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평등’ 사회다. 살고 있는 집의 ‘평’수와 학교나 사회의 ‘등’급으로 평가된다. 어느 지역에 거주하며 어떤 집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신분을 가늠하는 주요척도가 됐다.
드라마에서도 경제적 여유있는 집안임을 설명할 땐 전화받는 장면에서 “성북동입니다” 등의 대사가 단골로 등장한다. 그 사람의 삶의 태도와 인생철학을 담고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이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광고판 역할로 변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먹고 자고 살기에 의·식·주는 기본이긴 하나 한국인에게 집은 더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외국처럼 임대주택이 다양하지도 않고 유난히 전월세 입주 시절의 서러운 추억이 많아 이를 악물로 내 집 마련을 하려고 한다.
또 경향신문에서 연재했던 ‘주거의 사회학’에서 밝혀졌듯 이제 집은 그 곳에서 어떤 구성원이 살고 있으며 어떤 분위기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며 평수는 어느 정도인지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조용헌의 백가기행>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인 그는 재산과 신분의 상징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집이 갖고 있어야할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집들은 다양하다.

지리산자락에 있는 시인 박남준씨의 3칸 오두막집, 서울에서 가장 전망이 훌륭한 성북동의 저택, 고요함을 얻기 위해 지하로 파고 들어가 지은 땅집, 수백년 전통이 이어내려온 고택, 독립자금을 지원한 의로운 부자의 집 등은 돈으로서의 집, 신분으로서의 집이란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특히 눈길을 끄는 집은 공사비가 단돈 2만8천원밖에 들지 않은 장성 축령상 자락의 한평반짜리 흙집이다. 스무날동안 주변의 흙과 나무들을 모아 이 집을 지은 주인은 ‘공간이 작아 오히려 생각이 커지고 자신의 내면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집이 소박하면 사람도 소박해진다”면서 “남에게 보여주고 ‘가오’를 잡는 사회적 비용을 위해 그토록 바쁘고 부산하게 살며 자기 인생을 낭비말고 자기를 위해 한가하게 사는 것이 결국 남는 장사”라고 강조한다.

바쁘면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없어 결국 삶이 얇아진다. 얇아진다는 것은 결국 품질이 떨어지는 삶을 산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집을 통해 삶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다실(茶室), 둘째는 중정(中庭), 셋째는 구들장이다.
다실은 어느 공간이라도 차를 끓여 마시는 의식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는 것, 중정은 실내에 작은 정원이나 조그만 연못을 만들어 바깥에 나가지 않고도 내부의 풍경을 보는 것이다.
절절 끓는 구들장은 스트레스와 피로로 뭉친 등짝을 따듯하게 풀어주는 도구다. 잡밖이 아니라 잡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가내구원(家內救援)의 해결책들이다. 생각이 공간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공간이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차를 마시고 정원을 감상하는 것이 생활혁명이라고 한다.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숨차게 사느라 정작 차분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을 못가져 실수를 저지르는 현대인들에게 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기를 정갈하게 준비하고 차를 꺼내고 다기에 담고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적당히 식은 뒤에 적절히 부어 찻물을 우려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고 마음수양이 된단다. 또 작은 화초라도 집 안에 들여 놓아 자연을 접하면 점점 거칠어지고 사악해지는 마음을 자연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으리으리한 가구로 치장해놓고도 정작 밖에서 쾌락과 위로를 구하는 이들, 주택융자금에 짖눌려 사는 이들에게 전국을 누비며 공부하고 고수들과 토론을 통해 얻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가슴을 친다. 마음만 바꾸면, 집에 대한 철학만 확고하면 이렇게 집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연과 평화를 얻을 수 있는데 왜 우린 회색 콘크리트속에서 허덕일까. 왜 남의 시선에 연연하느라 정작 내 삶에 충실하지 못한 걸까. 



책 중에서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선배를 제주에서 만났을 때도 엄청난 위안을 받았다. 그 선배는 제주에서 후배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45평형 복층인데 전세가 4천5백만원이야. 전망도 너무 좋아서 제주 앞바다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니까.”
 
세상에 45평 아파트 전세가 4천5백만원이라니. 서울에선 단칸방은 커녕 7평형 오피스텔 전세금값도 안되는데... 더구나 전망도 기막히게 좋고 공기는 말할 것도 없는 제주 아닌가.

그 선배를 만나고나서 마음과 어깨가 너무 가벼워졌다. 퇴직하고 난 후에 국민연금에만 의존해 살아야하는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큰데다 내 경제규모에 비해 큰 집을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부담스러웠는데 그 선배의 말에 노후 걱정이 사라졌다.      
육지를 떠나 제주도로 갈 필요도 없이 서울을 떠나 100㎞, 아니 50㎞만 후진해도 주택 융자금 빚은 사라진다. 지금 우리집을 판 돈으로 저렴한 집을 장만하고 남은 돈으로 알토란같이 살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에 가숨이 부풀었다.
 
벌써 마음속으로는 물 좋고 산 좋은 어느 시골에 아름다운 황토집을 짓긴 했는데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 삶을 사느라 정작 언제 행동으로 옮길지....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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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피 2010.09.17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함 읽어 보아야겠네요.
    근데... 어느쪽으로 후진하실 지 살짝 알려주심 안 되남요?ㅎㅎ

  2. 유인경 2010.09.17 1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진이 아니라 전진일 수도 있겠죠.
    강원도도 살기엔 좋은 곳이고
    경기도에도 아직 땅값이 안 비싼 곳, 폐교도 많이 있다더군요.
    암튼 늙어서도 집의 노예가 되어선 안될것 같아요...

  3. 백년초 2010.09.18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심히 살오면서 20년만에 내집마련의 꿈을 이뤘는데
    이루자 말자
    재산증식이 아니라 재산감소로 이어지니 참 어이가없네요...

  4. 고수부지 2010.09.18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맞아요~집의 노예가아니라 진정한 주인!

    제주도 앞바다가 내집정원~ㅎㅎㅎ

  5. king size memory foam mattress 2011.12.31 1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객실 끔찍한 아! 사람 사는 방법이 없다는 느낌.

  6. 제주... 2012.03.30 0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주도 살아보면 좋은지 나쁜지 압니다... 공기 좋고 전망 좋아도 나고 자란 고향이 최곱니다. 수도승처럼 살거 아니고 그 땅에서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돈 벌어 먹고 살자면 글쎄요... 또 다른 색다른 경험일 겁니다.

  7. 도라지 2012.07.16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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