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선 하루에 50여명이 자살하고,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천수를 누린 어르신들까지 ‘죽음’은 랜덤으로 찾아오는게 진리인데도 나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언제나 아주 특별한 일인것처럼 가슴이 아프다.

지난달 그레이스 리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충격이 가시기 전에 나와 친했던 출판 평론가, 내게 맛있는 음식을 보내주던 할머니 등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대학 시절 나와 아주 절친했던 친구가 일본 동경에 사는데 전화도 안받고, 메일에도 답이 없다. 답답해 미치겠다.

그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가슴을 치는 것은, 얼마든지 내가 그 분들을 더 자주 만나고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무심함으로 그런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레이스 선생님의 경우에도 입원하셨을 때 병원에 가지 못했다. 전화를 드리니 “괜찮아. 오지 마. 나 흉한 모습도 보이기 싫고 말할 힘도 없어”라고 하셔서 다음에 가야지, 다음에 가야지 하다가...

출판평론가의 죽음은  2주일이 지나서야 알았다. 갑자기 쓰러져 그야말로 돌연사를 한 경우고, 가족들도 경황이 없어 지인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고 했다. 20년전, kbs tv 아침 프로에 함께 출연해서 인연을 맺은 그 분은 아줌마인데도 너무 씩씩하고 나이드는게 좋다고 주장하는 내게 책을 써보라고 권했다. 그 분 덕분에 나의 첫 책, ‘유인경 기자의 아줌마 예찬론’이란 부제가 붙은 <내 인생 내가 연출하며 산다>가 나오게 됐다. 지난 1월에 만나서 점심을 먹을 때 낮술을 많이 마시기에 “아유, 술 좀 그만 마셔요. 그러다가 일찍 죽어.”라는 말을 했는데....

강원도에 사시던 할머니는 텔레비젼에 나온 내가 마음에 든다며 딸을 통해 편지를 보내 오셨다. 오혜은이란 예쁜 이름의 할머니는 효심이 깊은 아들이 귀농해서 강원도에서 사신다면서 아들이 농사지은 버섯, 옥수수 등을 보내주시고 가끔 안부 전화도 하셨다. 그 버섯은 얼마나 신선했고 옥수수는 얼마나 고소했던가... 하도 많이 보내주셔서 친지들에게 돌리며 산타 클로스 역할을 했다.

오래 병을 앓으셔서 바깥 나들이를 안하시는지 텔레비젼 시청이 취미인 것 같았다. 몇년전엔가 서울의 병원에 그 분이 입원했을 때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소녀처럼, 아니 아기처럼 너무나 천진한 목소리로 즐거워하셨다. 그리곤 따님으로부터 “목소리에 이상이 생겨서 유기자님께 전화를 드리고 싶어도 못드린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그 분의 목소리는 못들어도 내 목소리는 얼마든지 들려 드릴 수 있었는데 난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그레이스 선생님이건 다른 분들이건, 아니 내 부모님이건 돌아가신 분들을 떠올리면 그 분들이 내게 준 선물이나 대단한 어록이 아니라 그들과 내가 함께 나눈 시간들이 떠오른다.

엄마와 손잡고 걷던 길, 아버지 무릎에서 듣던 옛날 이야기, 그레이스 선생님과 같이 갔던 식당들과 그 음식을 먹으며 나눴던 말들, 출판 평론가와 베스트셀러의 뒷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던 시간, 할머니가 보내준 버섯에 감동해 쓴 편지, 떨리던 전화 목소리..
그리고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지만 대학동창과 함께 축제에 참석해서 “왜 우리만 애인이 없을까”라고 궁시렁대며 서로 찍어주던 사진들, 딸 아이 데리고 일본에 갔을 때 그 친구가 안내해 함께 걷던 동경의 골목길들...

내가 아무리 누굴 사랑한다고 해도 그게 단순한 열정이면 그건 집착일 뿐이다.
진짜 사랑은 마음만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는게 아닐까.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마음밭에 불이 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아도 그와 함께 내 시간을 추억으로 물들여 가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 바바라 부시가 한 대학의 졸업식에 참석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나중에 나이들거나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는 것은, 여러분이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일 겁니다. 그것도 대단한 성공이나 부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왜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왜 내가 그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왜 내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일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더불어 보내세요...”(뭐 이런 내용이다..)

나도 이제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나눠야겠다.
꼭 얼굴을 맞대는 것이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전화, 메일, 문자, 편지 등등 나의 마음과 사랑을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은 무한대다.
난 중학교 이후 친구들이 준 편지나 카드를 간직하고 있는데 가끔 그걸 보면서 친구들과의 시간을 떠올리고 그 기억속에서 예전의 나를 발견한다.

지금 이웃나라 일본에서 상상을 초월한 지진과 쓰나미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구조지원단을 보내고, 배용준 등 한류스타들이 후원금도 보내고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것 역시 그들의 마음과 돈만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새삼 우리 엄마에게 감사드린다.

엄마는 우리 6남매를 키우면서 특히 막내딸인 내게 참 많은 사랑의 시간을 선물하셨다. 친구들과의 계모임에도 부록처럼 데리고 가셨고, 크리스찬이 아닌데도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다”라며 양말에 선물을 넣어 주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직접 헝겊에 수를 놔서 예쁜 보조가방을 만들어 주셨고 특별한 날에는 경양식집에 데려가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 등을 사주며 기쁨을 나눴다. 심지어 내가 오전에 산부인과에서 곧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날 점심 때도 “영양가 있는 것 먹어야 쑥쑥 힘줘서 아이 낳을 수 있다”며 스테이크를 사줘서 함께 먹었다.


그레이스 선생님과 가족들, 나를 사랑해준 분들께 감사드리는 것도 그들이 기꺼이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것이다.내가 속상해하고 슬퍼할 때, 기꺼이 내게 어깨를 빌려줬고 두 팔 벌려 나를 안아줬다. 나를 위해 기꺼이 먼 곳에서 달려와주었고 나를 위해 귀와 마음을 열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선물해줬다. 그리고 우린 그 시간을 추억이란 근사한 보물로 만들었다.

우리에게 허용된 하루는 24시간뿐이지만 그 시간을 어떤 내용으로 누구와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Yseterday was History, Tomorrow is Mistery. Present is Present!!

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 내일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추리소설이다. 다만 현재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오늘, 이시간이란 선물을 행복한 마음으로 나누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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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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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딱정벌레 2011.03.15 2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왠지 모르게 마음을 울리는 글이었어요.ㅠㅠ 마음에 새기고 싶은 내용이에요.

  2. 파랑새 2011.03.15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가 그리 바쁜지 ..일상속에서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안되는 일이지요.
    마음이 없이는 나의 금쪽족같은 시간을 어찌 나누겠습니까
    사랑은 표현해야 알수 있는것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어요. 가족. 친구 .동료간에 말이에요^^

  3. pinggu99 2011.03.15 2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절절히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네요. 저도 사랑하는 선생님께 너무 전화를 드리고 싶은데 일요일이니 월요일에 안부전화 드리지 했는데 그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미루지 말것. 사랑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시간을 내어 함께 할것. 정말 공감입니다.

  4. 허브 2011.03.15 2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에있는 막내동생가족땜에 가슴졸이며
    밤을세웠네요.. 무슨일이 있었다면 정말..
    오늘도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많이사랑한다구
    얼른돌아오라구 모두기다림니다

  5. 고수부지 2011.03.16 1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사랑은 시간을 나누는것^^

  6. 유인경 2011.03.16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브님 막내동생 가족이 무사하길 기원합니다.
    몸이 아프다, 돈없다 투덜거리다가도
    정말 오늘도 살아서 꽃샘추위라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7. 2011.03.16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쏘피 2011.03.16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이, 그저 무상하게만 느껴지는 요즈음입니다.

  9. 빠리 이모 2011.03.17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자님 포스팅을 보고 사랑하는 저의 고모가 생각나서 전화를 드렸답니다.
    이모보다 더 이모같고, 때로는 사촌언니같은 저희 고모. ;)

    같이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함께 나누는 소소한 일상이나 마음이 제게는 큰 힘이 된답니다.

    마음을 울리는 포스팅에 감사드려요.

  10. miee8471 2011.04.05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님께서절친 병문안을 다녀오셨다 폐암말기 더이상 병원에서도 손을 놓은 상태라 충격이 크셨다 좀더 건강할때 왜 자주 안부전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는지 아쉬움에 가슴아파하신다 있을때 잘하란말이 뇌를 스친다

  11. miee8471 2011.04.05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버님께서절친 병문안을 다녀오셨다 폐암말기 더이상 병원에서도 손을 놓은 상태라 충격이 크셨다 좀더 건강할때 왜 자주 안부전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는지 아쉬움에 가슴아파하신다 있을때 잘하란말이 뇌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