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지인들과 정운찬 전 총리를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그 분이 자리에 앉자마자 식당 종업원이 누군가 정 전 총리를 찾아왔다고 전했다. 잠시 후  정 전 총리는 손에 만원짜리 지폐 두 장을 들고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왔는데 돈을 잘 못 줬어요. 택시안이 어두워서 5천원짜리를 준다는걸 5만원짜리를 준거지. 내가 급히 내린 후에야 그걸 알고 그 기사분이 돌려주려고 온 겁니다. 안받겠다고, 괜찮다고 했는데도 굳이 돌려주겠다기에 반만 받기로 절충을 했어요. 그 기사, 참 양심적인 사람이더군요.”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7)

  정 전 총리는 총리공관을 떠난 다음날부터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다닌단다. 서민층을 사로 잡기 위한 정치적 민생 투어가 아니라 관용차는 물론 자가용도 없는 진짜 서민이 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서울대 총장직을 물러났을 때도 다음날부터 택시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교수 시절엔 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별 불편이 없단다.

 차이가 있다면 전에는 알아보는 사람들이 드물었는데 이젠 매스컴에 많이 등장한 전직 총리라 대부분 알아본단다. 타자마자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고 있어도 “혹시 정운찬 총리 아니세요?”라고 물어봐 곤혹스럽다고 했다.

 “아니 전직 총리가 택시나 지하철을 타는게 말이 됩니까. 퇴임후 몇개월만이라도 의전을 해줘야 하는건 아닌가요?” 
 “이제 청문회에 나설 일도 없을텐데 기사 달린 자가용 지원해줄만한 출세한 제자도 없습니까? 서울대 총장에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이 품위를 유지하셔야죠.”
 이런 말들이 쏟아지자 정 전총리는 손사레를 쳤다.

 “품위는 자가용이 세워줍니까. 백수 주제에 택시도 과분하지요. 경제학과 제자들도 대부분 저처럼 교수들이라 자기 살기도 빠듯해요. 그런데 총리를 한 덕분에 많이 유명해졌나봐요. 전엔 신문에서도 저를 ‘정운천’ 장관이라고 이름을 바꿔주더니 이젠 기사분들도 다들 알아보더라구요. ‘많은 일을 하실 분이 빨리 물러나 안타깝다’부터 ‘그런데 대체 그 자리엔 왜 가셨어요?’란 말까지 직설적으로 말을 합디다.. ‘왜 착한 분이 총리직을 맡아 고생만 했냐’고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하는 이들도 많고... ”

 정 전 총리와 친분이 깊은 한 인사는 ‘출옥(?)을 축하한다’며 축배를 제안했다.

 “참 신기한게 그 자리에서 나오니까 정부의 문제점이나 해결방안이 보입디다. 정작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처리해야할 일들과 의례적으로 참석해 얼굴보여줘야 하는 곳을 다니느라 지쳐서 핵심 파악도 힘들고, 민심도 잘 안 들리더군요. 소신껏 일을 하려고해도 훈수를 두는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  
    
 모자를 벗어야 모자의 형태가 보이고 의자에서 일어나봐야 그 의자의 실체를 알게 되듯 권력도 놓았을 때 그 가치와 힘을 알게 되나 보다. 그 분을 보며 새삼 ‘권력’에 대한 생각을 했다. 물론 그분은 권력의 단 맛을 누리긴 커녕 세종시 문제로 비난만 들었고, 권력을 가지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업무라는 자기 사람을 심는 ‘인사’ 조차 하자 못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권력을 누리지 못했기에 그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그는 택시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대체 대통령, 장관, 당 대표, 국회의원이 무엇이고 그들이 소유하는 권력이 무엇이길래 다들 그렇게 영혼까지 팔면서 권좌를 향해 날아오르려 할까. 왜 선거 비용으로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의 돈을 꿔서까지 그 자리에 오르려할까. 그리고 그 돈은 뭘로 갚을지 궁금하다.

 물론 권력과 파워가 좋긴 하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그 어느 명약보다 확실한 효과를 주는 것 같다. 파렴치범도, 중병에 고통받는 이들도 권력이 주어지면 청춘의 활력을 찾으니 말이다.


 비교적 기억력이 괜찮은(?) 나는 과거 유명인사들의 행적을 소상히 알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최고 순수익을 올렸다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등장할 때 난 그들이 탈세나 각종 의혹으로 검찰이나 경찰에 드나들던 모습, 재판정에 출두할 때 휠체어를 타고 수척한 표정을 짓던 모습이 오버랩되어 당혹스럽다.


 감옥에 있을 때는 “건강이 너무 나빠져 죽을 것 같다, 몹시 반성하고 있다”고 선처를 호소하던 정치인이 지금은 산삼이라도 먹은듯 펄펄 날며 한국 정치를 갖고 놀 때, 불미스러운 자신의 과오로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던 이들이 다른 정치인에게 “국민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다그칠 때 권력의 놀라운 효능과 더불어 그들의 메멘토모리, 짧은 기억력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오늘만 존재하는듯 권력의 마력에 도취되어 칼을 휘두르는 이들에게 하루 10분이라도 ‘옛날 신문’을 보길 권하고 싶다. 그들의 선배가 어떤 전철을 밟았는지 잘 알게 될테니 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언행이 낱낱이 역사로 기록되고 현재의 권력으로 봉인된 비밀들은 그 권력이 사라지면 마법처럼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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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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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쏘피 2010.09.19 2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 소리..

    KBS 조영남과 친구들.
    재미 있으셨나요? 나중엔 안 보이시던데요.
    연륜이 느껴지는 자유로움....
    김점선님 장영희님도 하늘에서 행복하셨겟지요.

  2. 유인경 2010.09.20 0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쏘피님의 딴소리에 저도 딴소리...
    주인공보다 초대손님 패티김이 너무 근사했습니다.
    칠순이 넘어서도 완벽히 관리된 날씬한 몸과 누구도 범접치 못하는 자신감.
    결국 사람들은 이목구비나 몸매보다 자신감과 당당함이 더 강한 이미지를 주는 것
    같아요,

  3. 고수부지 2010.09.21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전총리랑 동네주민이신거지요? ㅎㅎㅎ

    패티김 너무 근사하네요~~~~~짝짝^^

  4. 돌쇠 2010.09.23 1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명박대통령은 형님의 옳지않은 훈수와
    찌질한 참모들의 3류 소설같은
    조언에 훌륭한 사람을 대책없이 만든것에 대해 반성해야한다.
    그래,
    겨우 생각한다는것이 정운찬을 내치고
    세대교체론을 들먹여 박근혜를 잡을수 있고
    영원히 권력의 맛을 향유해 보겠다고 낸 카드가
    김태호라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자를 꺼내드는 순간 이 정권은 비극의 종말을 예고했다.
    한나라 정권은 아니 집권자들은
    정운찬카드를 버린것에 대해 두고 두고 족쇄가 될것임을 알게될것이다.

  5. 노광철 2010.09.23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십니다.
    당신은 진정한 교육자였으며
    진정한 정치가 였습니다.
    파이팅입니다.!!
    정운찬 파이팅!!

  6. 이영식 2010.10.03 05: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와 같은 글을 자주 접했으면 좋겠습니다.본문의 수다문을 요즘에 내노라하면서 덤벙거리는 위인?들이 쉽게 접해 읽어 볼 수 있도록 함이 어떨가 하고 댓글을 달아 봅니다.<택시타는 정운찬총리> 라는 본문의 기사를 <수필문학>지에 등재 됐으면 좋으련만 ...... 자주 사이버 상으로도 자주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 김창영 2011.08.31 1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 총리께서는 이임식 끝나고 종합청사를 떠날 때도 택시를 타셨지요. 사진에 보이는 것이 그날 탄 모범택시입니다. 단순히 택시를 타느냐, 자가용을 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사 구분을 명확히 하고, 처신을 분명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택시가 상징하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8. king size memory foam mattress 2011.12.31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의 표현은 좋은 재미 아입니다!

  9. 진보 2012.12.27 1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보수라는 사람들은 그냥 권력에 충성하는 사대주의자 왕정주의자와 같은 사고구조를 갖고 있네요. 전직 장관이 왜 당연히 모셔져야 하는거라고 생각할까요? 택시타는게 정상이지 그게 무슨 기삿거리라고 무슨 품위유지 같은 소리를 하는지.... 품위가 그런 것으로 유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심합니다. 품위는 정직한 인품으로 유지되는 것이죠. 이러니 나라의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조선시대 말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이 전용차를 대접받는 썩은 관행부터 하루 속히 없어져야 합니다. 국회의원들 전용 버스로 한꺼번에 출퇴근 하면 자동으로 출석체크까지 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