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20첩 반상 등 반찬이 가득한 식당에 가면 무얼 먹을지도 고민스럽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성의 없는 반찬들 때문에 “차라리 설렁탕이나 먹을걸”하고 후회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도 너무 다양한 주제를 한꺼번에 다 보여주려다 자칫 산만해지거나 맥이 빠진 작품들이 많습니다.

KBS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이런 기우를 말끔히 씻어주는 작품입니다. 한국 교육제도의 문제점, 성적과 태도로 차별받는 자매, 본처와 내연녀의 갈등, 문화상류층의 허세와 위선 등을 20대부터 80대의 쟁쟁한 연기자들이 펼칩니다. 그런데도 비빔밥처럼 각 재료의 맛은 살아나면서도 잘 어우러져 맛을 냅니다.

이 드라마는 채시라가 “대본에 우물이 있는 것처럼 샘솟듯이 나온다”고 칭찬한 김인영 작가와 <내딸 서영이> 등 시청률을 보장하는 유현기 감독의 팀워크도 좋지만 김혜자·장미희 커플의 능청맞은 연기가 압권입니다.

KBS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한 장면


중병을 앓는 내연녀 장미희와 본처인 김혜자의 환상의 궁합이 매번 감탄을 자아냅니다. 요리솜씨로 고관대작 부인에게도 돌직구를 날리는 김혜자는 다양한 표정과 힘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대사로 장미희에 대한 애증을 표현합니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독특한 목소리와 그윽한 눈매로 비현실적인 인물을 창조하는 장미희는 아마도 이 드라마에서 장모란 역으로 출연작 중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든 것 같습니다.

결혼기념일에도 장미희를 만나러 가는 남편에게 진수성찬을 싸주었다는 현모양처 김혜자는 음식에 설사약과 세제를 넣어 뒤통수를 치는 ‘착하지 않은’ 여자입니다. 김혜자는 장미희를 보자마자 발차기를 날리고 입술을 실룩대며 “꼴값을 하십니다”란 비아냥을 퍼붓지만, 죽을병에 걸린 장모란을 데려와 보살핍니다. “언니라 부르지 말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김혜자에게 “그럼… 이모라고 부를까요?”라며 눈치를 살피다가 식사자리에서 “한마디 하라”는 말에 “아름다운 밤입니다”라고 자신의 유행어를 드라마 대사로 표현하는 것은 장미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출생의 비밀과 불륜으로 가득한 막장 대본, 손발이 오그라드는 민폐연기의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모처럼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제대로 대접받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겉으론 착하지 않아 보여도 속내는 진짜 착한 여자들의 열연 덕분입니다.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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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원섭 2015.04.21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모처럼 tv드라마 볼 생각을 해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