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감동적인 역전 드라마를 쓰겠다”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의 바람은 이뤄졌다. 선거 초반 지지율은 4% 정도. 꼴찌였다. 지명도가 높지 않은 게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조금씩 지지율이 오르더니 선거 결과 40% 가까운 지지율(39.2%)로 당선됐다. 9회말 역전 홈런을 날린 셈이다. 어떤 이들은 “꼴찌의 기적”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어부지리의 승리”라고도 한다.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앵그리맘의 지지 등 시대의 요구라는 분석도 있다.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등장한 가운데 수도 서울의 교육을 책임질 그의 행보에 더 큰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주목받고 제일 드라마틱하게 당선된 조희연 신임 서울시교육감을 만났다.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학계에서 활동하던 ‘숨은 얼굴’이었는데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 는 교육감에 나설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못하겠다고 한 달 동안 도망다녔어요. 현직 민교협 의장으로서 교육계를 대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민주진보진영 내의 여론이 컸지만 전 계속 고사했습니다. 3월 3일 공식 출마선언을 하기 이틀 전까지 출마 준비 대신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을 기획했어요. 출마 압박이 거세져서 아예 휴대전화기를 꺼두고 도망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진보적 교육계 인사들을 접촉해 그들의 출마를 타진했죠. 다른 후보를 찾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진보계 교육감이 당선될 확률도 낮고 경선도 거쳐야 했으니까요. 가까운 지인들도 제가 교육감 선거에 나가는 것을 반대했지만 ‘일평생 학술운동, 교육운동, 시민운동, 인권운동을 해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교육개혁을 해보라’는 요청도 강해서 나온 겁니다.”

이번 선거에서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중 3분의 2가 넘는 13명의 진보성향 교육감이 당선됐습니다. 교육감은 정당 소속이 아니긴 합니다만 전국적으로 진보 교육감의 승리가 무얼 의미할까요.
“시 대상황이 반영된 것 아닐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이 투표로 표현되었다고 봅니다. 더 이상 무한경쟁, 미친 경쟁으로 학습만 강조하는 교육은 안 된다는 학부모들의 뜻이 표출된 것입니다. 교육계가 이렇게 학생들과 부모의 무한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데도 오히려 그 착한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획일화된 교육과 무능하고 무심한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보 교육감들의 대거 등장에 불안해하는 학부모들도 많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편견도 여전합니다.
“우 선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교육행정의 80% 정도는 당연히 유지됩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60%의 의견도 수렴하고, 교육은 안정성이 중요한 만큼 2기 진보 교육감 시대엔 균형있게 반대 목소리를 담아내는 노력을 할 겁니다. 교총과도 대화할 예정인데 ‘작은 학교 살리기 캠페인’ 등은 공동으로 할 생각입니다. 상대후보였던 고승덕 후보나 문용린 후보의 좋은 정책도 받아들일 생각이고요. 전교조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보수언론에서 전교조를 악마화하는 전략을 써서 그런 왜곡된 편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전교조가 없어져야 참교육이 이뤄집니까? 우리 교육이 그래도 이만큼 성장한 것은 전교조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입니다. 

공 문 작성에 시달리고 교재대로만 수업하던 수동적 교사들이 능동적 교육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전교조 영향이 큽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법외(法外) 노조’ 통보를 하고 19일에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한국이 다원사회로 가고 있는데 사법부가 균형추 역할을 해야죠. 8만여명의 전교조 교사를 배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만약 전교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 독재정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른 의견을 갖는 집단과도 소통하는 민주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이번 진보 교육감의 대표적 공통 공약이 자율형 사립고 폐지입니다. 조 교육감도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표적으로 실패한 교육정책이므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대부분 일반고로 전환시키겠다’고 했는데, 무조건 폐지가 상책일까요. 이것 역시 획일화가 아닌지요.
“자 사고 폐지 정책의 출발점은 자사고를 죽이자는 게 아닙니다. 특목고와 자사고로 인해 2류로 전락한 듯한 박탈감을 느끼는 일반고를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입시명문·특권학교로 변질되고 돈에 의해 진입장벽이 쳐진, 입시만을 중시하는 자사고가 공교육 전체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공감합니다. 자율교육을 추구하면서 건전하게 운영되는 자사고, 이를테면 특정 종교 교리에 따라 운영되는 비리 없는 건전한 자사고는 평가 결과에 따라 유지될 수도 있어요. 교육감이 강제로 폐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1차 주무기관은 교육청이지만 교육부와 협의해야 합니다. 이미 교육부가 제시한 자사고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교육 불평등,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인수위에서 정밀히 검토할 것입니다. 자사고가 일반고로 바뀌더라도 신입생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재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기존 자사고 교육과정에 맞춰 교육을 받게 될 테니 학생과 학부모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혁신학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확대를 강조하던데요.
“쉽게 말하면 학생은 좋은 교육을 받고, 교사는 참교육을 하는 학교가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아이들의 자기주도권 학습능력을 개발하고, 창의력을 키워주는 학교입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반장도 안 뽑고, 일제고사 기말고사 등 모든 시험이 없어요. 경쟁시스템이 없으니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즐겁게 공부하고 학교가 재미있어집니다. 교사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줘서 실험적인 교육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중·고교로 가면서 입시 중압감 때문에 다들 꺼려 합니다. 현재 서울시내에 초·중·고등학교 다 합쳐서 1300개 정도의 학교가 있는데 혁신학교는 67곳밖에 없어요. 그래서 일단 일차적으로 한 200개 정도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혁신초등학교에서 중·고 대학으 로 이어지는 혁신학교 계열화를 구상 중입니다. 그리고 사실 일반 학교가 교육시스템을 바꾸면 혁신고가 됩니다. 저희가 제1공약으로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혁신학교는 기본적으로 일반고를 활성화시키고 공교육을 활성화시키는 하나의 모델 실험입니다.”



두 아들도 외고 출신인데, 자유경쟁 시대에 무조건 ‘평등’이나 수월성만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물 론 평등한 교육과 더불어 영재교육도 공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자사고, 외고 등 특목고가 귀족학교가 되어 블랙홀처럼 학생들을 끌어들이면서 너무 규모가 커져 본래 의미를 상실했고, 공교육 전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자사고의 경우 학생의 능력보다 학부모의 경제력, 즉 돈이 진입장벽입니다. 사회적 배려대상 제도가 있다 해도 그 중의 일부 한 가정 등 상류층이 가져갑니다. 과거 60~70년대 압축적 근대화 시대에나 필요했던 교육제도는 이제 사회개혁과 함께 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은 동질성이 가장 큰 화두여서 학력간·학벌간 보상 차이와 불평등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평등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교육에 대한 기대도 너무 크고…. 절대 계층간 차이에 순응하는 국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대학 진학률도 너무 높고, 의무교육 시간에 배워야 할 문학·예술·체육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창의적인 감성교육 대신에 암기만 하는 공부벌레가 됩니다. 문화적 상상력이 국제경쟁력인 시대인데 그건 입시에 나오지 않으니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죠. 혁신학교가 확산, 정착되는 것이 해법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교육제도가 달라지고, 교육주체인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도 정작 학부모들이 호응을 해주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무한경쟁을 시키는 이유는 학력과 학벌만 강요하는 부모들 때문인데, 학부모 교육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번 세월호 참사가 국가적 비극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 ‘당신은 학부모입니까, 부모입니까’란 질문을 던져 학부모에서 부모로 바뀌는 계기, 학습의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며 노는 시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다 희생시켰는데 남는 게 뭔가란 회의를 가지면서 다른 교육, 참교육에 대한 열망이 확대된 거죠. 학부모 교육의 경우 정부나 교육청보다 자발적 토론과 공감대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원을 해줄 뿐입니다. 노원구 상원초등학교의 어버이 모임 등이 아주 모범사례인데, 아빠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아이들과 아빠가 함께 놀면서 아이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혁신학교를 만든 동력도 그런 부모들의 자발적 호응 덕분이고요. 이제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1등 성적이나 명문대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행복하게 창의성을 키우고 적성을 찾도록 돕는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참여연대를 함께 만드는 등 시민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는데, 일각에서는 조 교육감마저 정치권에 들어가 정작 ‘시민사회의 고갈’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다 정치권에 가면 누가 소를 키우냐는 거죠.
“사 실 저도 그걸 걱정했습니다. 박원순 시장과 1994년에 참여연대 창립을 한 것은 제 인생에서 정말 행복했던 순간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 것이 역사적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시민단체가 건강하고 바르게 사회와 정부를 감시해야 국가가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시민사회는 저수지라는 저수지론을 강조하곤 했는데요, 물이 풍부해야 흘러넘친 인재들이 정당이나 행정부에 가서 우리 사회를 맑게 한다는 뜻입니다. 정작 물이 너무 흘러나가 저수지가 점점 말라가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교육감의 경우 정당 소속은 아니지만 이제 정치인이 된 셈이고, 감시해야 할 역할에서 감시받아야 할 자리로 간 것에도 엄준한 책임감을 느끼고요. 하지만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진 이들이 계속 시민단체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교 육감 인터뷰를 한다니까 다들 자녀교육법을 궁금해하더군요. 둘째아들이 다음 아고라에 쓴 글과 두 아들이 ‘우리 아버지를 도와주세요’라고 쓰인 피켓을 든 선거운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죠. 상대 후보 딸이 ‘우리 아버지를 절대 교육감으로 뽑지 말라’는 글이 공개되어 더 비교되기도 했고요. 평소 아들 교육을 어떻게 했습니까.
“아이고, 너무 과대포장됐고, 오해를 받아 곤혹스럽습니다. 저와 상의없이 아들이 쓴 글을 읽고 저는 좀 부끄러워서 선거 홍보용 으로 쓰기를 말렸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반듯하게 자라준 것은 엎드려 절할 만큼 고마운데 제가 마치 반듯한 아빠의 표상이 된 것 같아요. 저도 수업·집필에 단체활동 등으로 교수 중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이고, 대학생인 두 아들은 저보다 더 바쁩니다. 오히려 제가 ‘주말에 맥주라도 같이 마시자’고 사정사정을 해야 겨우 만나줍니다. 두 아들이 다정다감한 성격도 아니고 실상 소 닭보듯 하는 부자 사이랍니다. 다만 평소에 부모가 아이에게 한 말, 행동, 보여지는 태도가 아이의 성격이나 인성, 사고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전 자유방임형으로 아이들 뜻을 존중하며 키워요. 아이들이 어릴 때 ‘용돈을 아껴 시민단체에 기부해라’란 말을 한 것도 벌써 잊었거든요. 다만 아빠는 못 그랬지만 너희는 교수의 자제이니 이미 기득권이다, 사회와 이웃을 위해 이타적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은 수시로 강조했죠.”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인 것 같아 송구하지만, 이번 선거로 빚은 안 졌나요. 곽노현 교육감도 선거비 때문에 물러나서 좀 걱정스럽습니다.
“아 직 정확히 결산이 끝나지 않았지만 빚을 졌습니다. 선거공영제 영향으로 선거비용이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어 큰 돈은 아니지만 제법 빚을 지게 되었죠. 집사람에게 ‘1년 정도는 월급으로 갚아야 할 빚이 생겼다’고 했다가 바가지를 긁혔습니다.”

상대 후보 가족의 ‘막장드라마’ 덕분이건 두 효자가 연출한 ‘홈드라마’ 덕분이건 조희연 교육감은 이제 서울시의 참교육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어떤 일에도 쉽게 흥분하거나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는 조희연 교육감. 사실 이렇게 온순해 보이는 사람이 속내는 더 깊고 무섭다. 그가 이 미친 입시경쟁시대에 무섭게 교육개혁을 해주길 기대한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