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암, 간암, 폐암에 이어 최근 발생한 급성심근경색. 외식업계 대표 아이콘에서 추락, 몇 차례의 부도와 파산. 무엇보다 68세라는 나이…. 다른 사람이라면 기구한 고난에 신을 원망하거나 혹은 살얼음을 걷듯 조용히 삶을 마무리할 텐데 성신제씨는 달랐다. 34세에 피자헛을 국내에 들여와 돌풍을 일으켰던 나이의 두 배인 지금, 다시 대한민국 외식업계에 혁명을 일으키겠다며 컵케이크 전문회사를 만들고 인생 2막을 시작했으며,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달콤한 모험>이라는 책까지 펴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형형한 눈빛을 빛내는 성신제씨를 그의 인생 2막의 무대인 강남역 부근 ‘지지스 컵케이크’ 매장에서 만났다.


제가 기억하는 성신제 대표와의 만남은 모두 드라마틱합니다. ‘피자헛’으로 승승장구할 때 만났고, 4~5년 전 경향신문사 구내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드실 때 인사를 나누었죠. 명암이 너무 강해 기억에 남는데, 다시 ‘신화’를 쓰는군요. 대체 그런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결국은 제 아버지의 힘입니다. 아버지는 일찍 사업에 망해 우리 가족은 항상 궁핍하게 살았습니다. 중학시절에는 두 번이나 등교 정지를 당했어요. 제때 수업료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등록금 등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습니다. 나약한 정신으로는 학교조차 못 다닐 형편이었으니까요. 청년의 방황? 생존문제라 방황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했고, 어떻게든 성공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죠. 매사가 처절해서 어떤 고난이 와도 다시 일어설 용기와 정신력이 있습니다.”





부도나 파산 등 돈문제도 그렇지만 60대에 하나도 아니고 암을 세 가지나 앓는데도 재기의 의지가 가능합니까.
 
“2011년 5월이었어요. 치질 수술을 받으러 병상에 엎드려서 천진난만하게 ‘선생님, 제 거기가 잘생겼나요? 평생 제 눈으로 본 적이 없어 궁금해서요’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의사도 ‘네 잘생겼습니다’라고 말하며 웃으면서 수술을 하더니 마지막에 ‘좀 더 큰 병원을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른 병원을 가서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직장암 3기입니다. 수술 안 하면 6개월 정도 살 수 있습니다’라고 너무 간결하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간암도 2기군요’라고 덧붙였어요. 직장암 선고에도 의연하던 집사람이 간암이란 말에 생전 처음 보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폐암도 있고…. 망할 놈의 암, 항암치료가 참 아파요. 통증을 이겨낼 뭔가가 필요해 컴퓨터 키보드 앞에 앉아 띄엄띄엄 글도 쓰고 페이스북 등에도 심경을 밝히고 그랬죠. 올해 5월에는 막 지지스 컵케이크 사업에 열중하는데 아내와 같이 나선 출근길에 속이 안 좋아서 한의원을 가보니 침을 놓아주며 ‘계속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답답하면 심장을 의심해 보라’고 합디다. 당시 메르스가 막 난리일 때라 응급실이 폐쇄된 병원도 많았는데 덕분에 빨리 ‘급성심근경색’이란 판정을 받고 곧바로 수술을 했어요. 골든타임 안에 수술을 받아 살아났지만 ‘사는 게 뭐 이래? 그렇지만 이렇게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의사분이 제 병력을 보더니 ‘정말 호화찬란한(?) 병력이네요. 그런데 왜 이렇게 멀쩡합니까’라고 묻더군요. 전 몸은 삭았지만 머리, 정신만은 삭지 않았습니다. ‘그래, 내 몸은 만신창이다, 돈도 없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분발심도 생겼고요. 드러누워서 여생을 보내기보다 경로우대 지하철 공짜표라도 들고 여기저기 다니고, 제가 잘하는 것에 도전하자는 다짐을 했어요. 위기가 닥쳐도 항상 ‘도전 안 하면 어떻게 할 건데?’라고 항상 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정년퇴직이나 혹은 구조조정 등으로 40~50대에 직장에서 나와도 할 일이 없거나 무작정 가게나 사업을 했다 망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인생 2모작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 경우는 영어실력과 컴퓨터입니다. 저는 학창시절 가난해서 영어과외나 학원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마침 길에서 모르몬교 선교사를 만나 영어 성경공부를 하며 영어를 익혔죠. 또 10년 전에 중학생들 틈에 끼여 학원에서 컴퓨터를 배웠는데, 이젠 도서관이나 백과사전 역할을 인터넷이 합니다. 구글 등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각종 정보를 찾아보며 세계 시장의 변화하는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고, 어떤 회사가 어떤 활약을 하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외식산업 사이트인 ‘미국 레스토랑 뉴스’(National Restorante News)와 ‘이터 내셔널’(Eater National) 등의 사이트가 외식업체 최신 동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예전엔 현지 곳곳을 누벼야 했지만 이젠 안방에서 세계 각국의 골목 식당까지 알 수가 있답니다. 7개월에 걸친 인터넷 서핑을 통해 제가 내린 결론이 앞으로 핵가족 시대를 넘어 1인가족 시대가 소비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소비제품은 ‘1인용화’가 될 거예요. 단것을 먹고 싶을 때 제과점의 대형 케이크보다 취향에 따라 혼자 먹을 수 있는 1인용 컵케이크가 대세를 이루더군요. 그래서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에 나가 대형 제과점, 백화점 식품코너,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의 작은 빵집 등에서 셔터를 누르고 고객들을 살펴서 ‘한국 사정에서의 컵케이크’라는 제목으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34년 전에도 창업자금 7만2000원으로 미국 피자헛 본사를 감동시켜 자금까지 투자받았고, 지금도 지지스 컵케이크 본사에서 투자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다 ‘제안서’를 잘 쓴 덕분이라고 했는데, 기획안이나 제안서를 잘 쓰는 요령은 뭔가요.

“뜨거운 가슴으로 써야 합니다. 피자헛의 모회사인 펩시코의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도 전 그 사람이 얼마나 거물인 줄 몰랐어요. 어떤 상대건 그 사람을 감동시키고 설득시키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입니다. 현재 상황, 앞으로의 계획, 왜 이 일을 이 회사와 하고 싶은지를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전하면 됩니다. 열정을 갖고 있으면 문서의 틀이나 단어 사용이 달라집니다. 미사여구도 없고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습니다. 물론 당연히 거절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각 회사들마다 제 제안서를 보고 칭찬을 한 다음 재정상황이나 투자자금을 묻습니다. 제 답은 ‘I have no money, But I have the passion’이었습니다. 은행잔액이나 대출금을 묻는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이죠.”






제안서만이 아니라 프레젠테이션도 하지 않습니까.
 “저만의 강점을 제대로 강조해야 합니다. 피자헛의 경우 국내 대기업을 비롯, 수십곳에서 한국에 들여오려고 경쟁이 치열했어요. 그때는 ‘나는 젊다. 한국에서는 아직 피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기 때문에 가맹점 주인이 발로 뛰어야 한다. 대기업 오너는 직접 뛰지 못한다. 이 사업은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성공한다. 난 피자헛을 못해도 다른 피자 사업을 할 거다. 나와 같은 젊은이를 경쟁자로 만들지 말고 내게 기회를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나이의 두 배가 된 오늘, 지지스 컵케이크에는 노련함을 강조했죠.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의 창업주인 샌더스 대령은 65세에 시작했다. 그는 군인 출신이 아니지만 켄터키주가 그를 명예군인으로 임명했다. 난 중위 출신인 진짜 군인이다’라고요.”


 외식업계의 전설이 된 피자헛이나 한국형 피자인 성신제 피자 등의 성공은 열정 덕분이라고 치고, 그럼 수많은 실패는 누구 탓인가요.
 “핑계를 대자면 동업했던 동료의 배신, 피자헛 본사의 변심,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 론스타 자회사인 스타리스의 간교한 농간 등 구구절절이 긴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이없이 상황이 꼬이고 천둥번개에 폭풍과 태풍까지 몰아쳤지만 저 역시 너무 안일하게 모든 것이 제 마음 같다는 착각을 했습니다. 친구를 믿었고 피자헛과도 한 식구라고 생각해서 모든 시시콜콜한 자료들도 다 줬죠. 또 무조건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장을 많이 열다가 정작 약속한 투자금이 오지 않아 부도가 났습니다. 사업을 할 때는 꿈은 원대하게 가져야 하지만 경영은 아주 치밀하고 냉철하게 해야 합니다.”


창업을 하거나 사업을 할 때 해외로 눈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중년 이상에게도 해당이 됩니까.

“나이가 많고 돈이 없을 때 더더욱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외국과 사업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아무도 내게 몇 살이냐, 고향은 어디냐, 어느 학교 몇 학번이냐를 물어보지 않습니다. 단 한 명도 그런 질문을 안 던지더군요. ‘네가 하는 일은 뭐냐’ ‘네가 잘하는 것은 뭐냐’만 물어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입니다. 또 해외투자자들은 국내투자자의 자세와 다릅니다. 그들은 내가 구상하는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일차적으로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러니 나의 사업 구상을 차분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었죠. 앞으로 외식업은 미국 스타일보다는 이탈리안이나 멕시칸 음식이 뜰 겁니다. 무조건 빨리빨리 먹던 시대가 지나고 재료 하나도 싱싱한 식자재와 칼로리, 조리법 등을 따진 음식이 대세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산 맥도널드는 여전히 건재하냐고요.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해 틀에 박히지 않고 항상 유연하게 메뉴를 바꾸는 노력 덕분입니다.”


그래도 68세에 하는 새로운 사업 도전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습니까.

“물론 힘들죠. 더구나 지금처럼 암환자 상태로는 더더욱 힘들죠. 그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세운 원칙은 ‘의인막용(疑人莫用)’하고 ‘용인물의(用人勿疑)’입니다. ‘사람이 의심스러우면 쓰질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항상 믿어요. 봐서 함께 일할 사람이다 싶으면 거의 100% 믿어요. 컵케이크 사업을 하면서 매장 인테리어나 새로운 신제품 개발 등은 전적으로 20~30대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나 혼자 모든 것을 하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아요.”


아직 투병 중이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해 바쁠 텐데 투병기와 사업 실패담까지 털어놓은 책을 쓴 이유는 뭔지요.

 “제가 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책방에서 책을 골라봤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요. 스님, 신부 등이 쓴 온갖 책들이 다 ‘힐링’을 강조하는데, 와 닿지 않더군요. 솔직히 그분들은 너무 평온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지 않습니까. 처참하게 깨지고 모든 것이 다 불안하기만 한 청춘이나 불행한 장년들에게 무슨 힐링 타령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나처럼 나락에 떨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정신적으로 견뎌내는 힘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1993년 피자헛을 본사에 뺏기고 받은 돈이 320억원, 지금 물가로 4000억원 정도인데, 그걸 또 하루아침에 잃고 세 가지 암을 앓았지만 다시 일어서는 제 모습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아니라 도전할 용기가 되길 바라서입니다.”


부인이 경기여고, 이대 영문과 출신의 부잣집 딸이라면서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 이렇게 사업도 여러 번 폭삭 망하고 몸도 종합병원 상태인데 항상 살뜰히 내조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평소에 얼마나 잘해주시나요.

 “얼마 전 지인들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그 지인이 집사람에게 ‘성 사장은 다시 태어나도 부인과 결혼한다는데 부인은 어떤가요’라고 물으니 손사래를 치면서 ‘절대 아니에요’라고 하더군요. 다음 생에 다시 결혼 안 해줄지는 모르지만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래도 집사람에게 ‘내 또래 재벌 2세들은 사업이 한 번 망한 후에는 완전히 폐인이 됐는데, 난 고통에 단련이 돼 또 일어섰다’고 은근히 자랑합니다.” 사업 실패와 암으로 자살까지 생각했을 때도 ‘인생을 3류 막장 드라마로 마감할 수는 없다’며 다시 일어섰다는 성신제 대표는 ‘멈추지 않으면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또 인생 2막이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이자 달콤한 모험이라고 한다. 달콤한 컵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고 새로운 기획안을 써봐야겠다. 다른 회사가 아닌 나의 인생회사에….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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