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대한민국은 불안과 비정상이 키워드인 것 같다.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아 늘 불안하고 요동치는 내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싶기도 하고 “도대체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란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그의 정신세계나 뇌구조가 궁금해 정신분석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 전문의 정도언 교수는 국내의 대표적 정신분석학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91년 미국 수면의학 전문의 자격과 2004년 3월 국제정신분석학회 공인 정신분석가 자격을 취득해 환자들의 정신분석 치료는 물론 전문가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국제정신분석학회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가 주도해 1910년 창설한 정신분석학의 메카다. <프로이트의 의자>라는 책을 펴냈던 정 교수가 이번에는 <프로이트의 레시피>란 책을 펴냈다. 정신분석학자의 레시피, 요리법은 대체 무엇일까.



왜 요리, 미각에 대한 책을 썼습니까.
“맛은 철학의 대상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음식을 씹어서 으깨면 크기와 모양이 각각 다른 네 가지 조각이 만들어져서 네 가지 다른 맛(단맛, 쓴맛, 짠맛, 신맛)을 기본적으로 내며, 복잡미묘한 맛은 조각들이 조합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19세기에야 맛을 전달하는 세포들이 혀에서 발견되면서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죠. 음식과 사람의 관계는 태어나자마자 시작됩니다. 엄마의 젖이 처음 내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바로 내가 세상과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시점입니다. 음식은 하루 세 끼 1년 365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접하는 나와 가장 가까운 대상이에요.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세상의 맛을 넓고 깊게 본다는 말이죠. 삶은 끊임없이 맛보는 과정인데 그 음식과 맛을 통해 무의식의 탐구, 의식의 발견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대상인 맛으로 관계를 읽어내려는 시도를 해봤습니다. 복잡한 일도 때로는 간단하게 읽어내면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왜 프로이트의 레시피인가요.
“프로이트는 사람의 성격 발달 단계를 나누어 설명하면서 첫 단계를 구순기라고 정의했죠. 생후 18개월 정도까지의 구순기에는 입술로 엄마 젖을 빨아 첫 미각을 느끼고 포만감을 느끼면 뱉거나 젖을 깨뭅니다. 입안에 있는 엄마의 젖을 삼키거나 뱉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몸을 기준으로 안과 밖을 구분하게 되죠. 같은 엄마의 젖도 배고플 때 빨리 물리는 젖은 좋은 젖, 제때 물리지 않는 젖은 나쁜 젖으로 나뉘는 것처럼 모든 음식도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약도 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이나 생리학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배경으로 했습니다.”

이 책에는 단맛, 쓴맛, 짠맛, 신맛 외에 매운맛에 관한 고찰과 분석이 있는데, 단맛에 관한 부분이 가장 짧습니다.
“정작 우리 인생에는 단맛이 별로 없습니다. 그게 삶의 실체예요. 사람들은 항상 내 인생에 단맛이 가득하기를 바라지만 그게 진실은 아닙니다. 타인에게도 단맛을 기대하니까 사탕발림 같은 가짜 단맛이 등장하죠. 우리는 어릴 때 잠깐 단맛을 맛봅니다. 그 후로는 신맛, 짠맛, 매운맛, 심지어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병맛’까지 별별 맛을 더 맛보게 됩니다.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쓴맛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 배우고 얻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단맛에 취해 개인도 불행하고 주변이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이들,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어릴 때부터 기꺼이 신맛, 매운맛 등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럼 각 맛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우선 단맛은 흡족하다, 사랑스럽다로 정의되고 기분이 좋거나 유쾌한 상태입니다. 단맛은 원초적이죠. 엄마의 젖과 사랑은 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맛에 집착하고 사랑하는 상대를 ‘sweet heart’, ‘honey’ 등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계속 단맛만 맛보면 지치고 지겹습니다. 쓴맛은 성장과 성숙을 뜻합니다. ‘괴롭다’, ‘비통하다’, ‘견디기 어렵다’, ‘쓰라리다’, ‘가증스럽다’ 등등의 뜻이 담겨 있죠. 하지만 성숙하지 않은 성장은 설익은 밥과 같습니다. 몸이 성장한다고 마음까지 성숙하는 것은 아닌데, 성숙하지 않은 상태로 성장하면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말죠. 성숙하려면 경험의 쓴맛을 봐야 합니다. 짠맛은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규정해봤어요. ‘노련하다’, ‘지독하다’, ‘인색하다’, ‘달갑지 않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죠. 인생의 교훈을 주고 지도하는 진정한 멘토는 짜야 합니다. 멘토는 멘티가 세상을 넓고 깊게 보도록 돕지만 자신의 방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신맛은 편식과 편견이 키워드입니다. ‘괴롭다’, ‘까다롭다’, ‘심술궂다’, ‘불쾌하다’ 등등의 이미지이죠. 편식은 몸을 해롭게 하고 편견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편식하는 음식은 입에 못 들어가지만 편견을 가진 생각은 가끔 입 밖으로 뛰쳐나오죠. 매운맛은 저항과 인내를 뜻합니다. 사납고 야무지고 인기가 있죠. 매운맛을 참아내려면 내가 나에게 저항해야 합니다. 참아내지 못하는 저항은 물거품이지만 인내로 승화되는 저항은 강을 이룹니다.”

각각 다른 맛을 담아내는 것은 결국 음식, 요리입니다.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을 지냈던 이영철 계원대 교수는 독일에서 백남준 선생의 귀신에 빙의되었다는 영매를 만났는데 그 영매가 ‘20세기 예술은 비디오가 화두였다면 21세기 예술은 음식이다’라고 했답니다. 음식이 주류를 이룬다기보다 음식과 요리의 기본, 즉 사랑으로 만들어 정성껏 나눠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그렇죠. 모든 것은 그런 사랑과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또 과거 우리는 음식을 생존의 도구로만 여겨 영양가만 따졌지만 이제는 누구와 먹는가, 어디에서 먹는가가 더 중요한 가치를 갖습니다. 제가 미국 등 서양에서 열리는 세미나나 학회에 가면 어디에나 음식이 가득합니다. 공부를 하거나 강의를 들으면 유난히 허기지는데 항상 커피, 주스, 빵, 과일 등이 푸짐해서 먹으면서 공부하고 회의하니 더 효과적이더군요. 그런데 요즘은 자칫 음식을 권력으로 휘두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먹을 것은 권력의 원천입니다. 남자가 여자와 만나 살게 된 이유도 일단 음식으로 풀면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같이 살면서 남자는 밖에서 고기를 구하고 여자는 안에서 채소를 길러 영양의 균형을 취하고, 여자는 요리를 해서 남편과 아이를 건강하게 살게 만듭니다. 이왕이면 영양가도 높고 맛있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려고 하죠. 그런 배려가 없으면 음식은 독이 됩니다. 술, 특히 폭탄주가 그렇죠. 폭탄주는 수입품입니다. 외국 항구나 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육체노동의 고통을 쉽고 싸게 잊으려고 만들어 마시던 술이에요. 넥타이 맨 신사들이 스코틀랜드산 최고급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들어 먹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겁니다. 남자들은 술이 없으면 절대 속 깊은 대화를 못 나눕니다. 폭탄주란 결국 침묵의 어색함을 견딜 수 없어 누군가가 만들어낸 술책이거나 주류회사의 상술일 겁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음식과 병은 어떤 관계입니까.
“우리가 감정적인 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몸안에 걸려 있으면 그게 화병이건 스트레스건 병이 됩니다. 그걸 꺼내서 잘게 쪼개 소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역할입니다. 감정은 분노, 우울, 불안, 분노, 좌절, 실망, 배신감 등 다양한데 그것을 잘 소화시키거나 제대로 뱉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먹는다-삼킨다-소화한다-뱉는다 등 음식의 섭취와 관련된 다양한 단어들을 일상이나 감정 표현으로 자주 씁니다. 욕을 먹는다, 울분을 삼킨다, 그 과제를 소화한다, 격정을 내뱉는다 등등…. 현대인들의 질병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의 감정적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걸러내지 못하는 거예요. 실제로 대인관계에서도 감정적 상태를 소화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일종의 노이로제 증세이지요. 음식으로 풀면 인간이 살아가는 길도 보이고 그 길에 어려움이 있어도 원인을 파악해 해결책도 보입니다. 이럴 때 다섯 가지 맛으로 분류하면 단순해지고 나와 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됐어, 괜찮아’ 등의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가 산다는 것은 뭘까를 맛을 통해 좀 자세히 보는 것을 도와주는 과정이 정신분석이지요. 인생엔 단맛만 있는 것도 아니고 쓴맛과 신맛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걸 느낄 때 불평하지 말고 배울 점을 찾아야 합니다. 또 옆에 있는 다른 인간들, 각자의 다른 맛도 인정해주자는 겁니다.”

하지만 단맛, 달콤한 인생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요.
“단맛은 금방 질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음식도 다섯 가지 맛이 조화를 이뤄야 하고, 각각 맛의 특징이 살아 있을 때 제 가치를 지닙니다. 쓴맛을 보고는 원망할 것이 아니라 왜 쓴맛의 음식이 여기에 있었을까, 왜 난 하필 쓴맛을 선택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럼 사소한 일에 불평을 할 이유도 줄고, 배우자나 상사를 원망하기 전에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짠맛을 맛본 후에 느끼는 단맛이 더 달콤합니다. 최근에 가장 문제가 많은 것이 지나친 자기애를 소유한 이들입니다. 예전엔 금기에 대한 지나친 저항인 히스테리 증세가 사회병리현상이었다면 최근에는 자기애착형 성격이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어릴 때부터 무조건 좋은 것만 먹이고, 요구를 다 들어주며 키운 아이들은 과잉 자기애가 넘쳐 수시로 페이스북·트위터·블로그 등으로 자기 물건이나 생활을 노출하려 하고, 조금이라도 짠맛이나 신맛이 느껴지는 상황을 못 견뎌 사회부적응 상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건 학교에서건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좌절과 고통을 맛보게 해줘야 합니다. 좌절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이 넘치는 사회는 더 큰 고통을 받게 되니까요.”

최근 또 심각한 문제가 악플이나 욕설인 듯합니다. 정치인의 막말, 연예인의 욕설 등에 인터넷에 넘쳐나는 악플까지 마치 대한민국이 욕한민국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자기애의 병적 현상입니다. ‘나는 훌륭해’, ‘나는 숭고해’, ‘난 깨끗해’란 착각을 하는 이들이 타인의 잘못이나 자신과 다름을 못 견디고 뱉어내는 것입니다. 미성숙의 대표적인 현상이죠. ‘저 사람이 나를 서운하게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를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욕하는 것은 나는 저 사람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데,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제대로 자신의 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무작정 뱉어내는 사회가 욕설나라를 만드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맛있는 사람, 맛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자신의 맛을 제대로 낼 줄 알고, 다른 맛을 인정하고, 각각의 맛과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음식과 같아요. 단맛은 화려하지만 오래가기 어렵고 금방 질립니다. 쓴맛이 나는 관계는 세월이 흘러야 가치를 알 수 있지만, 쓴맛 나는 음식을 뱉어내면 관계마저 해소됩니다. 짠맛 나는 관계는 오래가지만 장아찌처럼 많이 접할 수 없죠. 신맛 나는 관계는 잠시 상큼할 수 있지만 시어버린 음식처럼 정리해야 할 관계일 수 있습니다. 매운맛은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모든 사람마다 각자의 맛이 있고 모든 관계마다 교훈이 있습니다. 진리는 이처럼 단순하고 평범합니다.”

‘매운맛을 보여주마’, ‘짠돌이’, ‘싱거운 사람’, ‘국물도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관계’ 등등 우리나라는 유난히 음식이나 맛에 관한 표현이 많다. 그렇게 다채로운 맛과 표현을 가졌으면서도 각각의 맛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나와 다른 맛을 인정하지 못하며 갈등만 증폭시킨다. 이제 잠시라도 프로이트가 환자를 눕혔던 의자에 앉아 내 인생의 맛을 반추해보고, 어떤 맛이라도 달게 받아들일 포용력을 키우면 어떨까. 물론 여전히 세상에는 밥맛 없는 인간들이 가득하지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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