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아니 세상이 완전히 뒤집힌 것 같다.

지난 수요일, 서울 명동의 한 패션매장에는 대한민국 주요일간지 기자들이 모였다. 그들이 취재하고 인터뷰하려는 인물은 스콧 슈만이란 사람이다.

그는 정재계 주요인사도 아니고, 언론계의 거물도 아니다. 샤토리얼리스트(THE SARTORIALIST)란 이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다. 그가 운영하는 패션사진 전문 블로그 샤토리얼리스트에는 하루 7만여명이 드나든다. 그리고 그가 올린 사진도 유명 패션모델이 명품을 휘두르고 첨단 트렌드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사진 작가도 아닌 스콧 슈만이 거리를 지나다가  만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 대중들이 열광한다. 요즘은 버버리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에서 함께 협업을 요청하고 <보그> <지큐>등 패션전문지에도 사진을 찍어주고 글도 쓴단다. 

스콧 슈만


명사들이나 특별한 사건의 주인공들만 취재하는 일간지 기자로서 ‘블로거’를 취재해야한다는 것은, 기자의 오만함이나 구태의연한 사고일지 모르지만 좀 씁쓸했다.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파워블로거라고 해도 솔직히 기자가 블로거를 취재하다니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의 블로그가 그토록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자신의 책에 올린 사진보다는 엄청 키가 작고 귀여워보이는 스콧 슈만은 담담하게 말했다.

“신문 등 기존의 미디어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합니다. 블로거 등 뉴미디어의 특징은 쌍방향입니다. 제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고 독자들은 제 생각을 공유하고 자신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죠. 전 그들의 댓글이나 아이디어를 보고 또다른 영감을 얻고요. 그리고 아마도 제 블로그가 대부분 사진이어서 언어장벽없이 세계인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블로그는 2009년과 2010년 전세계 500여 패션블로그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1위에 올랐으며,  그가 가장 아끼는 사진 500개를 골라 단행본으로 묶어낸 <사토리얼리스트>는 아마존 베스트셀러 패션 부문 1위에 올랐으며, 지난해 국내에서도 출간되어 예술분야 13주 연속 1위에 올랐다. 블로그와 책 제목인 ‘사토리얼리스트(Sartorialist)’는 ‘재단사’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사토르(Sartor)에서 파생된 단어로 ‘자신의 개성을 고유한 스타일로 표현하는 신사’를 뜻한다.

나도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던 지난해,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그의 책을 샀다. 그의 책에는 밀라노에서 만난 은발의 할머니, 마이애미에서 사진찍힌 전직 마약상을 비롯, 온갖 직업과 사연의 보통(?) 사람들이 담겨 있었다. 보통사람들도 이렇게 멋지구나란 감탄사가 나와 기꺼이 그 책을 샀다.


국적도, 직업도, 외모도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스콧 슈만이 보기에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  뚱뚱한 영감님도 자신의 체형을 완벽히 커버해주는 색상과 디테일의 옷을 입고, 근사한 머플러를 둘러 패션감각을 보여주면 그의 피사체가 된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바람에 은발이 날리는 할머니 역시 그 당당한 표정속에 “난 언제나 멋을 알고 살아왔어”란 자부심이 느껴지면 그는 다가가 “아름다우시군요. 너무나 멋져 꼭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라고 허락을 받아냈다. 때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들에게 카메라를 눌러 보이는 시늉을 하며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어 합의하에 담은 사진들이다.  

“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그 도시가 어떤 곳인지를 따지지 않아요. 얼마전에도 인도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인도전통복 사리를 입은 여성을 찍진 않았습니다. 패션업계가 제안하는 패션트렌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그 장소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입는 옷과 그들의 멋을 찍어요. 옷에 담긴 그의 인생과 삶의 느낌을 담는 제 철학과 상업적이지 않은 제 정직함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그가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겠다는 야심때문이 아니었다. 버그도프굿맨 백화점과 발렌티노 등에서 15년간 패션관계 일을 하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옷을 골라 작은 쇼핑점을 운영하던 그는 9·11 테러 사건 후 불경기로 가게문을 닫았다. 전업주부(house husband)가 되어 집에서 살림하며 두 딸을 키우던 그는 귀여운 딸들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자신이 사진과 예술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단다. 그래서 2005년, 블로그를 만들었고, 길에서 만난 민간인(?) 멋쟁이들의 사진과 짧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 신선함이 소문나서 4년여만에 세계적인 파워블로거가 됐다. 이젠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나 패션전문지들이 그를 모셔가려고 안달이다.

그의 말대로 그의 블로그는 “이번 시즌에 샤넬과 구찌에서 제안하는 패션 트렌드는 이런 것이다”라고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기존 미디어의 패션기사와 차별화한 것이 성공비결이다. 나와 비슷한 보통사람들은 이렇게 옷을 입는구나, 세상에 이 영감은 예전에 좀 노셨던 것 같군... 등의 공감을 하고 “나라면 이 코트에는 이런 머플러 대신에 줄무늬를 연출하겠다” 등의 생각까지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부러 연출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움과 생생함. 바로 나, 혹은 내 이웃의 얼굴들이어서 더 친화력이 있는 것 같다. 실업자가 되어 카메라를 들고 딸 사진을 찍어주던 스콧 슈만은 이젠 파워블로거를 떠나 패션계의 거물이 되었다. 블로그의 파워다. 

그보다 더 부와 명성을 누리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블로거가 있다. 200만달러로 시작했던 <허핑턴 포스트>(HuffPo, 이하 허프포)’를  출범 6년만에 3억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려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한 아리아나 허핑턴이란 60세 여성이다.

아리아나 허핑턴


미국의 인터넷업체인 AOL이 지난 7일 인터넷 진보매체인 허프포를 3억1500만달러(한화 3476억원 상당)에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이 사이트의 공동창업자이자 편집장인 아리아나에게 주목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그를 제 2의 ‘오프라 윈프리’로 비교하며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사를 터뜨린다.

‘허프포’는 2005년 5월 당초 보수 인터넷매체로 성공한 <드러지리포트>에 맞설 수 있는 진보매체로 출발했다. 히핑턴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서 빌린 200만 달러로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켄 레어와 함께 ‘허프포’를 시작했지만 디지털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었단다. 그러나 허핑턴의 정치적인 수완 등에 힘입어 허핑턴이 ‘창조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250명의 유명 인사들을 주제별 필진으로 내세우면서 충성도가 높은 고정 독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등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외신기사에 따르면 허핑턴은 소셜미디어가 태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독자들이 그동안 일방적으로 엄격하게 정제한 내용만 내보내던 기존 언론사들과 달리 쌍방향 뉴스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이후 단순히 뉴스를 공유하는 것 뿐 아니라 코멘트를 달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리고 싶어한다는 사실도 일찍 깨달았다. HP의 편집자들은 인터넷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아내고 이를 재가공해 허프포에 게시했다.

물론 허핑턴은 평범한 아줌마는 아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후 16살 때 영국으로 이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 정치적 풍자집과 전기에 이르기까지 12권의 저서를 집필한 작가다. 1986년 공화당 상원의원인 마이클 허핑턴과 결혼해 워싱턴으로 이주했다. 1994년 남편의 상원의원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허핑턴은 워싱턴 정가와 상류사회에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97년 이혼한 후에도 정치에 관심이 컸던 그는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도전했으나 헐리우드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패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감각과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해 허핑턴포스트에 독자을 끌어들여 방문자 수가 월 2500만명에 이르고 지난해 300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신기한 것은... 그가 이 블로거들을 끌어 모아 허핑턴포스트를 만들었을 때, 그의 나이가 남들은 은퇴할 55세였고 디지틀이나 뉴미디어에 대한 감각도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독자들을 비롯한 대중의 마음을 꿰뜷었다.

인터넷 등 넘치는 정보들로 엄청나게 똑똑하고 유식해진 대중들은, 절대 신문방송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적당히 손본 식상한 기사나 “너희들, 이거 알아?”라며 잘난척하고 쓴 글에 속지도 않고 감동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독자들이 기자들보다 학식도 풍부한데다 파워블로거의 경우, 기자들처럼 출퇴근하지도 않고 상사 눈치도 보지 않으며 한 분야만 파고 들어 심층취재나 깊이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30년 가까이 종이 매체에 청춘을 바치고, 그것만이 살 길이며 자랑으로 알았던 나는 요즘 정말 머리가 윙윙거린다. 드라마나 오락프로를 보면서 생중계하듯 기사(기사라고 불러야할지는 모르지만..)를 긁어 올리는 인터넷 포털매체의 기자들과 속도전을 할 수도 없고, 하염없이 깊고 깊게 한 분야를 파고 들어 정보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블로거들에 비해서는 시간도 체력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우리는 독자나 대중들과의 스킨십이 부족하고 그들의 욕구나 마음을 읽는 노력과 시간도 부족하다.

세상은 이렇게 빛의 속도로 바뀌고, 미디어는 그야말로 빅뱅이라고 할만큼 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경향신문에서 온라인 매체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기자들에게 블로그를 하라고 권헤서 나 역시 겨우 방 하나를 얻어 <수다의 힘>이란 문패를 달았다. 딱히 전문분야도 없이 가장 잘하는 수다떨기와 책읽기의 힘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힘주어 쓴 기사보다, 그냥 수다떨듯 풀어놓는 내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걸 발견했다.  그리고 독자들이 올려주는 댓글을 읽으며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게 된다. 기자일때는 내 기사에 달린 댓글까지 읽을 여유가 없었다.(댓글도 거의 없고..)

슈만과 허핑턴은 분야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대중들과 소통할 줄 안다는 것이고 철저히 대중들의 눈높이를 맞췄다는 것이다. 난 아직은 블로거라기보다 기자로서의 비중이 더 크지만, 기자들에게 절실한 것이 이런 눈높이를 맞추는 노력인 것 같다. 현장에 직접 가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 이런 마음이라면 누구나 성공하지 않을까. 이런 블로거 파워는 진정한 평등과 기회균등의 시대가 도래함을 알려준다.

기자로서나 블로거로 성공하기보다 한 인간으로 성숙하는 비결도 이런게 아닐까.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것,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우리는 것.... 워낙 키가 작간 하지만 더 납작 낮아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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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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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고은 2011.02.10 17: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콧 슈만이 실제로는 귀여울 정도로 작은가요? 은근히 기대한 면이 있었는데.ㅎㅎ

  2. 나그네 2011.02.11 0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인경기자님과 이고은 기자의 블로그가
    머지않은 뒷날 이 못지않게 열렬 각광 받을것을 예감합니다.
    그때는 세상 좀 더 산 유기자님이 양보하세요~~~

  3. 김학민 2011.02.11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 오는 글이네요. 4대 매체 기자들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쭈욱 빠질때 미디어의 전성기가 다시 도래할거라 생각합니다.

  4. 유인경 2011.02.11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그네님, 제가 너그러운척 양보하지않아도 이고은 기자가 더 능력있어서
    벌써 저를 앞서고 있어요. 흑흑...

  5. 이고은 2011.02.11 1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 저 없는 사이에 나그네님과 유선배 사이에 오간 이 대화는 참 저를 손발 오그라들게 하시는군요! 제가 어찌 감히...

  6. elle 2011.02.11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의 글은 누가 뭐래도 재밌습니다.
    인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재미"있는 것 앞에선 약합니다.
    인간들이 매일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게 알고보면 다 "재미"죠.
    무엇을 할 때나 재미를 양념으로 버무리면 성공할겁니다.

  7. elle 2011.02.11 1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의 글은 누가 뭐래도 재밌습니다.
    인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재미"있는 것 앞에선 약합니다.
    인간들이 매일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게 알고보면 다 "재미"죠.
    무엇을 할 때나 재미를 양념으로 버무리면 성공할겁니다.

  8. 유인경 2011.02.11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글에 비난이나 지적을 하면 끙~하고 침묵하면서도
    엘르님처럼 누가 재미있다. 좋다 등등 칭찬하면
    5세 훈이처럼 기뻐지는건... 제가 비굴한걸까요. 성격이 좋은걸까요..
    elle님, 복받으셔요...

  9. 김민우 2011.02.11 2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의 글이 공감이 가는 이유는
    아물도 솔직함에서 묻어 나오는 재치와 유머인것 같습니다.
    유기자님이 글에 유머를 사용하실때 이미 저같은
    대중들과의 눈높이는 맞춰졌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글들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10. 이재일 2011.02.12 0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의 진솔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님의 건투를 빕니다.

  11. Ejang 2011.02.13 02: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향신문 인턴 기자분들이 올리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

  12. 김종환 2011.02.13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 글 주일에 제일 기다려지는 글입니다..
    50대 중반 남성이지만 읽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 쥐( 쥐는 빼고요..)
    유기자님 같은 분때문에 폼잡고 아직도 지잘난줄아는 조중동 망하고 경향신문
    대박 맞는 날이 언제가 도래할것을 믿습니다...ㅎ

  13. 이혜영 2011.04.14 2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님, 이 글 참 와닿습니다.
    기자로서는 자괴감이 드실 수도 있지만, 저처럼 소통을 기다렸던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현상인걸요! 이렇게 유기자님의 인간적인 글들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고 말입니다~
    요즘 매일 들러 조금씩 읽고 있는데, 많이 공감가고 재밌거든요!

  14. soha 2011.11.02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버튼 백번 누릅니다

  15. soha 2011.11.02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버튼 백번 누릅니다

  16. 지현 2011.11.02 2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인경 기자의 팬입니다. 저서도 제 돈주고 샀답니다. ㅋ
    덕분에 오늘 새 인물을 알게되었네요. 그 블로그 당장 가봐야겠어요.
    중년에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했다는 점이 자극이 됩니다. 용기가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