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텔레비전 특집 프로그램을 보니 외국인들은 한복을 입고 한식을 만드는데, 정작 한복을 입은 한국인 출연자들은 드물었다. 거리에 나가봐도 한복을 입은 이들을 찾기 어렵다. 이제는 결혼식이나 어르신들의 환갑, 칠순잔치 때나 입는 옷이 된 한복.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카스텔바작은 “무척 아름답고 철학적인 옷”이라고 극찬하고,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입은 두루마기가 마음에 든다고 가져갈 정도로 인정받는데, 왜 정작 우리들은 푸대접을 하는 걸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한복 디자인 40주년을 기념해 ‘이영희 전(展)-바람, 바램’ 전시회를 열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를 만나 한복의 매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복이 냉대받는 이유를 물었다.

이번 전시 제목이 ‘바람, 바램’입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바람은 제 한복을 상징한 단어이고, 바램은 앞으로 우리 한복이 더욱 사랑받기를 바라는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저는 1993년 국내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파리 컬렉션에 한복을 갖고 참여했습니다. 전통한복을 변형한 드레스 등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었습니다. 많은 유럽인들이 한복을 보고 찬사를 쏟아내면서도 한복을 일본 기모노의 한 종류인 줄 알더군요. 기자들이 제 옷을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노모)’라고 부르는 게 싫어서 ‘한복’의 스펠링을 직접 써서 주기도 했어요. 너무 화가 나고 기가 막혀 디자인에만 매달렸습니다. ‘한복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이듬해인 1994년 컬렉션에서 프랑스 파리의 뤽상브루 궁전 오랑제리 전시장에서 한복 저고리를 입히지 않고 치마만 입은 모델을 등장시켰습니다. 어깨와 팔이 드러나고, 치마끈으로 누른 가슴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고. 부드러운 노방(실크)의 치마가 하늘하늘 날리는 그 옷을 보고 쇼가 끝난 뒤 당시 <르몽드>의 패션 수석기자 로랑스 베나임은 ‘바람을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데 모은 옷’이라 평하면서 ‘바람의 옷’이라 명명했습니다. 다른 평론가들이나 현지 언론으로부터도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는 ‘가장 모던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옷이며,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변화무쌍하고 무궁무진하게 보여주는 옷’이라는 호평을 받았죠. 덕분에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 부티크를 열었고, 밀려드는 주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요즘 K팝이 유럽에서 인기라지만 저는 이미 20년 전에 한류를 경험한 셈입니다. 유럽인들이 한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속치마가 예쁘다’며 따로 맞춰가던 고객도 있었죠.”





외국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국내, 특히 한복계에서는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요. ‘상스럽다’, ‘한복 치마만 입혀 놓은 게 패션이냐’, ‘한복의 전통을 망쳐버렸다’며 날선 비판을 했죠. 그러나 저는 그때마다 콜럼버스의 달걀을 떠올렸습니다. 알고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지만, 그 전환을 수백년 동안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발상의 전환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축적된 노력이 쌓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한복이 우리 생활 속에 배어들게 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장식부터 과감히 없애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저고리의 고름을 떼어버렸죠. 고름 대신에 단추 등으로 단순화해서 실용적인 한복을 만들다가 세계 무대에 나면서 아예 저고리를 생략한 파격적인 ‘저고리 없는 한복’을 만들었습니다. 비판이나 비평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저는 절대 치마 드레스만 만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전통에 기반한 한복 연구가이자 디자이너입니다. 다양한 형태와 볼륨을 지닌 옷으로 변화하지만 언제든 간단한 평면으로 회귀할 수 있는 한복 치마를 외국의 패션 평론가들은 ‘한복이 지닌 고유한 미학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최고의 디자인’이라고 평가해줬죠. 전통을 버리고 진정한 전통을 얻었습니다. 한없이 변화할 수 있지만 언제든 가장 간단한 평면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옷. 이런 생명력이 있어서 저는 바람의 옷, 한복을 사랑합니다.

전업주부로 지내다 40세에 한복 디자이너로 입문했습니다. 한복이나 디자인 공부를 따로 한 적도 없다면서요.
 “경북여고 졸업 후 군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던 평범한 주부였죠. 그런데 1974년 사촌언니가 대구에서 과거 임금님만 덮었다는 누에고치 실크실을 솜으로 풀어서 만든 명주솜 이불을 만들었습니다. 언니의 권유로 서울에서 명주솜 이불 1000개를 가져와서 지인들에게 권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언니가 준 솜이불에 제가 좋아하는 색깔의 천을 덧대었더니 이불의 품질도 그렇고 색상이 남달라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처음엔 한복이 아니라 전통이불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 셈이죠. 사촌언니가 그 솜을 안 줬으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입소문을 듣고 제 이불을 찾던 사람들 덕분에 당시 서교동에 가구로 유명한 ‘윤씨농방’에서 이불을 판매했죠. 그러다 한복까지 디자인하게 되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불을 할 때부터 색에 대한 타고난 남다른 감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도 색상의 조화라든지 배운 적이 없는데도요. 아마도 어머니를 통해 배웠고, 전통한복을 통해 저절로 터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고 다니던 시절로, 집에서 어머니가 가족들의 옷을 지어주고, 제가 직접 바느질해 입던 환경이어서 어렵지 않았어요. 큰딸이 경기여고를 다닐 때 푸른빛이 도는 회색 한복치마를 입고 갔더니 사람들이 같은 색상의 옷을 지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한복 외길’이 시작됐습니다.”

 한복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영감은 전통에서 얻습니다. 한복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저는 한국복식연구가이자 민속학자인 석주선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아직도 우리 전통한복들을 모은 석주선박물관에 처음 갔을 때의 충격과 감동에 소름이 끼칠 정도랍니다. 그분이 수집한 수백년 전의 우리 옷을 보면서 한복의 역사는 물론 색상, 장신구 등등을 다 공부했습니다. 저는 옛날 옷들과 노리개, 비녀, 옛날 어머님들이 하던 옷, 또 선비들이 입던 옷을 보면서 아이디어도 얻고 바느질 기법, 문양 등을 꼼꼼히 보고 연구합니다. 한복으로 번 돈은 한복에 쓰자는 생각에 평생 번 돈을 전통한복 수집과 한복 패션쇼에 다 투자했습니다. 수백년 전의 한복을 보면서 이 옷은 어떻게 지어졌나도 살피지만, 이 옷을 입은 분은 누군가 상상하다 보면 새로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또 세계 곳곳에서 패션쇼를 하면서 한복을 알린다는 자부심에 그동안 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한복의 가장 큰 매력은 뭔지요.
 “색깔입니다. 저고리 고름 하나가 어떤 색을 달았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격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고 천상의 천사처럼 보일 때도 있거든요. 흔히 우리나라를 백의민족이라고 하지만 실상 정말 무긍무진한 색깔을 옷에 담은 민족입니다. 궁중의 옷들은 물론 양반가의 한복을 보면 그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색상에 놀라게 됩니다. 제가 염색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치자를 비롯해 천연염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색상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저고리도 고름, 소맷단을 각각 다른 색깔 혹은 자수 등으로 변화를 줄 수 있고 저고리와 치마, 남성의 경우 저고리와 바지 색상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자신에게 맞는 색깔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요. 저는 고운 색이 맞지 않아요. 빨간 저고리니 먹자 치마니, 무슨 보라 짙은 치마, 이런 게 잘 안 맞고 조금 눌러주는 이런 색, 무거운 색이 잘 맞습니다. 요즘도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데 색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색이 잘 안 떠오를 때는 회색을 쓰라고 하죠. 잿빛은 자주, 분홍, 파랑 등 모든 색과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룹니다.”

저도 기자생활 30여년을 해오면서 수많은 한복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만 작고했거나 활동이 뜸합니다. 여전히 건재하고 가장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로 남아 있는 비결이 뭘까요.
 “운명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이에요. 제가 한복을 디자인하게 된 것도, 무모한 용기를 갖고 파리 컬렉션에 도전한 것도 그렇고, 2000년 6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 패션 공연 ‘Wind of History’ 개최, 2001년 평양 초청 공연 ‘이영희 민속의상전’ 개최, 2004년 9월 미국 뉴욕·워싱턴 이영희 박물관 개관, 2005년 11월 부산 APEC 정상회의 21개국 정상 두루마기 제작, 2007년 5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한복 16벌 영구 전시 등의 영광을 누린 것도 제 재능과 열정의 결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대 약대를 나온 딸(디자이너 이정우씨)도 제가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며 일을 돕다가 한복의 매력에 빠져 한복을 바탕으로 한 서양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됐습니다. 저처럼 마흔 가까운 나이에요. 그 딸의 며느리가 전지현인데, 너무 예쁘게도 한복을 좋아하고 참 잘 어울립니다. 곧 증손주도 태어날 텐데, 그 돌 한복도 제가 지어줘야죠.”


이번 전시회에서 어떤 바람을 갖고 있습니까.

“제 나이 팔십인데, 제 삶에서 제일 잘한 일이 뭘까 곰곰 생각해보니 한복을 만든 것이었어요. 한복 디자인 인생 40주년을 기념하며 제가 가장 잘하고 사랑하는 한복의 모든 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한복이 많이, 제대로 입히기를 바랍니다. 발전적인 미래란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한복의 전통을 계승한 이영희 컬렉션과 자신이 직접 모은 전통 유물을 공개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이자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한산모시’가 전통 컬렉션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한산모시’만의 빛깔과 텍스처 등의 특색을 살린 전통한복과 오트쿠튀르 드레스 디자인 작품이 아트 인스톨레이션을 통해 드라마틱한 감동으로 선보입니다. 또 디자인의 영감으로서 제가 그동안 수집해 온 조각보와 비녀, 족두리, 버선, 꽃신 등도 전시되어 있어요. 동시에 아티스트와 콜래보레이션한 작품도 함께 전시한 것이 특징입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박제성 작가는 제 대표작인 ‘바람의 옷’이 지닌 특징을 형상화하고, 사진작가 김중만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바람의 옷 남자 버전’을 입은 유니버설발레단 남자무용수를 촬영한 화보와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복의 미를 21세기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접목한 패션 아이템인 가방, 생활가구인 침대 등에 녹아든 우리 옷의 아름다움의 단편을 발견해 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디자인은 다음 세대에 징검다리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바램’이 있다면 저의 도전이 개인의 도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혹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우리의 전통미학이 계속 새로운 손길로 재 탄생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자신의 열정과 시간과 전 재산을 쏟아부을 만큼 한복을 사랑하는 이유는 뭔지요.

“한복은 우주를 디자인할 만큼의 무궁무진한 철학과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옷만이 아니라 헝겊 조각을 모아 만든 조각보를 봐도 자투리 헝겊을 활용한 생활의 지혜는 물론 모든 것을 감싸안는 포용의 철학, 그 놀라운 색채의 예술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고 여전히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한복입니다.” 전시장 곳곳을 살피며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하면서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는 팔순의 이영희씨를 보고 젊은 스태프들이 “도저히 선생님의 체력을 따를 수 없다”고 한숨지었다. 건강비결을 묻자 “꾸준히 수영을 하고, 혼자 하면 나태해져서 개인 트레이너에게 따로 헬스 지도를 받는다”고 했다. 스스로를 가꾸고 사랑하는 이런 열정이 한복 사랑의 원천인 것 같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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