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기사나 칼럼은 물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도 ‘드라마가 저질이다’ ‘막장이다’ ‘상상력이 빈곤하다’ 등 여러분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우리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 권력층 비리, 새파란 20대 후반의 재벌 2, 3세가 가득합니다. 한국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라는데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와 한국인을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작가적 고민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란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사건을 통해 작가들에게 부족한 것이 상상력이 아니라 취재력이고, 드라마보다 더 우리 사회가 막장임을 알았습니다. 막장 드라마의 대표주자인 <아내의 자격>에서 여주인공이 뺨에 점 하나만 붙인 뒤 전혀 다른 인물 행세를 할 때 우리는 작가의 무모함과 뻔뻔함을 비웃었습니다. 세모의 유병언씨가 과거 오대양 사건 후 잠적했다 홀연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변신해 사진 한 점을 5000만원이나 받고 판 것에 비하면 점이라도 붙인 드라마 여주인공은 양심적입니다. <황금의 제국>에서는 재벌회장인 아버지가 자녀에게 마치 과자나 장난감을 나눠주듯 “백화점은 네가 해라” “건설회사는 둘째가 맡아라”라고 합니다. 진짜 한국 재벌들도 대부분 자녀들에게 고루 나눠줬습니다. 지난주 막을 내린 <신의 선물>에서는 대통령 아들의 살인죄를 덮기 위해 대통령 부인과 권력층이 폭력배까지 동원해 유괴와 살인을 저지릅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선량한 시민은 그저 소모품입니다. <골든크로스>란 드라마에서는 ‘먹튀’란 신조어를 만든 ‘론스타’란 회사가 떠올려집니다.

오대양사건과 관련 대전지검에 소환된 90년대 당시 유병언 세모사장 (출처 : 경향DB)



작가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막장사회를 정화하기 위해 순수하고 아름다운 드라마를 쓰시는 것도 좋지만 더욱 열심히 취재해서 탐욕에 가득찬 기득권층의 비리를 세밀하게 그려주시기 바랍니다. 드라마에서 자신들의 추악함을 그린다고 권력층이 자성할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국민들은 자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풀어놓은 나사를 조이고, 투표나 시민운동을 통해서 스스로 바로 서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황금의 제국>에서 재벌회장은 후계자인 딸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거라”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말할 차례가 아닐까요. “착한 국민이 되려고 하지 말자. 권력층이 두려워하는 국민이 되자!”

유인경 선임기자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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