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또 한 살을 더 먹습니다.
오십이 넘고보니 제 나이를 제 입으로 말하면서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나이 숫자는 늘어나도 제 인품과 포용력, 그리고 실력은 더불어 늘지 않아 슬픕니다.
하오나 제가 나이값은 못 하더라도, 주변의 존경은 못받더라도 
민폐를 끼치며 용렬하고 고지식하게 늙어가지 않기만 바라옵니다.

부디 뭔가 한 마디 더 하려는 제 혀를 경계하게 해주십시오.
나이들면 무언가에 대해 피력하고 싶어하고, 간섭하고 싶어하고
지적하고 싶어지는 지병이 생깁니다.
비록 제가 잘 아는 이야기라도, 남들이 실수를 했더라도
굳이 나서서 떠들고 상처주는 ‘피력증’에 걸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면 입은 굳게 다물고 지갑은 활짝 열어
주변에서 환영받으며 늙어가게 하소서.


http://www.flickr.com/photos/karenilagan/2254659097/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저를 어이없게 만드는 사람들.
저를 조롱하거나 배신하는 이들을 보더라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억울해하기보다
“그럴 수 있어~”라고 이해하고 관용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럴 수 있어?”라고 흥분하면 제 몸에 암세포가 퍼지지만
한호흡 쉬고 “그럴 수 있어”라고 인정하면 평화를 얻음을 알게 하소서.

반백년을 살았으나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면역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전히 저를 괴롭힌 이들 때문에 상처받고 눈물 흘립니다.
무례하고 무심하고 간교한 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래도 저를 괴롭힌 이들 덕분에 
제가 더 단련되고 분발해 발전했음을 인정합니다.

때론 그들이 저를 나무 위에 올려 놓고 흔들어 공포에 떨기도 했지만
나무에서 제가 떨어진 곳이 수렁이 아니라 꽃밭일 때도 있었습니다.
알고보면 저 때문에 더 스트레스받았을 그들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소서. 
(굳이 그 명단을 고자질 안 해도 짐작하시겠지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그들의 작은 은혜에도 진심으로 감사하게 하소서.
제 남편이 무심하고 속을 썩일지라도
폭력남편이 아닌 것과 사랑스러운 딸을 만들어준 것만으로 고마움을 잊지 않게 하소서.

딸에게도 제가 생산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게 해주시고
혹여 이 다음에 제게 실망을 줄지라도
그 애가 제게 준 축복과 기쁨을 먼저 떠올리게 하소서.
제 욕심보다는 그 아이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지혜를 주소서. 

그리고 저보다 성공하고 출세한 친구, 저보다 잘 살고 늙지도 않는 친구들에게
질투하거나 배아파하며 뺑덕어미처럼 심술사납게 늙게 하지 마시고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기뻐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친구들이 잘 살아야 제가 덕볼게 많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게 하소서. 
제가 못가진 것에 실망하기보다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안감힘을 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고,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옵니다. 
제 몸과 영혼을 제대로 돌보지않아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이제라도 자신을 귀하게 여기도록 깨우쳐 주소서. 
 
흰머리가 늘었다고 한숨쉬기 보다
염색할 머리카락이라도 풍성한 것에 감사하고
늙고 병들 것을 걱정하기보다
걱정만 한다고 해결된 일이 없음을 상기하게 하소서.

아주 사소한 감동이나 작은 기쁨에도 마냥 감탄하게 하소서.
케익 한 조각이나 작은 꽃에도 
“아, 맛있다” “어머, 예쁘다”란 감탄사를 수시로 연발하여
주름은 늘어도 감성은 녹슬지 않도록 하소서.

제가 나이값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오십이 넘었다고 진지해지고 무거워지고 명상만 하기 보다는
호기심에 눈빛을 반짝이며 만화책도 읽고 꽃미남스타에 가슴도 뛰고
불의에 질끈 눈감기보다 잠시라도 청년처럼 흥분하는 열정은 허락하소서.
지나치게 철들어 철처럼 딱딱하기보다 유치찬란해도 말랑말랑한 감성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저만의 안락과 안일을 추구하기보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도 공감하고
제가 가진 시간과 알량한 재능과 적은 돈이라도 기꺼이
나누려는 의지를 더욱 분발하게 하소서.
제가 나눈 사랑이 몇배로 커져 돌아옴을 이젠 압니다. 

제 글이나 기사에 익명으로 나쁜 댓글을 달고 
심지어 메일이나 전화를 걸어 악담을 퍼붓는 이들에게
분노하며 억울해하기보다
제게 관심을 보여준 것에 감사하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며 
그들이 제발 건전하고 보람찬 일로 마냥 바쁘도록 도와주소서.

되돌아보면
제가 흘린 눈물이 함박 웃음으로 변하고
제가 받은 수모와 모멸이 저를 향한 박수가 되고
그 슬펐던 순간이 저를 성숙하게 만들었나이다.
참 슬픔이 진정한 아름다움임을 아오니 슬픔을 회피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따스한 마음과 정깊은 말, 선물로 제게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말이나 선물로 제 감사함을 표현하고 되갚는데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감사의 마음을 모르는 한심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채찍질해주시옵소서.
몸안에 감춰 있긴 하나 항상 양심의 존재를 느끼게 하고, 부끄러움을 알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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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유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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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atalia 2011.02.02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먹음을 두려워말게 하소서
    나만 이렇게 유치한건가 두리번거리는걸 부끄럽지않게 하소서
    내게 새겨진 나이테가 자부심이란걸 믿게하소서
    유인경님 당신을 알게 되서 행복합니다^*^

  3. 밝게 2011.02.03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잘 보고 있어요~
    오늘 글은 정말 버릴게 하나도 없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4. 동글동글 2011.02.03 1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날 다들 성묘가고 혼자 한가로이 글을 읽고 있습니다.
    똑똑한 언니와 제대로 수다떤 그런 느낌이랄까요.
    님의 글은 제게 생기와 위로를 준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5. 파랑새 2011.02.04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 먹으면 포용력과 너그러움이 더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쪼잔해 지고 노여움이 많아지고. 나한테 잘못한 사람
    절대 잊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때 ..
    스스로 걱정스럽다. 그러면서 반성도 많이 한다.
    결국 나를 위해서 ..

  6. 무암 2011.02.04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 12월에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순리(順理)대로 살고 미로(美老)이고 싶습니다.
    좋은 글 여전히 잘 읽고 있습니다. 요즘 건배사 가운데 이런 게 있더군요.
    마주앉은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 "마당발" 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다 "소화제"

  7. 유인경 2011.02.04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주 앉아있진 못하지만 마당발!!!을 외칩니다.
    예쁜 손주 얻으신 것 축하드리고 새해에 더더욱 건강하시길...

  8. 보디가드 2011.02.04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올해부터 사랑하는 내 연인의 보디가드가 될것을 서약합니다.
    왜냐하면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하니까요

  9. 브링브링 2011.02.05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굳이 그 명단을 고자질하지 않아도 짐작하시겠지요?) 에고 누가 우리 얼라기자님을 스트레스 줬을까요? 이 노옴들 걍 팍....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기자님은 절대로 경직된 노인으로 늙진 않겟어요. 소녀같은 할머니로 늙으실 듯합니다.

  10. 이 진이 2011.02.05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이제 막 만 40의 문턱에 있는데 언젠가부터 노후대비는 이제부터 해야겠단 생각이 깊어져요.
    40대를 보면 딴 세상 사람 보듯 하던 제가 이 나이가 되었다는걸 일단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지만서도
    50대이후에 누구나 공감할 소망할 유님경님의 글처럼 살아가려면
    지금부터 트레이닝을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고 취미도 심화 하고......잘~~ 살아야겠단 생각이 많이 들어요.
    여기저기서 접하던 유인경님의 글 얼마전부터 이 블로그로의 고정독자가 되었는데
    말씀 하신대로 늘 행동파지성파감성소녀할머니로 늙어가시길! 저도 그 뒤를 따르겠사옵니다 ^^

  11. 관명 2011.02.06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기장님 글과 말솜씨는 항상 봐도 유쾌하고 재미있고 생각케 합니다. 저와 나이가 동갑인데 동갑기자님 열심히 보고 있답니다

  12. 유인경 2011.02.06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 의식하지 않고 살려고해도 동갑이라니 더더욱 반갑네요.
    새해 연휴에 관명님의 덕담과 과분한 칭찬을 읽으니 어린아이마냥 기쁩니다.
    제게 기쁨을 주는 모든 분들, 복 흐르러지게 받으소서...

  13. 나그네 2011.02.06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하신 독백이옵니다. 님의 겸손에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14. 목사골 2011.02.07 0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쟁이 유인경선임기자님의 글을 무임승차하듯 보다가
    이렇게 댓글이라도 남기는게 도리일거 같아 몇자 적습니다.
    시원하면서도 명쾌한 필체가 맘에 쏙 들어오는게 여간 좋지않습니다.
    몇년전 초등학교 동창회가 구성되어 첫모임을 가질때 문득 유기자님의
    동창회에 관한 기사거리에서 명문이 생각나 발췌한것을 짜깁기해서
    인삿말로 했더니 햐~너 참 멋있게 말잘한다고한 친구 칭찬에
    괜히 우쭐하면서도 유기자님걸 훔쳐와서 미안해 했던 기억에 웃음이 납니다.
    과거를 만나 오늘을 위로받는게 동창회라는 명언이 오늘도 생각난다는...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정부가 들어서면 명대변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쌩뚱맞은 저 만의 생각입니다만 좋게 그려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5. 유인경 2011.02.07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자에게 가장 듣기 좋은 말은 글쟁이란 호칭같아요.
    저는 신문기자인데도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죄(?)로 제가 쓴 글보다는
    방송에서 한 말이나 화면에나온 얼굴(흑흑)로 평가받아 좀 씁슬하거든요.

    그리고 대변인은 불가능합니다.
    일단 너무 고령이구요, 또 너무 명랑한 성격이라
    이악물고 눈치켜뜨고 화난듯 말하는 대변인은 제가 안 어울립니다
    명랑오락당이라도 생기면 또 모를까요...
    (근데 저같은 명랑한 당 대변인이 등장해 "오늘 우리 당대표가 너무 저렴한 발언과 행동한 것, 양해해주세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만 반성하고 만회할 기회는 주십시오. 그리고 상대 당 대변인의 날카롭고 따끔한 지적, 고맙긴한데 지난번 것과 너무 비슷해서 좀 식상하네요. 대책없는 지적,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재미있을 것 같군요,)

  16. 에두부인 2011.02.08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가족과 함께 유 기자님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항상 유 기자님을 닮아 알록달록하고픈 에두부인 드림.

  17. 2011.02.09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8. 한우리 2011.02.15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갑은 열고 입은 닫고.... 명심하고 갑니다. ~~감사요

  19. 박종옥 2011.02.26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너무나 쏙쏙 집어낸 심정과 소망들이 구구절절 너무깊이 가슴을 후련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해 주셨습니다.
    넓은 마음과 그 높이를 알 수 없는(성취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고운 글 속에 이렇게 자연스레, 예쁘게 녹아 나다니 참 놀랍습니다.
    건강과 계속되는 행복을 기원합니다.

  20. 주리혜 2011.03.02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인경 기자님 반갑습니다.
    늘 가까이? 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인사드려요
    새해 기도문 동감입니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오십대 중반에 발을 디딘후 제 철학적 문구라눈... ㅋㅎ

  21. 2011.04.27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