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텔레비전을 보며 “이 조그만 상자에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갔지?”라며 마냥 신기했습니다. <수사반장>이란 드라마가 한창 인기일 때는 형사 역을 맡았던 최불암씨에게 “내게 사기를 친 범인을 잡아달라”고 방송국까지 찾아와 부탁하는 이들이 많았답니다. 그만큼 방송 프로그램은 매일 안방을 찾아와 우리 일상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면서도 우리 생활과는 전혀 동떨어진 신비한 영역이었습니다.

요즘은 시청자들도 방송 드라마나 예능프로가 어떤 환경에서 제작되는지 잘 압니다. “편집을 잘했다” “저것도 협찬상품이겠군” “아무개가 캐릭터를 잘 잡았네”라며 매의 눈으로 분석을 하고 방송 관계자처럼 속속들이 제작 과정을 잘 압니다. 거의 모든 시청자들이 프로듀서 수준입니다.


프로듀서들의 애환을 그린 KBS 새 드라마 <프로듀사>는 드라마인데도 시트콤이나 리얼버라이어티 같습니다. <1박2일> <뮤직뱅크> 같은 실제 프로그램의 실명을 딴 작품의 프로듀서들로 분한 연기자들이 시청률 하락으로 울상 짓고 KBS를 떠나 이 드라마와 동시간에 <삼시세끼>를 담당한 나영석 PD를 불러오자는 제안을 합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팀에서 얻어왔다며 협찬상품인 기저귀를 집에 가져가는 PD도 있고 진짜 KBS PD들이 즐겨가는 식당 이름까지 그대로 차용합니다. 차태현·공효진 등 PD로 분한 연기자들도 너무 평소의 모습이라 더 리얼리티 프로그램 같은데 혼자 진지하게 정극 연기를 하는 김수현(사진)은 오히려 전혀 다른 캐릭터로 완벽한 변신을 해서 재미를 줍니다.

트렌디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서울법대 출신의 아들이 프로듀서가 되자 굳이 ‘프로듀사’라 부르며 의사, 검사처럼 ‘사’자를 붙이는 김수현의 아버지에게서 기성세대의 모습을 보고, 엘리트 전문직임에도 아이돌 스타나 원로배우에게 절절매는 ‘을’의 모습에 뜻밖의 안도감(?)을 느낍니다. 어느 직장이나 눈치 없는 신입사원이나 후배들을 수시로 겁주는 상사들이 있다는 것, 아니 공영방송 프로듀서도 결국 ‘미생’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NBC 방송국 쇼프로 제작 스태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며 언론, 대기업, 정부, 인종차별 등도 기꺼이 비꼬는 <서티록>처럼 <프로듀사>가 방송가 뒷이야기나 연애담만이 아니라 웃음 속에 풍자와 비판도 담아주기를 기대합니다. 알고 보면 프로듀서는 피로주사, 피곤해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쌍한 이들인데 말입니다.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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