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연일 코스피지수가 뚝뚝 떨어져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기가 치솟는 곳이 있다. 샤넬, 루이비통 등 서울 강남의 프랑스패션 매장이다. 가격이 자꾸 올라 ‘샤테크’(샤넬 가방을 사두는 재테크)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바네사 부르노, 산드로, 이자벨 마랑 등 프랑스산 옷들도 매출액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느는 곳이 한국시장이다.

경향신문DB



드라마·영화·책 등 곳곳에서도 ‘프렌치 시크’(꾸미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파리 여성들의 스타일을 일컫는 조어)란 용어가 대세다.

‘무심한 듯 시크한 공항패션으로 프렌치 시크의 정수를 보여주는 고소영’ ‘프렌치 시크풍의 세련된 코디’ 등 난해한 문장이 매스컴을 도배하고 스카프를 즐겨 매는 파리지엔을 흉내 내느라 한여름에도 민소매 셔츠에 스카프를 두르는 이들도 많다. 프랑스인들처럼 근사하게 멋내기에 대한 책도 최근 수십종 쏟아졌다.

‘프렌치 시크’의 실체는 무얼까.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프랑스에서 사는 미국인 칼럼니스트 데브라 올리비에는 <프랑스 여자들이 알고 있는 것>이란 책에서 “프랑스 여성들이 멋져 보이는 것은 프랑스 명품 덕분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사회풍토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졸리 레이드(jolie laide)’다. 일반적 기준에서 벗어난 미인, 비전형적으로 예쁜 여자, 불완전하고 미인의 전형적 기준을 거부하기 때문에 오히려 매력적인 여자들을 뜻한다.

프렌치 시크는 하루 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왕실을 뒤흔들었던 마담 드 스탈을 비롯해 연애의 대명사인 작가 조르주 상드, 샤넬룩을 창조한 패션디자이너 코코 샤넬 등이 대표적이다.

자로 잰 듯한 미모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세상,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여러 가지 뉘앙스와 회색지대와 모순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 예쁘지 않아도 매력적이라고 평가받는 관대한 풍토가 프렌치 시크의 모태다.

파리에 가 보면 정작 고가의 옷이나 백을 든 여성, 비슷한 화장을 한 여성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강남에 가 보면 한 집 건너 하나인 성형외과마다 “V라인 얼굴, S라인 몸매, 오똑한 코, 크고 둥근 눈을 만들어드려요”란 판박이 문안이 결려 있고, 여대생들도 아르바이트를 하건 부모 지갑을 털건 샤넬·루이비통 핸드백이 필수품이다.
이처럼 전형적이고 획일화된 세상, 예쁘지 않은 것은 죄악으로 여기는 사회풍토에서 개성을 박탈당한 이들은 아무리 프랑스 옷과 가방으로 몸을 감싸도 절대 프렌치 시크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너무나 남의 시선에 신경쓰고, 사회규격에 스스로를 가둔다. 프렌치 시크, 그건 국적과 상관없는 자유주의가 아닐까.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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