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기생충 권위자 칼 짐머는 기생충을 ‘다른 생물의 표면 위나 내부에서 살아가며 숙주의 고통을 양분 삼아 살아가는 유기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왜 이 설명을 보면서 회충, 편충 같은 벌레가 아니라 타인의 돈이나 수고를 양분으로 권력을 누리는 얼굴들이 떠오를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과 그 리스트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이즈음, 기생충학 박사인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를 만났다. 전공인 기생충학 관련 강의와 저술 외에도 경향신문 등에 정곡을 찌르는 시사칼럼을 쓰는 서 교수는 엉뚱하게도 “기생충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이들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컬트적인 지식인으로 불리는 서 교수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기생충을 변호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병적 현상들이 독서의 부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 13살 남자아이 몸에서 3.5m가 넘는 기생충이 나왔다는 뉴스가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아직도 우리 몸에 기생충이 그렇게 많은가요.
“기생충은 사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몸에 항상 있어 왔어요. 그 아이에게서 나온 기생충은 촌충입니다. 그동안 회충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해 회충들이 이제 박멸되니까 기생충이 없다고 생각하시는데 알게 모르게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몸 안에 있는데 회충처럼 아주 뚜렷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를 뿐이죠. ‘기생충’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회충은 전 세계에서 대략 12억명의 사람들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회충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왕과 신하들이 아파서 쓰러졌다는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죠. <동의보감>에는 기생충의 감염 증상이 자세하게 나와 있고, 성경에도 모세가 ‘메디나충’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치료하는 듯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어요. 다양한 역사 기록물을 뒤져보면, 기원전 1600년 중국과 이집트의 미라에서 회충의 알이 발견된 바 있답니다.”

보건학 전문가들은 한여름보다는 4~5월에 식중독 환자가 더 늘어나고 회를 먹으면 기생충에 감염이 되기 쉽다고 하던데요.
“한여름에는 다들 음식이 상할까봐 주의하지만 여름 직전에는 방심하기 때문이죠. 물론 날고기나 생선회를 먹으면 기생충만이 아니라 간디스토마균 등에 감염될 위험성은 있죠. 지난해 고래회충 파문이 일어나 회를 먹지 말라는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갑자기 환자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생선회를 안 먹을 이유도 없습니다. 기생충은 항상 우리 몸속에서 착하게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발견되었을 뿐이죠. 모든 질병의 원인을 기생충으로 몰아가는데 그런 오해들이 기생충 학자로서 참 안타깝습니다.”

독성분도 잘 쓰면 약이 되는데 기생충은 활용법이 없습니까.
“있죠. 암세포의 냄새를 맡는 기생충을 발견했어요. 다른 소변에는 반응을 안 보이는데 암환자 소변에는 달라붙어요. 1000원 정도의 기생충이면 암환자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장호르몬을 자극하는 기생충도 있고, 피 빨아 먹는 기생충도 있어 성장 촉진이나 혈액응고제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기생충이 사라지면서 각종 면역성 질환, 알레르기 증상이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기생충을 미워해 박멸하기보다 같이 공생하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옹호해도 기생충은 일단은 모양이 너무 혐오스럽고 이름도 살짝 불쾌합니다. 기생충의 장점도 있나요.
“장점이라기보다 우리 인간들이 기생충에게서 배울 미덕이 있습니다. 우선 기생충은 소식을 합니다. 그날 자신이 섭취할 것만 먹지 절대 과식하거나 며칠, 혹은 몇 년치 먹을 것을 쌓아두지 않습니다. 욕심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기생충들은 가느다란 몸매가 다 비슷비슷합니다. 반면 사람들은 얼마나 욕심이 많습니까.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하죠. 또 기생충은 각자 자신의 삶에만 충실합니다. 다른 기생충과 싸우지 않아요. 기생충을 잘 관찰하면 몸에 상처가 난 애들이 없어요. 물어뜯거나 싸우지 않았다는 증거죠. 편충, 촌충 등 종이 달라도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키가 작다고, 뚱뚱하다고 얼마나 비웃나요. 인종차별은 지독히 심하고 요즘 갑자기 화두가 된 여성혐오도 약자에 대한 공격의 일종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기생충은 조용한 평화주의자입니다. 비록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양분을 빼앗긴 하지만 조용히 살아서 대부분은 존재 여부도 모릅니다. 촌충의 경우 길이가 30m가 넘는 것도 있는데 가만히 붙어 있어 잘 몰라요. 또 부와 지식의 정도에 상관없이 기생충은 누구나 감염될 수 있으니 무척 평등합니다.(웃음) 이렇게 기생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세상에 무조건 나쁜 것은 없으며 꼭 흑백으로 나눌 수만은 없다는 것, 그리고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도 보여주죠. 욕심 없고, 동족을 안 괴롭히고 조용히 사는 기생충을 욕하기보다 반성해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평범한 외과, 내과 의사였다면 이토록 대중의 주목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기생충학을 전공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수업을 들으려고 강의실로 가는데 복도에서 기생충학 전공 교수님이 저를 붙잡고 ‘꼭 기생충학을 전공하라’고 권했습니다. 저를 인정해준 것 같아 무척 감격스러워 전공으로 정했죠. 알고 보니 지원자가 드물어 아무 학생에게나 한 말씀이셨더라고요. 하지만 공부할수록 흥미롭고 인간에게 필요한 학문인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해 펴낸 <기생충 열전>은 10쇄나 찍어 대중에게 기생충을 잘 알릴 수 있었습니다. 다른 기생충학자에 비해 제가 유명한 것은 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다른 학자들이 다 조용한 성격인 데다 저처럼 대중적 글을 안 쓰기 때문입니다.”



의사로서보다 경향신문의 칼럼이나 블로그 등으로 필명이 더 높습니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이 있나요.
“책을 많이 읽은 덕분입니다. 30세 이전에는 전공서적 외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어요. 독특한 철학의 소유자인 아버지가 제가 어릴 때부터 책을 읽거나 늦도록 공부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셨거든요. 그런데 서른 무렵에 첫 책을 내고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스스로 그 책을 사들여 절판을 시켰습니다. 그 무렵 강준만 교수의 책과 그분이 펴내는 잡지를 읽고 책읽기에 눈을 떠서 매달 4~5권은 책을 읽습니다. 많을 때는 10권도 읽고요. 닥치는 대로 독서를 하며 제 유전자의 재발견을 한 셈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타인에 대한 공감력과 상상력도 키우고 배려심도 배웁니다. 앨런 배넛이 쓴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뒤늦게 책읽기에 재미를 붙인 70세 영국 여왕이 점점 변하는 내용입니다. 여왕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다보니 현실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게 가능해졌고, 그들이 현재 상황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게 됐다는 내용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책을 많이 읽으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권력층들은 정말 책을 안 읽는 것 같아요. 책을 읽었다면 이렇게도 국민 마음을 모르고 배려심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요즘 남녀관계, 연애론에 관한 칼럼도 쓰던데 연애에도 책읽기가 붐이 됩니까.
“일단 책을 많이 읽으면 맞춤법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인터넷 외계어야 그렇다고 쳐도 ‘원래’를 ‘월래’라고 쓰는 등 맞춤법을 틀리게 쓰면 이성에게 너무 실망을 줍니다. 조리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책을 읽는다고 다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닐 텐데요.
“나름 글쓰기의 지옥훈련 기간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삐삐로 짧은 소설을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덕분에 방송 출연과 인터뷰를 당하기도 했죠. 2006년에 ‘알라딘 서재’란 곳을 통해 글을 쓰다 <경향신문>에도 발탁되었습니다. 부지런히 책을 읽고 욕먹을 각오하고 열심히 쓰는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전 한 10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날카로운 시사칼럼으로 어지간한 시사평론가보다 인기인데, 어떻게 하면 시사적 시각을 키웁니까.
“일단 신문을 꼼꼼하게 봐야 합니다. 한때는 4~ 5개의 일간지를 줄치며 정독을 했습니다. 요즘은 <경향신문>만 구독하는데요. 신문기사에서 글감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수첩에 주제나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합니다. 인터넷으로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제대로 된 현실을 알 수가 없고 바른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요. 정말 중요한 기사는 묻히고 ‘여군 성폭행’ ‘연예인 막말’ 등의 선정적 기사만 보게 됩니다. 종이신문을 하나하나 펼치면 그 가운데 글감이 수두룩하죠.”

그럼 인터넷 뉴스는 안 봅니까.
“보죠. 기사보다 댓글을 유심히 봅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내용도 보고 ‘공감’ 등에 누른 숫자를 보면서 민심이랄까, 네티즌심이랄까 대중의 생각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댓글을 읽으면 너무 슬프고 속상합니다. 특히 최근 세월호 1주년을 맞아 올라온 댓글을 보면 정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데도 이런 사람들과는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민을 갈까 하는 고민도 잠시 합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어떻게 이런 발언을 하는지, 또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그런 댓글을 달 수 있는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충격과 고통을 느낄 때가 많아요.”

요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악성 댓글을 많이 달까요. 다른 사람에게 ‘죽어라’고 하거나 무책임한 말을 던지는 이유가 뭘까요. 물론 요즘 분노심을 일으키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긴 합니다만.
“저는 사람들이 인터넷은 물론 스마트폰에 너무 중독되어서 인간으로서의 덕목을 너무 많이 잃어간다고 봅니다. 그렇게 분노할 일도 아닌데 스마트폰으로 검색되는 선정적 뉴스의 제목이 분노 호르몬을 자극하죠. 또 차근차근 생각하고 찾아볼 일도 스마트폰으로는 몇 초면 확인할 수 있고, 무엇보다 조용히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을 여유를 빼앗아 갑니다. 저는 15세 미만은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인간관계의 단절입니다. 연인끼리도 손잡기보다 각각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부모에게도 어버이날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어떤 학생은 이제 말을 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고 해요.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랍니다.”

의대 교수인데 외부 강의도 많고 방송에 많이 나와 연예인 같은 유명세를 누립니다. 혹시 매스컴 중독 증세는 아닐까요.(웃음)
“그런 오해도 받습니다. 하지만 4월 말까지 벌써 5편의 전공 논문을 썼답니다. 글을 잘 써서 프로젝트 제안서를 내면 다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제가 꺼릴 정도랍니다.(웃음) 하지만 여전히 강의를 하러 가도 제가 누구인지 몰라보는 담당자들이 ‘여기 참석자 명단에 사인하세요’라고 할 때는 더 얼굴을 알려야겠다는 분발심이 듭니다.”

그럼 더 방송에 자주 나올 예정입니까.
“아닙니다. 작년에 방송과 강의로 너무 바빠서 저녁이 있는 삶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올해는 글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책을 5권 쓰는 것이 목표랍니다. 10대를 위한 기생충 소설, 서평집, 모든 국민이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는 ‘칼럼을 잘 쓰는 법’, 산부인과 전문의와 함께 공저로 쓸 ‘여성들이 산부인과 쉽게 가기’ 등을 구상 중입니다. 알고 보니 글쓰기가 제 적성에 가장 잘 맞아요. 40대 후반에야 제 갈 길을 정했습니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의 평처럼 서민 교수는 ‘월세가 밀린 세입자’처럼 조용하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못생긴 외모와 소심한 성격으로 항상 남을 웃기고 인정받기를 갈망했다고 하는데 그 결실이 ‘웃기지만 진실한 글쓰기’는 아닐까.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한 질문이 있다. ‘기생충이야 구충제로 박멸된다고 하지만 기생충 같은 인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척결해야 합니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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