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누군가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면 잘 못 알아 듣는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는 휴대폰 탓인지, 혹은 나이가 들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증세인지 궁금했는데 주범은 드라마였다.


매일 아침 방영되는 드라마부터 주말 저녁에 보는 주말극까지 출연자들이 너무 그악스럽게 소리를 질러대고, 흥분하고, 목소리가 너무 크다. 텔레비전의 음향을 줄여도 별로 효과가 없을 만큼 엄청난 데시벨을 자랑한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MBC 아침 드라마 <사랑했나봐> 시청자 게시판의 글을 보고 위안(?)을 얻었다.


“아침마다 엄마가 이 드라마 본다며 틀어놓으면 최선정(김보경·사진)이 하도 악을 써서 아침에 절로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 자명종이 따로 필요없다.” “평생 욕 한마디 하는 걸 보지 못한 울 아버지…오늘 선정이보고… ‘아…저 X 정말…소리좀 지르지 말라고해!!’ 멘붕이었다…이 나쁜 작가!! 울 아버지 성격을 이렇게 망칠수가 있느냐 ㅠㅠ.”



<사랑했나봐>



<사랑했나봐>의 최선정은 자기 욕망을 위해 자식을 바꾸고, 사기를 치고, 살인교사를 하는 등 온갖 악행을 일삼는 악녀인데 자신이 궁지에 몰리거나 화가 날 때마다 짐승이 포효하듯 큰소리를 지른다. 거의 발악 수준이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수시로 주변의 집기를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는 것으로 화를 표현한다.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도 마찬가지다. 김주리(윤아영)는 세윤(이정진)에게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 그와의 약혼식이 취소되자 패닉 상태에 빠진다. 더구나 이정진이 과거 자신의 올케였던 유진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이럴 수는 없다”며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고 광란의 발작 상태를 보였다. 


다른 드라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설픈 악녀나 나쁜 남자들은 수시로 핏대를 올리고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쓴다. 이들은 대체 어디에서 연기를 배운걸까. 마구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엔 분노나 증오심, 화를 표현할 줄 모를까. 눈을 희번덕거리거나, 입가의 근육을 씰룩거리는 것이 인간이 화를 낼 때 지을 표정의 전부일까. 작가나 연출자는 왜 연기자가 그런 연기를 지속해도 지도를 해주지 않는 걸까. 종방한 SBS 월화극 <야왕>의 수애처럼 차분한 목소리에 마음이나 생각을 알 수 없는 서늘한 표정을 지어야 진정한 악녀가 아닐까.


시청자들의 청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난과 짜증이 제작진들에게는 즐거운 소식일 수 있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시청률이 높으니 말이다. 얼마전 만난 야구 해설가 하일성씨도 “아침 드라마 최선정 때문에 혈압이 오른다”면서도 “그래도 꼭 최선정이 망하는 장면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어쩜 이런 소음 드라마를 장려하는 건 제작진이 아니라 욕하면서 보는 나 같은 시청자일지도 모른다. 방송사에 보청기라도 달라고 주장해볼까.


Posted by 유인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3.05.01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전상철 2013.05.02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들어와서 낛인줄 알았는데 고개 끄떡이며 앞으로 단골 될것같은 예감을 지니고 나갑니다.

  3. 미쓰맥 2013.05.03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는 드라마 끊었어유~

  4. 꽃사슴 2013.05.04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드라마 정말 왜 만드는지 모르겟어요. 어제 아침 채널 mbc로 한번 돌렸다가 너무 시끄러워서 얼른 텔레비젼 전원을 뽑아버렸네요

  5. 한명희 2013.05.11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흥미진진한 막장 드라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얼굴을 들수없게 만드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은 그 이름도 찬란한 윤창중이고
    각색은 이남기,
    그럼 총감독은 누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