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후배가 소개팅을 했다. 상대방의 조건과 스펙이 거의 완벽했다. 흔히 말하는 학벌, 직업, 집안이 속된말로 빵빵했다. 그런데 두번쯤 만나더니 안만난단다.

“글쎄 코를 킁킁거리는 습관이 있더라구요. 특히 좀 긴장하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더 자주 킁킁거려요. 그게 너무 거슬려서 더 만나기 싫어요.”

세상에 코를 킁킁거린다는 이유로 그 완벽한 조건의 남자에게 작별을 고하다니...

“나중에 후회할 거야. 그런 남자를 다시 만나란 보장없단다. 게다가 24시간 킁킁거리는 것도 아니고 긴장하거나 진지해지면 그렇다며? 네가 아직 어려 잘 몰라서 그런데 결혼해서 살다보면 부부 사이에 그렇게 진지한 이야기할 일 별로 없어. 내 친구들도 박사에 학자랑 결혼해도 변비다, 소화 안된다, 애들 성적은 어떠냐 등등의 이야기만 한다더라. 절대 지구온난화라거나, 촘스키나 들뢰르를 주제로 말하지 않아.
그리고 그런 증세를 보이면 병원에 가서 비염인지, 뭔지 진찰을 받아 고치면 되쟎아. 그리고 긴장할 때마다 코를 킁킁거린다면 거짓말할 때 금방 탄로날테니 얼마나 좋으냐?”




노파심에 이런 속물적인 주장을 피력했으나, 후배의 결심은 단호했다.

“코를 킁킁거리는게 아주 사소한 일이란건 알아요. 하지만 그 사소함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니까요.”

맞다. 인간은 늘 거대담론을 주장하지만 정작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존재다.

내 친구는 외국계 기업의 임원들을 컨설팅해주는 일을 한 적이 있다. 사원복지의 일환으로 임원들에게 현 직작 생활에서 무엇이 애로사항인지, 그리고 만약 이직을 원한다면 어떤 곳으로 옮기고 싶은지, 퇴직후에는 어떤 플랜을 갖고 있는지 등을 상담을 통해 잘 들어주고 조언을 주는 일이다.

그런데 억대 연봉을 받고, 화려한 이력서를 자랑하는 그 임원들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애로사항이 참 사소했단다. 회사의 시스템이나 근무환경, 과다한 업무 스트레스 등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단다.

“사장 명함엔 금테가 둘러져 있는데 내 명함은 밋밋합니다. 어디 가서 함께 명함을 내밀 때마다 차별화가 되어 은근히 자존심이 상해요. 그렇다고 내가 따로 금박 명함을 찍을 수도 없고...”

“이번에 새로 상무이사가 들어왔는데, 그 사람 전용차가 제 것보다 더 좋더군요. 연봉을 얼마 더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남들도 다 모르는거고, 자동차는 다 보이는건데... ”

명함의 금테와 자동차의 크기 때문에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고 이직을 결심하고 싶어진다니 참...



그런데 ‘사소함’과 그로 인한 ‘무심함’이 인생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는 걸 알았다.

얼마전 한 주부가 <난 17만5천원짜리 입니다>란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됐다. 지난 11월에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조사 작업에 참여해 가가호호를 방문했다가 본드를 흡입한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했단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한 다음 휴대폰으로 친구에게 전화해 경찰에 신고해달라는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치명적인 일은 겪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충격을 받아 겨우겨우 잊으려 했는데 어느날 통장을 보니 17만5천원이 입금되어 있더란다. 알아보니 ‘강간미수를 당할 뻔한 위로금’을 자치단체에서 지급한 것.
원래 70만원의 위로금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이번엔 4명이나 위로할 일을 당해 4등분해서 나눠줬단다. 그 전에 아무런 위로 전화도 통보도 받지 못한 그 주부는 “겨우겨우 마음을 다스렸는데 이게 뭐냐”고 심정을 토로했다.  담당공무원의 말은...

“위로 전화를 드려야하는데 사실 그런 말씀을 드려 그 사건을 환기시키는 것도 그렇고해서 깜빡했다가 뒤늦게 돈을 지급했습니다.”

100배인 1700만원을 받는다고해도 그날의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게다. 그저 “아유, 너무 놀라셨죠. 나라를 위해 정말 좋은 일을 하시려다가 봉변을 당해 저희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그래도 너무 지혜롭게 대처하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소액이지만 그래도 나라에서 이런 돈이 나왔으니 너무 노여워 마시고 받아주세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란 2,3분 정도의 말만 전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소함으로 그 여성은 국가에 대한 원망까지 하게 되었다.

모 유명인사도 주위에서 한동안 따돌림을 당했다. 주위사람들에게 남들을 소개할 때, 나름 재치있게 한다고 한 소개법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줘서였다.
 
“음, 이 사람은 작년 11월에 이혼했어. 따끈따끈한 돌싱이지. 그리고 이 친구는 마흔인데 아직 미혼이야. 숫총각인지는 잘 모르겠고... 또 저 친구는 쌍꺼풀 수술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지...”

그러다 어느날, 한 여성이 정색을 하고 따졌다. 
  
“선생님. 제가 이혼한게 저를 설명할 유일한 문구인가요?  이혼이 죄에요? 선생님은 웃자고 한 말이지만 전 굉장히 기분나빠요. 그럼 저도 선생님을 소개할 때 ‘얼마뒤면 성희롱으로 고소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다행히 그 인사가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했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2011년도 벌써 1주일이나 지났다. 작심삼일도 두 번 할 시간이다.
올해는 커다란 목표나 엄청난 일을 꿈꾸기보다 내가 이런 사소한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사소하게 여겨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를, 사소한 안부 전화나 감사 전화를 잊지 않고 꼬박꼬박 챙기기를, 남이 보낸 문자도 씹지 않고,  사소하게 생각한 말이나 글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안티를 만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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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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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5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길라임 2011.03.07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보니 갑자기 대학시절 제가 싫어하던 교수님이 생각나는군요..
    자신은 농담인 듯이 말씀하셨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자신의 기준에 비춰 부족한 학생들을 약간 비웃기라도 하시듯 학생들을 설명하는 문구들이 위의 글 마지막과 비슷했습니다. 예를 들어 "ㅇㅇㅇ는 다른 건 신통찮은데, 인간 관계 하나만은 좋은가 보군." 또는 "xxx는 수업시간에는 늦는데, 밥 먹을때는 일찍오는군." 등등..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그런식의 평가를 하시는 것을 들으며 항상 속으로 분노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더이상 무고한 학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실수를 하지 않으시도록 한말씀 드리고 졸업했어야 했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아직도 저에겐 그 교수님께 들었던 저를 수식하는 문구가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되고 있으니까요..

  3. craftmatic adjustable beds prices 2011.12.28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라인드, 아, 지금도 널리 사회 현상, 연료 보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