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만에 혼자서 울었다.

 

나이들어서 하품하면서도 눈물이 나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옛날 팝송에도 상황에도 대책없이 눈물이 흐르기는 하지만 가슴이 찡하면서 흘린 눈물은 아주 드문 일이다. 그건 친구가 보라고 권한 동영상 덕분이다. 알고보니 프루덴셜 보험회사에서 제작한 동영상이다.

 

영상의 시작은 해맑은 고등학생들의 얼굴로 시작한다. 어느 예술고등학교 교실, 수능 시험이 끝난 고 3학생들에게 수능이 끝난 고3 교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꿈’을 주제로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살 날이 1년밖에 안 남았다면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과 ‘5억 원’ 중 무엇을 선택하겠나요?”


첫번째 질문에 아이들은 유쾌한 표정으로 “롤스로이스를 타고 싶다.” “만수르와 결혼하고 싶다” 등의 천진한 답을 말한다.


두번째 질문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 “당연히 꿈을 이루겠다. 내 꿈을 이루는데 5억원이란 돈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답한다. 다들 ‘꿈’을 선택했다.


그 순간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1년밖에 못 산다는데 5억원이란 돈이 무슨 상관이야.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도 가고, 그동안 보고 싶었지만 정작 소식조차 안 전했던 친구들도 만나 보고, 영화나 책도 보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어봐야지.”   







그런데 자신들의 꿈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동영상을 틀어준다. 영상 속의 주인공은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화면으로 자신의 아버지들을 본 아이들은 놀라움과 어색함, 부끄러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미소를 지으며 대체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했다.   


영상 속 아버지들도 선생님으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아버지들의 대답은 아이들과 달랐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꿈이 아니라 5억원이란 돈을 선택했다. 그 돈으로 남은 여생을 펑펑 쓰며 꿈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 아내 등 가족에게 남겨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듯 이렇게 답했다.


저는 아버지, 가장이니까요....”


그 말을 할 때 아버지, 가장인 그들의 표정은 ‘가장’답게 의연하면서도 왠지 서글펐다. 너무 ‘가장’의 역할과 무게감을 받아들이면서도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러고보니 이 동영상의 제목이 <가장, 지키고 싶은 꿈> 이다. 난 그걸 ‘가장 지키고 싶은 꿈’으로 착각했다.

자기의 꿈조차도 벅찬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꿈이 무슨 관심이 있었으랴. 또 ‘가장’의 무게감을 그 나이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50대 중반인 나 역시 내 남편이나 아버지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한 적도 없고, 가장의 무게감보다 항상 나의 고통이나 아픔만 더 억울해했다.

 

사실 진정한 꿈은 나이들어서 이뤄야하지 않을까. 10대, 20대 가슴뛰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그건 그들의 요망사항이거나 착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예인이 돈 많이 벌고 스폿라이트를 받으니 노래 좀 부른다고 가수의 꿈을 꾸고,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장이라며 5, 6년을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는 것은 진정한 꿈이 아니다.

그 말을 할 때 아버지, 가장인 그들의 표정은 ‘가장’답게 의연하면서도 왠지 서글펐다. 너무 ‘가장’의 역할과 무게감을 받아들이면서도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아버지의 그 말, 꿈조차도 못꾸는 아버지의 슬픈 표정을 본 아이들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여학생들은 울기도 했다. 그들도 알았을까. 아버지도 전직(?) 어린이였고 청춘이었다는 것을...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칠순 중반의 노인이 된 주인공 윤덕수(황정민 분)가 아내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내 꿈이 뭔줄 아나? 저렇게 큰 배를 타는 선장이 되고 싶었다.”

아련한 눈빛으로 바다에 뜬 배를 보며 말하는 그에게 부인이 “왜 꿈을 안 이뤘냐”고 묻자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듯 말한다.


“난 가장이잖아.”


자기의 꿈조차도 벅찬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꿈이 무슨 관심이 있었으랴. 또 ‘가장’의 무게감을 그 나이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50대 중반이 나 역시 남편이나 아버지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한 적도 없고, 가장의 무게감보다 항상 나의 고통이나 아픔만 더 억울해했다. 아버지는 항상 군림하며 권력을 누리는 것으로만 여겼고, 당연히 돈벌어 가족 부양하는 것이 의무란 생각만 해왔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장이란 무거운 코트 속에 감춘 그들의 꿈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꿈’이란 단어를 제대로 한 번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과거엔 20-30-20의 과정을 밟는 것이 우리 인생의 수순이었다. 7,8세에 학교에 들어가 20년 정도 공부하고 취직해 30년 정도 직장생활 하다가 은퇴한 후 그 퇴직금이나 약간의 돈으로 20여년 정도의 노후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제는 100세 시대. 그것도 30-20-40의 과정을 보내야 한다. 대학에 가서도 휴학, 교환학생, 군대 등등으로 30세 초반이 되어야 겨우 직장을 찾는다. 면접시험에서도 ‘이 직장에 뼈를 묻겠다’란 말을 했다간 큰 일난다. 요즘은 10년만 버텨도 엄청난 일이다. 아무리 정년이 60세로 늘어났어도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으로 50세 초중반에 직장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남은 삶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도 “우리는 매일 매스컴에서도 고령화가 어떻다, 100세 시대가 온다고 떠들지만 정작 100세 인생의 로드맵을 그리거나 경제적 육체적인 준비를 하는 이들은 드물다”고 걱정했다. OECD 가입국, 복지국가가 되었다고 나라에서 전국민의 안녕한 노후를 책임지지 못하는데 말이다.

 

사실 진정한 꿈은 나이들어서 이뤄야하지 않을까. 10대, 20대 가슴뛰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그건 그들의 요망사항이거나 착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예인이 돈 많이 벌고 스폿라이트를 받으니 노래 좀 부른다고 가수의 꿈을 꾸고,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장이라며 5 6년을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는 것은 진정한 꿈이 아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 가슴이 찌르르 해질민큼 절실한 것, 그 단어만 들어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이 진실한 꿈이 아닐까.


나도 어린 시절에 만화나 그림을 잘 그려 미대 진학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피카소같은 천재성도 없고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미술 공부에 너무 사교육비나 교재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아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해 기자가 됐다. 또 결혼 후, 남편의 사업실패 등으로 본의 아니게 ‘아줌마 가장’이 되어 물질적 사치는 커녕 느긋한 혼자만의 여행이나 내 취미활동에도 투자할 엄두를 못냈다. 다른 친구들은 골프도 배우고 동창들끼리 해외여행도 갔지만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정년을 앞둔 지금도 사실 앞으로 닥칠 내 딸의 결혼이며 변변한 연금도 없는 남편의 존재감이 내 어깨를 누른다.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 내 꿈을 이룰 때가 아닐까.

 

나이들어서 그 꿈을 이루려면 건강, 돈,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몸을 움직여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건강,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돈, ‘내가 아껴야 한푼이라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란 정신적 궁핍감이 없어야 한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내 꿈의 문을 두드려보는 용기가 필요할 때다. 


좀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난 알토란같은 내 노후의 꿈을 위해 저축도 하고, 보험도 들어야겠다. 그래서 20년후에는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이젤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할머니의 사랑을 담은 만화책도 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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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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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이올렛 2015.05.29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젤 앞에 앉아 그림 그리는 모습^^제 꿈이기도 했어요 ㅠ.ㅠ 저도 요즘 저를 무능한 가장으로 느끼고 있었어요, 주부로 엄마로서의 역할과 도리에서 너무 부족하여서 서글프거든요.....외롭기도 하고 ...그래도 또 살아가봐야죠

  2. 은송 2015.09.19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의 무거운 짐을 나이 들어가며 쬐끔씩 내련놓는 연습을 아주 열심히 하면서 이젠 남편으로서의 꿈을 꾸며 젊어서 못다한 사랑놀이를 열심히 합니다. 그러면 내 꿈은 언제나 꾸는 것인가? 젊을때와 다르게 아내의 눈 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실천합니다. 80 내 생일에 친구들과 자식들 앞에서 아!목동아 클래멘타인을 연주하는 피아노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서 틈틈히 혼자서 궁리하며 연습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