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꽃밭에 앉아 예쁜 꽃보며 끄적이면 되지만 드라마작가는 피고름으로 대본을 쓴다.”

과거 <인어아가씨>에서 극중 드라마작가였던 장서희의 입을 빌려 임성한 작가가 고백한 드라마작가의 고통입니다. 그런데 임 작가의 일일극 <압구정 백야>를 보면 피고름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노래방, 음식 이야기, 연이은 죽음 등 몇 가지 공식만으로 쓰여진 듯한 드라마에서 고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작품마다 막장드라마, 욕하며 보는 드라마를 거쳐 시청자를 우롱하는 드라마 등의 수식어를 얻어도 전혀 변함이 없는 확고한 소신과 강한 정신력은 인정합니다. 그래도 드라마작가라면 시청자들에게 주제나 사건의 개연성 등은 납득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매번 맘편히 봐야 할 일일극을 공포극으로 만드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제목에 등장하는 ‘압구정’도, ‘백야’도 드라마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방송사 예능국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라더니 방송 장면은 별로 없고 수시로 등장인물이 죽거나, 60대 어르신들이 가발을 쓰고 변장하며 불륜에 가까운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전작 <오로라 공주>에서는 “암세포도 생명”이라며 그토록 생명존중 사상을 설파하더니 교통사고, 깡패 폭행 등으로 이유없이 등장인물을 죽이는 장면을 보면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대한 애정이 암세포만도 못한 듯합니다.


또 대부분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백야’ 역을 맡은 박하나가 아니라 ‘육선지’ 역의 백옥담(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작가의 조카로 알려진 백옥담은 임 작가의 드라마에서 대부분 가장 이상적인 남성을 만나 해피엔딩을 맞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재벌가 며느리가 되어 친구들과 만날 때도 중전마마 복장으로 나가 위엄(?)을 보이고, 전래동화만 말해도 시부모에게 “우리가 며느리는 정말 잘 들였어”란 찬사를 받습니다. 물론 <대부>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도 친딸인 소피아를 자기 영화에 출연시키기도 했지만 작품마다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횡포가 아닐까요. 장관이나 기업 사장이 자기 친·인척을 고용해도 큰 문제가 되는데 말입니다.

임 작가와 작품을 했던 연기자들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정말 따뜻한 분” “배려심이 많은 분” 등의 찬사를 보내더군요. 그 따뜻함과 배려심을 작품과 극중 인물에 보여주면 안될까요. 시청자들이 <보고 또 보고> 등에서 느낀 인간애와 섬세함을 다시 찾아주기 바랍니다.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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