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로 알려진 박경철씨는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시간은 절대 직선이 아니고, 하루 24시간 역시 아코디언처럼 얼마든지 늘였다 줄였다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10년마다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데 2000년, 뉴 밀레니엄이 되었을 때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했단다.
돈주고 사는 것은 자신에게 주는 적합한 선물이 아닌 것 같아 아주 특별한 것, 가장 소중한 시간을 선물하기로 결심하고 그 후로 골프, 술, 담배를 끊었단다. 남들과 어울려 골프치고, 술마시는 시간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려준 것이다. 덕분에 그는 베스트셀러 책을 펴내고, 병원일도 하고 청춘콘서트도 참여하고 방송활동도 하면서도 별로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다시 10년이 지난 2010년에는 ‘건강’을 선물하기로 마음먹고, 104㎏이던 체중을 현재 운동을 해서 82㎏로 줄였단다.

박경철 원장. 경향신문DB

시간과 건강, 그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것인데 정작 자신에게는 잘 주지 않는 선물이다.
20여년전에 전업주부로  지낼 때 시간은 참 많은데 단 한시간도 나를 위한 시간은 잘 보내지 못했다. 휴일이나 휴가 때도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가운데 나만을 위해 쓰는 시간은 과연 얼마일까.

자면서도 이런저런 걱정에 뒤숭숭한 꿈을 꾸고, 밥을 먹을 때도 딴 생각을 하고, 남들의 생활에 관심을 보이고,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정작 나와 만나는 시간이 참 적지 않은가.
명상이나 수련 등의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도, 하루에 1시간만이라도 자신과 대화하고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라고 많은 철학자나 성공한 이들이 강조한다. 말이 쉽지 참 힘들다.

“밥 먹고, 샤워하고, 운동하고, 비즈니스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결국 다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닌가?”

그렇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혼자서, 나를 친구삼아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다.
집안의 한 구석이어도 좋고, 사무실의 의자여도 괜찮고, 동네 공원의 벤치여도 무방하고, 카페의 테이블 앞이어도 좋다.

통의동의 한 카페. 경향DB


“요즘 어때?” “잘 살고 있는 거지?” “근데 왜 화가 났어? 뭐가 문젠거야?” “정말 해결책은 없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친구나 멘토에게 물어보듯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답은 타인의 충고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전문가의 조언, 용한 점쟁이의 점괘 보다 결국은 내 안의 자아가 그 답을 결정한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공통의 관심사를 침 튀겨가며 떠들 때는 황홀할만큼 짜릿한 느낌이 든다. 또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가진 어른들과 만나 듣는 통찰력있는 한 마디에서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가족, 특히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은 더없이 행복하다.

하지만... 나와 만나는 나만의 시간도 중요하다. 꼭 엄숙한 자세로 자신을 인터뷰하듯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고현정씨는 모공 하나 없는 꿀피부의 비결을 ‘자신과의 대화’라고 했다.

“타고나길 좋은 피부로 타고 났지만 매일 피부에게 말을 걸어요. 스킨이나 로션을 바를 때도 ‘예뻐져라’하며 바르고, 뾰루지라도 난 날엔 그 뾰루지에게 ‘왜 튀어 나온 거야? 속상한 일 있었어? 내가 잘 다스릴테니 좀 들어가줘’라고 말하죠. 그럼 신기하게도 피부가 진정되더라고요.”

배우 고현정. 경향DB


제주도에 올레길을 만들어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든 서명숙 선배도 산티아고 길을 걸은 후에 자기 고향에 길을 만들었다.
두달 동안 혼자 그 길을 걸으면서, 오롯하게 자신에게 두 달의 시간을 선물해서 얻은 답이 ‘올레’란다. 20여년의 언론인 생활로 찌든 몸과 마음을 다듬고, 제 2의 삶을 멋지게 사는 방법을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 얻은 결과다.

나도 이제 내게 시간을 선물하려 한다. 요즘 특히 선물한 시간이 잠자는 시간이다.
호기심이 많아 밤늦도록 온갖 텔레비젼의 채널을 돌려 보고, 만화책을 읽다가 새벽까지 환하게 밝히고, 아침 방송 덕분에 허겁지겁 일어나느라 항상 수면부족이었다. 그 시간에 전문적인 분야를 파고 들었으면 박사학위라도 땄으련만, 제 때 못본 개그콘서트며 일일드라마, 미국수사드라마 등을 보느라 뇌기능은 마비시키고 몸만 축내고 늘 칙칙한 얼굴로 살았다니... 

그래서 요즘은 절대 12시 이후엔 텔레비젼을 안 보고, 그냥 눈을 감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잠이 든다. 덕분에 피로감이 확실히 줄어 들었다.

그리고 하루에 단 오분이나 십분만이라도 나와 대화를 하려 한다.
예전엔 대부분 “난 왜 이 모양이야” “난 정말 한심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란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이야” 등등 시비를 걸거나 자책하는 말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젠 나에게 자주 아부를 한다. 나라도 나를 다독거려 줘야 내가 덜 불행하고 슬플 것 같아서다. 그래서 화장대에 앉아서, 소파에 누워서, 차 안에서 내게 자꾸 말을 걸어본다.

임의진 목사의 일러스트. 경향DB

“아이구, 눈밑에 잔주름이 늘었네. 그래도 괜찮아. 이건 내가 매일 많이 웃어서 생긴 거야. 화내고 짜증내서 미간에 생긴 주름이 아니쟎아. 자꾸 눈가를 비벼대는 나쁜 습관이 있지만, 그건 좀 고쳐볼께. 그치만 나이 오십 넘어서 너무 팽팽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냐? 랩 씌워서 전자레인지에 넣을 것도 아닌데 말야...”

“왜 감기몸살에 걸려 아픈데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에 가야해? 그냥 친목 모임이쟎아. 다음 날로 연기해서 다시 만나면 되고.. 또 아프면 딸이나 남편에게 식사 준비도 맡기거나 시켜 먹으라고 하면 된다구. 콧물을 훌쩍이며 모임에 앉아서 피곤한 모습 보일 이유도 없고, 너무 챙겨준다고 가족들이 더 고마와하지도 않아. ‘이런 인간들을 먹이려고 내가 아픈데 고생해야 하냐’며 억울해하며 만든 요리가 뭐가 맛있고 영양가가 있겠어? 느긋하게 쉬어...”

“그런데 너무 대책없이 사는 건 아니니? 넋놓고 살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치열하게 살아도 시간은 가지. 하지만 씨를 뿌려야 싹이 나고 열매도 맺히는데, 피곤하다고 너무 대충사는건 아닌지... 이제 노후 준비를 해야지 않겠어? 내 심장이 간질간질한게 뭘까, 내가 가슴이 벅차서 매진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경향DB

내게 주는 시간이 특별한 순간은 아니다.
그저 하루에 한 번 고개를 들어 이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게 해주는 것, 국화 몇송이라도 사서 가을꽃 내음을 흠뻑 만끽하게 해주는 것,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 귀를 호강시켜주는 것 등등 자신에게 감탄사를 선물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처럼 평화롭고 충실하게 잘 보낸 하루가 평온한 잠을 부르듯, 매일매일 잘 살아낸 나날들이 아듬다운 죽음을 가져올게다.
나와 잘 화해하고 잘 지내야 남은 삶을 평화롭게 보내고, 죽는 순간에도 덜 억울하지 않을까. 타인이나 이 세상보다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일 것 같아서 난 내게 자주 선물을 주려 한다. 이건 절대 뇌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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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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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미량 2011.09.20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참 많이 공감합니다.
    저도 지금부터 저와 대화를 시작해 봐야 할것 같습니다.

  2. 산마루 2011.09.20 1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우연히 알게된 유기자님의 글을 읽고 여기까지 찾아와서
    광팬(?)이 되었습니다. 지난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어쩜 그리 글을 잘 쓰시는지
    계속 고개 끄덕이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와도 되겠죠?? 건간하세요.

  3. 젊은 피 2011.09.20 1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청춘콘서트에서 법륜 스님과 박경철 원장이 한 대화가 떠오릅니다. 법륜 스님이 예전에 박경철 원장에게 "박 원장님, 바빠 보이십니다. 그런데 그 여러 일 중에 원장님을 위한 일, 원장님이 주인인 일은 얼마나 되십니까?" 물으셨다는 군요. 저 역시 저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어야겠습니다. ^^

  4. 목련 2011.09.20 1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기만 했는데 대화를 한 느낌이 듭니다.
    진솔하게 와 닿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5. 네병 2011.09.21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6. 복숭아 2011.09.21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누리고자하는 삶의 희망이겠죠. 그이야기를 표현해주신 유인경님께 고맙다는 인사 드립니다. 꾸벅유~~^^

  7. 복숭아 2011.09.21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누리고자하는 삶의 희망이겠죠. 그이야기를 표현해주신 유인경님께 고맙다는 인사 드립니다. 꾸벅유~~^^

  8. 장길산 2011.09.21 2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저녁 모처럼 인생을 얘기할수있는 친구와
    북한강변에 나가서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었지요.
    각자 자기에게 가장 충실한 대화들을...

  9. 요세피나 2011.09.22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이 올때 많이 주무세요
    더 나이가 들면 잠도 잘오지 않아요^*^

  10. POP 2011.09.22 19: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따라 유난히 성찰의 느낌이 드는 글을 주셨네요. 나에게 주는 시간이라는 선물, 건강이라는 선물, 너무 마음에 와 닿음과 동시에 게으름이 참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공감하고 갑니다.

  11. 똘똘박사님 2011.09.23 17: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경님 첫아이를 유산하고 한동안 우울증에 힘들었을때 인경님의 책을 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요즘은 '수다의 힘'을 읽어내려가며 느끼는 시간이 제가 받고 있는 소중한 선물이네요. 나에게 말걸기 오늘부터 시작할래요~~

  12. 낮은울타리 2011.09.24 1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년전 일년동안 열심히 공부한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저에게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옷 한벌 사입었습니다.^^ 올해는 지금까지 잘 지내온 나에게 주는 선물로 평소에 가장 만나고 싶었던 분을 만나러 갑니다. 행복합니다

  13. 유인경 2011.09.24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낮은울타리님, 평소 가장 만나고 싶던 분을 만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이자 행운인지요.
    만나고싶은 분들이 너무 바쁘거나, 이 세상에 안계시거나, 혹은 저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거든요.자주자주 선물주셔요...

  14. 븟신 2011.09.26 14: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가들면 초저녁잠이 많아 12시는 커녕 저녁10시 넘어 하는 프로는

    죄다 스토리전개가 안될정도로 초반부만 보게되던데...

    남다른 젊음을 유지하고 계시는군요. ㅋ

  15. 유인경 2011.09.26 16: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몸이건 뭐건 딴건 다 나이값을 하는데 텔레비젼이나 만화를 즐기는 취향은 여전히 젊네요.ㅋㅋ

  16. 박할머니 2011.09.27 04: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경님,
    그런데요 사실 시간을 나에게 특별히 주지않아도 이 나이가 되니까 더 참을 몸에 힘이 빠저서
    시간을 많이 나에게 주게 되네요.
    젊었을때에 내 어머니가 갑자기 드러누워서 일이십분씩을 계실때에 몸이 약한 어머니를 이해하면서도
    좀은 이상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무슨일이 있어도 졸려울때에는 한 20분 자고 나야 움직일수가 있더군요.
    그러니 몸이 힘든것을 참으면서 일을 하는것도 젊을때의 일인것 같아요.
    요즈음은 생활환경들이 좋아저서 65세까지는 그런대로 힘이 있더군요.
    지구력도 건강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 됩니다.

  17. 고수부지 2011.09.30 1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렇게 예쁘고 총명한거니?스스로에게 말하고계시는 중?ㅎㅎㅎ

  18. foam mattress 2011.12.21 2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에게 선물, 선물 같은 일부 아름답습니다 선물을주세요.

  19. 김정순 2011.12.29 0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이 들러 ...
    참으로 요즘 저 에게 와닫는 글이었습니다...
    속시원이...정리된...
    감사합니다.

  20. 바람 2012.02.16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나에게 선물을 꼭 산다
    사다가 괜찮다고 느낄때는 몇개를 더 사서 모임이나 친구를 만날때 선물도 한다.
    작은것에 행복해하고 나눔의마음 누가 나에게 선물 해주기를 바라지말고 ....
    돈안드는 돈주고 살수없는 시간과건강을 나에게 선물 ㅎㅎ
    아주 좋은글 보며 실천해봐야겠습니다.
    세수후 거울보며 이쁘다고 만족해했는데...
    이제는 대화도 나누어야 겠습니다......고현정처럼
    모두들 재테크에는 관심있지만, 時 테크를하면 따라오는게 있어요 줄줄이....
    2월의중순 년초의계획도 다시 살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