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모, 특히 피부가 권력인 시대가 됐다. 여성들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명품 옷이나 시계 등 액세서리로는 부족해 대부분 화장품을 바르고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찾는다. 지난해 국내 화장품 생산실적은 8조9000억원 정도로 해마다 10% 이상 증가하고 있고, 해외 유명 화장품 회사가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시장도 중국과 더불어 한국이다. 왜 세월호나 메르스 등 국가적 재난상황에서도 화장품 매장, 피부·성형외과 병원은 성업 중일까. 최근 <피부에 헛돈 쓰지 마라>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을 펴낸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씨를 만났다. 그는 1994년 국내 최초의 합동 에스테틱 전문병원 ‘이지함 피부과’를 만들어 피부과 전성시대를 열었고, 최근까지 <자기야>란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사위’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지난해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 탓에 방송에서 하차하는 등 ‘문제적 의사’로 불린다. 무엇보다 정말로 피부에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지 궁금해 그를 만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정말 화장품이나 피부과 등을 가지 않고, 돈을 전혀 안 써도 피부에 문제가 없을까요.
 “전혀 안 드는 것은 아닙니다. 자외선 차단제와 보습크림 정도는 발라야 합니다. 아름다움이나 노화방지 차원보다는 피부암 등 다른 문제를 안 일으키니까요. 자외선 차단제도 남성의 경우에는 1년에 몇만원 정도만 투자하면 될 겁니다. 그밖에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이나 시술은 투자 대비 효과가 없다는 뜻입니다.”

한국인들의 피부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뭘까요.

“돈으로 멋진 피부와 건강을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피부는 타고납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돈을 들이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좋은 피부는 타고나는 유전자로 결정됩니다. 문제가 있는 피부로 태어난 경우라면 완벽하게 좋은 피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물론 아주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개선은 되지만 최고의 피부가 되기는 불가능합니다. 얼굴에 잡티가 생겨 찾아온 중년의 환자에게 ‘그 나이에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라고 말씀드려도 ‘치료를 해서 젊은이처럼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피부를 상·중·하로 나누면 ‘상’ 그룹에 속하는 편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다들 극상의 피부를 원합니다. 고현정씨 등 피부가 아름다운 연예인이 쓰는 화장품이나 단골 피부과를 궁금해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피부가 아름다워서 연예인으로 뽑힌 경우입니다. 또 항상 메이크업을 받고 연기활동을 안 할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그런 피부가 가능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죠. 건강도 타고나는 체질이 중요하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면 됩니다. 그런데 잘 안 자고 운동도 안 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급격히 하락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건강보조제나 약을 먹는데, 이래서는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또 취미로 운동을 하는 보통사람들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체력과 체격, 능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욕심부리지 말고, 엉뚱한 데 돈 쓰지 말고 자신을 받아들이며 기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도 요즘 ‘유전미모, 무전노화’라는 말이 있을 만큼 고가의 화장품이나 시술 등에 돈을 투자한 이들은 팽팽한 피부를 자랑합니다. 플라시보 효과일 수 있겠지만 고가의 화장품을 바르면 왠지 피부가 더 촉촉하고 화사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비누도 유기농이다 바이오다 각종 기능성 제품이 등장해 몇만원짜리까지 나왔더군요.

“모두 상술에 현혹된 결과입니다. 피부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피부는 흡수기관이 아니라 방어기관입니다. 이 사실을 몰라 화장품을 바르면 화장품 성분이 피부에 흡수가 돼서 피부가 좋아질 거라고 착각하죠. 피부세포는 성숙한 다음 수명을 다하면서 각질세포가 되는데, 이것이 피부보호막으로 큰 역할을 합니다. 피부 맨 바깥쪽 표피는 휴전선, 표피의 각질층은 철책선이에요. 피부에도 각질이 없으면 당장 만질 때 부드럽고 좋지만 유해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쉽게 침투하게 됩니다. 때밀이 수건이나 각질 제거 제품으로 너무 자주 피부의 각질을 제거하면 오히려 피부병이 생깁니다.”


이미지 시대여서인지 남성들도 요즘은 꽃미남, 꽃중년 등 미모가 대세인 시대가 됐습니다. 연예인만이 아니라 대통령들도 성형수술을 하고, 정치인들 가운데 모발이식 수술을 한 이들도 많더군요.

“우선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기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성형수술 등으로 잡아당겨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이 아름다운 얼굴일까요. 얼마전 CNN의 기사를 보니 ‘아름다운 얼굴’에 오드리 헵번과 폴 뉴먼을 뽑았더군요. 다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얼굴이지만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어린이 구호사업에 앞장섰던 오드리 헵번이나 영화와 취미활동 등으로 풍요로운 노년을 보낸 폴 뉴먼이 성형시술로 주름살을 제거한 다른 할리우드 스타들보다 아름답지 않은가요. 성격과 업적은 평가하기 어렵지만 IT분야에서도 스티브 잡스보다는 빌 게이츠의 얼굴이 더 편안하고 멋져 보입니다. 화장품의 원가는 정말 놀랍게 싸고, 비누도 세정력이 중요해서 개당 1000원 정도짜리만 써도 충분히 피부 노폐물을 씻어내고 피부에 쌓인 피지나 화장품 성분에 남아 있는 기름기를 제거해줍니다. 물론 고가품을 써서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가격 대비 효과를 생각하면 분명 과소비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굳이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만 화장품에 큰돈을 못 들인다고 해서 자괴감이나 불안감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저렴한 제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피부가 나빠질 일은 전혀 없습니다. 또 주름살 제거수술을 해도 피부는 계속 노화합니다. 몇 년에 한 번씩 계속 거액을 들여 피부를 당기다보면 돈도 돈이지만 자연스러운 표정을 잃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오해 혹은 아름다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헛돈을 쓰게 하고 자존감까지 잃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그럼 돈은 많이 안 들면서 합리적으로 젊어지는 방법은 뭔지요.
“간단합니다. 수면·식사·스트레스 세 가지만 관리하면 됩니다. 잠을 푹 자고, 세 끼 식사를 제시간에 정량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 꼭 운동하세요. 헬스클럽에 가거나 골프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계단을 오르거나 등산을 하거나 회사 근처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좋습니다. 단 야외활동을 할 때는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바르세요. 너무 간단한 말이어서 다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잔소리처럼 여기죠.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여드름 등 피부에 문제가 생긴 사람에게 ‘일찍 잠자리에 들고, 잠을 충분히 자고, 제때 식사하라’고 하면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일찍 잘 수가 없다’며 약을 요구합니다. 피부건 내장기관이건 병을 앓으면서 일 때문에 바빠 병원을 안 가거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도 거르면서 어떻게 건강한 삶을 유지합니까.“

 함 선생은 55세인데 피부가 탱탱하고 젊어 보입니다. 화장품을 전혀 안 쓰고 시술도 안 받았나요.
 “들으면 화내실지 모르지만 앞에서 강조했듯 피부는 타고나는 겁니다. 저는 화장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지만 보습크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게 전부입니다. 저는 대개 밤 10시 정도에 잠들어 숙면을 취한 후 새벽에 일어나 등산을 갑니다. 자주는 안 마시지만 술도 좋아하죠. 건강한 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면 이 정도의 피부를 가질 수 있습니다.”


1994년에 이화여대 부근에 이지함 피부과를 만들어 화제가 됐죠. 당시 드문 미용·피부관리의 선구자인데, 화장품이나 피부과에 돈을 쓰지 말라고 하니 좀 모순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제대로 된 피부치료를 강조했습니다. 연세대 동문 3명이 모여 각자의 성을 따서 만든 병원인데, 보통 피부과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 보험환자들-무좀이라거나 간지러움증 등의 환자도 당번을 정해 진료했습니다. 물론 레이저나 보톡스 등도 시술해 돈도 엄청 벌었습니다. 덕분에 19평에서 시작한 집을 점점 늘려 지금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삽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일요일까지 진료를 했고, 요즘은 거의 없지만 한창 방송을 할 때도 항상 진료시간 이후이거나 휴일에만 했습니다. 본업은 피부과 의사니까요.”


<월간조선> 인터뷰 때문에 방송국에서 신인상까지 받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병원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홍역까지 치렀는데요. 특히 공인이 인터뷰를 통해 그런 말을 했다는 비난이 드셌습니다.


“저는 공인이 아닙니다. 나라의 녹을 한 푼도 받은 적이 없고, 국가나 정부와 관련한 공적인 책임을 질 일을 맡은 적이 없고, 공적 권력도 행사한 적이 습니다. 그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일 뿐이죠. 그 인터뷰도 표현에 문제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제 생각을 말했을 뿐입니다. 저는 국만의 4대 의무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도 좋지만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면 공화국이 아니라 독재면 어떠냐, 그래서 국민을 풍요롭게 살게 해주면 안 되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들과 대화하다가 제 오류를 깨달았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면, 그 어떤 위대한 영도자나 리더라고 해도 그것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국민 사위’로까지 불리며 인기를 얻던 프로에서 퇴출당할 때 억울한 생각이 들지는 않던가요.

“제가 연예인이면 속상하거나 억울하겠지만 전 의사이니 방송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다른 프로에서도 잘린 경험이 많은 걸요. 대부분 제가 작가나 제작진의 태도를 지적해서였고요.”


피부과 의사이면서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데 직접 정치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지금까지는 없습니다. 정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데, 저는 다른 할 일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저와 잘 안 맞는 영역인 것 같고요. 아내는 제가 항상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니 정치를 하면 잘할 것 같다고 합니다만, 저는 근본적으로 의사이고 장사꾼 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장사꾼이 나쁩니까.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성실한 국민입니다.”


하지만 정치 이슈를 다루는 토크 프로에 나와서 정치적 발언도 했던데요.

“그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답답해서 한 말이죠.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공부했고, 19평 아파트에서 시작해 강남에 집과 건물을 갖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면 미래가 밝다는 희망을 갖고 살았고, 그게 가능했죠. 그런데 요즘 청년들이 어떻게 자기 월급만으로 자기 집을 금방 마련합니까. 아니 취업부터가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지금 정부의 교육관과 교육환경, 부모들의 마인드로는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하더군요. 그런데 방송프로그램 외에는 해외여행도 거의 안 가고, 등산 외에는 별로 취미도 없어 보이는데, 사는 게 재미있습니까. 항상 웃는 얼굴이긴 합니다만….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하고, 의사가 된 후에는 성실하게 진료하고, 제안이 들어오면 방송도 하고,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을 읽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등산 가는 제 생활에 저는 만족합니다. 해외여행도 좋고, 명품으로 제 몸을 휘감는 것보다는 매일 산에 오르면서 느끼는 행복감, 환자들에게 친절하지는 않아도 성실하게 치료해주는 과정 등이 좋습니다. 전 희로애락에서 희보다 낙을 좋아합니다. 크게 기뻐하기보다 잔잔하게 즐거운 상태가 좋습니다. 제가 저를 위해 사치하는 것은 등산복 정도를 구입하는 것이지만,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먹을 정도의 돈이 있으니 전 충분히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부자라고 말하는 함익병씨의 차는 10년 된 국산 중형차다. 아이들의 교육비나 등산에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그가 자동차, 옷이나 시계 등에는 전혀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신기했다. 또 덕분에 고가의 화장품이나 시술에 살짝 흔들렸던 마음이 바뀌었다. 맛있는 음식은 피부에 양보하지 말고 직접 먹어야겠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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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윤자 2015.08.17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 백배 정말 좋아요^^*

  2. 안미옥 2015.09.17 1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