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문단은 ‘표절’의 덫에 걸려 있다. 서정적 문장력의 신경숙 작가에 이어 사회비판 의식이 충만한 작품으로 이름을 떨친 박민규 작가마저 표절을 인정했다. 문장력이나 작가의 상상력에만 의존하는 한국 문단과 달리 외국에서는 전문가들이 각 분야의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의사 출신인 마이클 클라이튼의 <쥬라기공원>, 변호사인 존 그리샴의 <의뢰인>, 교사 출신인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 영국 상원의원 출신 마이클 돕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 등은 그들의 전문지식과 탄탄한 구성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국형 경수로의 대부’로 불리는 원자력 전문가이자 구청장 출신의 이병령 박사가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룬 소설 <마지막 계단>을 발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원자력 전문가로서 소설이란 장르를 통해 원자력계와 정계의 은밀한 커넥션을 파헤치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결코 일본만의 일이 아님을 일깨워주고 싶었다”는 이 박사를 만났다.

 공학자이자 정치인이기도 한데, 왜 소설에 도전했습니까.
 
“2011년 3월 후쿠시마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났는데, 원전사고 매뉴얼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이 사고 수습을 이상하게 해 비극을 키우는 것을 보고 저를 포함한 세계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매우 놀랐습니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지 않고서는 그럴 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이 후쿠시마에서 숨기고 있는 그 무엇과 아베의 극우정책이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왔고, 소설로써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원전은 인류 최대의 상품으로서 이를 팔고 사는 데는 항상 검은 정치권력이 작용을 했다고 짐작들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원전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그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소설을 기획하면서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매우 잘 쓸 수 있겠다는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소설을 쓰려면, 원자력 전문지식과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 국제회담의 분위기, 글로벌 기업의 생태, 정치권의 생리 등 대단히 독립된 분야에서의 직접경험이 필요한데, 우연히 제가 이 모든 경험을 접한 덕분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엄청난 공포와 충격을 준 대형사건이었죠. 일본 수산물을 먹지 말자거나 일본 여행도 자제하는 분위기였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어서인지 겨우 4년 전인데도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원전사고의 핵심은 뭔가요.
 “60년 전에 영국에서 상업용 원자력발전소가 처음으로 운행됐습니다. 60년 동안 세 번이나 커다란 사고가 났죠.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는 실상 인류 최대의 재앙입니다. 사실 원자력발전소의 원리는 대단히 간단합니다. 열을 내는 핵연료에 물을 보내 뜨겁게 데워서 수증기를 만들고, 이 수증기가 뿜어나오는 힘으로 발전기를 돌리는 겁니다. 그런데 열을 내고 있는 핵연료에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으면 핵연료는 식지 않고 계속 뜨거워져 온도가 약 1만도까지 올라가게 돼요. 이걸 ‘멜트다운’(meltdown)이라고 합니다. 1만도라는 온도는 흙과 바위 등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질을 녹이는 온도인데, 후쿠시마에서는 수백톤의 핵연료가 멜트다운됐어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일본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라진 핵연료에 대해 일본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데, 과학자로서 추론해 보면 직접 측정할 수는 없지만 1만도 이상의 초고온 상태가 돼 땅 속으로 녹아내리고 있다고 봅니다. 이 멜트다운 된 핵연료가 지하강, 즉 땅 밑에 흐르는 물이나 마그마와 만난다고 가정하면, 일본은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할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아베 총리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경술국치를 안겨줬듯, 현재도 그런 계략을 꾸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지하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하 수맥보다는 훨씬 대규모로 동남아 일대에 흐르고 있음이 2007년 미국 워싱턴대학의 마이클 와이세션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 밝혀졌죠.”





과학자로서보다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이 너무 뛰어난 것은 아닌지요.

“상상이 현실이 된 사례는 많습니다. 이 멜트다운 현상을 일명 ‘차이나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서구사람들이 지구의 반대편에 중국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녹아내리는 원자로의 열이 지구 반대편까지 뚫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붙인 이름이죠. 1979년에 발표된 영화 <차이나 신드롬>은 제목 그대로 핵발전소의 사고를 다룬 작품입니다.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한 기술자가 원자로의 결함을 발견하지만 기업 측은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하죠. 또 기술자가 사건을 언론에 전하려 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며 심지어는 자동차사고를 일으켜 목숨까지 위협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상영된 불과 몇 주 뒤 마치 예언처럼 그해 3월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에서 유사한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는 일본 수도인 도쿄에서 불과 200㎞ 떨어진 곳이고, 지하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소설에서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속조치를 잘못해 일본 열도가 괴멸의 위기에 처하자 일본 총리는 한국에 이주할 음모를 꾸밉니다.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이 음모를 분쇄하고, 실제로 일본보다 앞서 있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일본을 살려냅니다. 일왕이 한국 대통령에게 감사해 고개를 숙이며 칙서를 발표하는 것으로 끝나 소설이지만 다행스럽더군요. 그런데 너무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요.
 “올해가 우리에겐 광복 70주년이지만 일본에겐 패전 70주년입니다. 아베 총리가 집단자위권 법안을 중의원에서 통과시키는 등 끝없는 우경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죠. 아베 총리는 왜 세계의 따가운 시선과 여론에도 불구하고 집단 안보정책을 고집하는 걸까요. 툭하면 일어나는 혐한 시위, 전 세계의 압력에도 끝내 부정하는 위안부 문제, 집단자위권, 그리고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여기에는 원전 폭발이라는 대재앙으로부터 자국민을 살려내기 위해 꾸미는 일본 총리의 간교한 계략이 숨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계략에 속수무책 당하는 한국 정계와 원자력계, 원전 건설 및 수출을 둘러싸고 벌이는 어처구니 없는 커넥션, 다국적기업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사랑하는 이를 죽일 수밖에 없는 첩보원의 비애,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한국 과학기술자들의 노력 등등을 소설로 표현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사람들이 원전의 불안전 요소와 정치의 부패, 그리고 일본의 팽창주의에 대해 경계심을 갖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원전사고는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텐데요. 더구나 우리나라도 원전이 많은데.
 “모든 사고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한국 원자력발전의 대부’로 불리는 한필순 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이 정부에 제출한 ‘원전 비리 근원과 근절대책’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당시 원전비리가 터졌을 때 한 고문은 ‘최근 원전 부품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고, 1980년대부터 원전기술 자립을 방해하고 외국 의존을 주장했던 원전산업 마피아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죠. 지난 5년간 한수원에서 83명의 간부가 기소됐는데, 그들이 구입한 불량품이 어떤 사고로 이어질지 누가 압니까. 우리 원전분야에서 국익보다 외국 편을 드는 ‘기술매판’ 세력이 있는데, 이들은 소수지만 우리 정부 일부 부서, 일부 공기업과 사기업, 연구기관 등 원자력 관련 거의 모든 조직에 포진해 있어 막강한 힘으로 원전 수출과 기술 개발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한국형 원전 개발 총책임자였던 저는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에 한국형 원전을 채택하는 데 공헌했지만 1995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질됐습니다. 또 2005년 중국 원전 수출 무산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 유착설’을 제기하면서 국내 원전 업계에선 ‘왕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기술로 한국형 원전을 개발했는데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중국 원전 수출이 무산됐죠. 우리 국토와 국민 생명을 담보로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너무 답답합니다.”

 일부에서는 이 박사의 주장에 반기를 들더군요. ‘핵심 부품이 100% 국산화되지 않은 현실에선 우리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거나 ‘자기하고 논리가 다르면 웨스팅하우스 비호세력으로 모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미국 원전 설계업체인 웨스팅하우스는 1978년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한국에 원전을 수출해 왔고, 그 과정에서 국내 원전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어요. 2006년 일본 도시바가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고 중국 원전을 수주한 뒤에도 이른바 ‘웨스팅하우스 장학생’이 한국 원전업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너무 답답해서 공무원들과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을 만났지만 ‘그러냐?’는 반응뿐이더군요. 심지어 제가 기자들에게 자료를 주고 취재를 부탁해 유력 일간지 1면 톱기사로 나갔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당사자들도 꿈쩍 않고 정부 측도 반응이 없고…. 저 혼자 조용히 입 다물면 그만이라고 포기하고 싶지만 그러면 나라에 너무 손해가 크다고 생각해 2011년 국내 ‘원자력발전 마피아’의 실체를 폭로한 ‘무궁화꽃을 꺾는 사람들’이란 책을 썼습니다. 워낙 강력한 내용이라 혹시나 자료가 해킹당할까봐 노트북을 구입해 인터넷 기능을 제거하고 자료를 정리했고, 제가 출판사를 만들어 펴냈어요. 그런데 3000부나 팔렸는데도 그 후로도 원전 마피아는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부패 근절이 그리 쉬운가요.
 “마음만 먹으면 쉽습니다. 제가 구청장을 해봐서 압니다. 구청은 각종 인허가를 내주는 곳이라 관습법으로 보면 검은 돈을 받을 기회가 많더군요. 그런데 돈을 받는 순간, 구민들은 눈에 안 보이고 돈 준 사람의 이익에 충실하게 됩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다 보면 여기저기 연결되고 기업의 후원금도 받죠. 그 순간 국민은 멀고 기업만 가깝게 느껴지죠. 그러니 양심에 따라 검은돈을 안 받으면 됩니다. ‘마피아’라고 불리는 전문가 집단이 부패하는 이유도 실상 박탈감을 느껴서일 겁니다. 자신들은 열심히 공부했고 부지런히 일하는데 월급 정도만 받고, 정작 큰 돈은 정치인이나 변호사 등이 다 가져가니 뇌물을 받아도 껌값으로 여겨 죄책감도 못 느낍니다. 곧 김영란법도 시행되는데, 국가 차원에서 부패범들을 엄벌에 처하는 등 절대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 소설은 한국을 멸망시키려 한 일본 왕의 반성문으로 끝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떤가요.

“저는 일본의 우경화가 심해지면 한·일 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모욕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뭔가 대항수단이 필요합니다. 부국강병의 차원에서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요.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는 순진무구한 생각으로는 더 이상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원자력폭탄, 플루토늄, 정보기술(IT) 등을 합법적으로 보유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 뭔가는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라도 줘야 합니다. 저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한국형 원전 개발 책임자로 근무하며 한국형 원전의 상업로화를 성공시켰고, 또한 대북한 원전 지원팀장으로 북한에 제공하는 경수로로 한국형이 채택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외국 기업과 정부, 한국 전문가들과의 회의에서 원맨쇼를 해서 ‘국제깡패’란 별명을 얻으면서 이뤄낸 성과인데. 혹시라도 부패한 조직과 사람들 때문에 원전사고가 날까 정말 두렵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통해 사람들이 원전의 불완전 요소와 정치의 부패, 그리고 일본의 팽창주의에 대해 경계심을 갖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서울공대, 미국 테네시주립대 출신에 한국형 원전 개발책임자를 역임하고 대전 유성구청장에 이어 소설가란 직함까지 얻은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뜻밖에 ‘연애’라고 했다. 원자력 전문가나 소설가의 창작력도 7년 반 전 아내를 잃은 외로움은 달래주지 못하나 보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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