이 도덕이죠. 우리는 도덕심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걸 개발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폭력, 성범죄도 도덕심이 없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나 노동단체에서 여성인권을 외면하는 것도 도덕성의 결여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그런 단체들이 스스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직업은 ‘소설가’라고 밝히시던데요.
“평생 모은 지식 중 남에게 들려줄 가치가 있는 것을 모아서 장르를 안 가리고 글을 썼습니다. 논문, 책, 에세이, 소설, 시, 희곡, 전기 등등.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형태의 글을 쓴 유일한 작가일 겁니다.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쉽게 알릴 내용은 에세이로, 총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으면 소설로 썼습니다. 또 학술적 의미가 있는 책은 논문으로 발표했고요. 글을 쓰는 것이 제 소명이고,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열 가지 재주 가진 놈이 밥 굶는다’고 하셨는데 결국 돈은 별로 못 벌었습니다. 재주가 너무 많아 불행한 경우죠. 정치권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 현실정치를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는데, 정치까지 하면 재능의 분산이 너무 심할 것 같아 거절했습니다. 그 시간에 글을 썼죠. 정작 일은 많이 했는데 너무 이것저것 나뉘어져 이룬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3년 전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글을 쓰기 위해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특히 소설을 쓰는 것이 생명과 바꿀 가치가 있습니까.
“최인호씨 등이 항암치료를 받느라 체력을 잃어 결국 글을 못 썼습니다. 저는 항암치료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는 책을 한 권 더 쓰는 것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치유제가 글을 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지금 나이가 70인데 수술을 받아 더 연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흔히 소설가를 신의 경지를 엿보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신처럼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며 전지적 작가 시점의 글을 쓰니까요. 신의 미움을 받아서인지 소설가들은 장수하는 경우가 드물더군요. 백세시대라는데 소설가들은 유독 70 전후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그저 비타민C와 버섯음식을 먹는 게 체력 유지의 전부입니다.”

우리 나이로 칠순인데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인생칠십고래희’라고 살 만큼 살았습니다. 뇌가 굳어지면 마음도 말도 굳어지는 것 같아요. 소설은 총기나 순발력보다 경험이 더 중요하긴 합니다. 저는 아직 우리나라에 불모지인 과학소설을 쓰고 싶어요. 제가 70년 동안 구축한 지식의 체계를 집대성해서 모든 생물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개, 새, 식물 등이 모두 다른 유전자이지만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다른 종들도 다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알리고 싶습니다. 칠갑산 자락에서 태어난 촌 소년이 6·25 등 현대사의 사건을 다 겪으며 지식인이 된 것만으로도 참 자랑스럽습니다.”

복거일씨는 너무나 확신에 차서 조곤조곤 자신의 철학과 인생을 이야기했다. 말기암 환자라거나 칠순 노인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이번 4월 1일 만우절에 “여러분, 제가 말기암이란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토록 그의 삶을 타오르게 하는 문학, 지식이 새삼 숭고해 보였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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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w 2015.04.01 2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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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원섭 2015.04.21 1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평소 그렇게 생각해왔어요. 떳떳한 보수, 인간적인 보수여야, 우리 모두가 하나 같이 마음의 어깨동무가 가능할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